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지영 기자] 매각을 진행 중인 아시아나항공이 인수자 HDC현대산업개발에 맞서며 업계가 술렁이고 있다. 그동안 아시아나항공은 매각 관련 사안에 대해선 관찰자의 입장을 취하며 극도로 말을 아껴왔기 때문이다.
HDC현산과 아시아나항공의 진실공방이 시작되자 업계에서는 사실상 딜은 물 건너갔다는 반응이 나온다. 아시아나항공이 더 이상 눈치를 볼 필요가 없어지자 이행보증금(계약금)을 지키기 위한 반격에 나섰다는 것이다.
14일 항공·투자은행업계에 따르면 아시아나항공이 HDC현산의 주장을 공개적으로 반박하면서 양측의 신경전이 고조되고 있다. 지난 9일 HDC현산은 아시아나항공이 사전 협의 없이 경영상 중요한 결정을 하고 있다며 인수 조건을 처음부터 재검토해야 한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 △긴급자금 1조7000억원 추가 차입 △차입금 영구전환사채 전환 △계열사 1400억원 지원 등을 아시아나항공이 일방적으로 결정했다는 주장이다. 이에 아시아나항공은 HDC현산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라며 이례적으로 보도자료를 통한 정면 반박에 나섰다.
아시아나항공이 HDC현산의 주장을 정면 반박하며 딜이 무산됐다는 관측이 나온다. 사진은 인천국제공항 아시아나항공 테이블. 사진/뉴시스
HDC현산으로 새 주인이 정해진 후 아시아나항공은 인수 관련 사안에 대해선 줄곧 조심스럽다는 태도를 보였다. 지난 2월 지난해 연간 실적을 발표하며 "범현대가와 신규 사업 시너지를 통한 실적 개선을 기대한다"고 밝힌 정도가 전부다. 섣부르게 속내를 드러냈다가 인수자의 심기를 건드릴 수 있고, 사이가 틀어져 절차가 늦어지기라도 하면 좋을 게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얌전했던 아시아나항공이 반격을 시작한 것 자체가 HDC현산이 이미 손을 뗐다는 방증일 수 있는 것이다.
HDC현산이 아시아나항공의 태도를 지적하는 것은 지난해 말 체결된 주식매매계약(SPA)에 함부로 딜을 중단할 수 없다는 조항이 포함됐기 때문으로 보인다. 즉 HDC현산이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철회하기 위해서는 불가피한 사유가 있어야 하는 셈이다.
법조계에 따르면 코로나19가 인수 철회를 위한 사유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인수·합병(M&A) 관련 법에 '중대한 부정적 영향(MAE)' 조항이 있는데 코로나19를 MAE로 본다면 이는 인수를 포기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HDC현산은 KDB산업은행 등 채권단에 아시아나항공 인수 조건 재검토를 요청하며 '부정적 영향'이 발생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하지만 딜 포기를 결정했더라도 이를 선언하는 것은 부담이다. 먼저 백기를 드는 쪽이 향후 이어질 이행보증금 소송에서 불리하기 때문이다. 이번 인수의 이행보증금은 25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결국 양측이 진실공방을 시작한 것은 책임을 서로에게 돌려 이행보증금 소송에서 이기려는 밑작업이라는 해석이다.
업계 관계자는 "만약 HDC현산의 인수 의지가 여전하다면 아시아나항공도 인수자의 심기를 건드리는 행동은 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딜 무산의 책임을 지지 않고, 이행보증금도 최대한 찾아가기 위한 여론전이라는 생각에 HDC현산과의 협의에 성실히 임해왔다고 강조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지영 기자 wldud91422@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