[뉴스토마토 정해훈 기자] 법원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등에 관여한 의혹을 받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해 9일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원정숙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이날 이재용 부회장과 최지성 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실장, 김종중 전 미래전략실 전략팀장에 대한 영장심사 결과 "기본적 사실관계는 소명됐고, 검찰은 그간의 수사를 통해 이미 상당 정도의 증거를 확보했다고 보인다"며 "그러나 불구속 재판의 원칙에 반해 피의자들을 구속할 필요성과 상당성에 관해서는 소명이 부족하다"며 기각 사유를 밝혔다.
그러면서 "이 사건의 중요성에 비춰 피의자들의 책임 유무와 그 정도는 재판 과정에서 충분한 공방과 심리를 거쳐 결정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된다"고 덧붙였다.
이 부회장은 지난 8일 8시간30분여 동안 진행된 심문에서 혐의를 전면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을 통한 경영승계 작업 과정을 보고했다는 삼성그룹 전·현직 임원들의 진술 증거를 직접적 증거로 제시했지만, 법원을 설득하지 못했다. 특히 1년 넘게 장기간 진행된 수사와 이 부회장 측이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 전 검찰수사심의위원회에 기소 여부 심사를 신청한 점 등이 법원의 구속 여부 심사에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
이날 법원의 판단에 따라 이 부회장이 신청한 기소 여부 심사는 절차를 계속 밟게 된다. 이 부회장 측에 유리한 방향으로 의견이 나올 가능성도 있다. 반면 검찰로서는 무리하게 구속영장을 청구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수사 동력도 상당히 떨어질 것으로 보인다.
앞서 이 부회장 등은 지난 2일 서울중앙지검에 검찰수사심의위원회 소집 신청서를 제출했다. 하지만 서울중앙지검 경제범죄형사부(부장 이복현)는 그로부터 이틀 만인 4일 이 부회장 등 3명에 대해 자본시장법 위반(부정거래·시세조종행위), 외부감사법 위반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김종중 전 팀장에 대해서는 위증 혐의도 적용했다.
이에 이 부회장 변호인단은 "길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는 수사심의위원회 절차를 통해 사건 관계인의 억울한 이야기를 한 번 들어주고, 위원들의 충분한 검토와 그 결정에 따라 처분했더라면 국민도 검찰의 결정을 더 신뢰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을 금할 수 없다"면서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에 유감을 표했다.
삼성전자는 이후 7일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은 관련 법 규정과 절차에 따라 적법하게 진행됐고, 삼성바이오로직스의 회계 처리 역시 국제회계기준에 맞게 처리됐다"며 "합병 성사를 위해 시세를 조종했다는 보도 역시 사실에 기반하지 않은 것"이라고 주장하는 등 이 부회장에 대한 구속 수사가 부당하다는 의견을 냈다.
서울중앙지검은 이 부회장 등의 검찰수사심의위원회 소집 신청에 따라 오는 11일 부의심의위원회를 개최하기로 하고, 관련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부의심의위원회 당일 정확한 시간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으며, 검찰은 수사팀과 이 부회장 측에 관련 의견서를 작성해 보내 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부회장 등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과 삼성바이오의 분식회계 과정에 관여한 혐의를 받고 있다. 특히 검찰은 이 부회장의 지배력 강화를 위해 지난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전 삼성물산 주가를 고의로 떨어뜨렸다고 의심하고 있다.
합병 전 제일모직 최대주주면서도 삼성물산 주식은 보유하지 않았던 이 부회장에게는 제일모직의 합병가액에 대한 삼성물산의 합병가액의 비율이 낮게 산정될수록 유리했다. 당시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은 1:0.35의 합병비율로 합병됐다.
이 과정에서 삼성바이오가 미국 바이오젠과 합작으로 삼성바이오에피스를 설립할 당시 체결한 주식매수청구권(콜옵션)을 공시하지 않아 삼성바이오는 고평가됐고, 이에 따라 모회사인 제일모직의 가치도 부풀려졌다. 반대로 삼성물산의 기업 가치는 저평가됐다. 이 부회장은 제일모직에 유리한 합병 비율 덕분에 합병 삼성물산 지분을 늘릴 수 있었고, 삼성전자를 포함한 다른 계열사의 정점에 있는 삼성물산에 대한 지배력이 확대됐다.
합병 작업이 완료된 후 삼성물산 회계에 삼성바이오 가치를 반영하면 삼성바이오가 콜옵션 부채로 자본잠식에 처하게 될 상황이 됐고, 이에 삼성바이오는 바이오젠의 콜옵션 행사 가능성이 커져 삼성바이오에피스에 대한 지배력을 상실했다면서 인위적으로 종속회사에서 관계회사로 변경한 후 삼성바이오에피스의 기업 가치를 2900억원에서 4조8000억원으로 부풀렸다.
불법 경영승계 의혹을 받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8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영장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정해훈 기자 ewigjung@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