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보살팬'들이 행복한 이유

입력 : 2020-06-19 오전 6:00:00
현재 프로야구 1위 팀은 NC다이노스다. 글을 쓰는 오늘(18일)을 기준으로 0.703의 압도적인 승률을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이 1위 팀에 못지않게, 혹은 더 많은 뉴스가 만들어지는 팀이 있다. 최하위인 한화 이글스다. 불행히도 이 팀의 뉴스는 연패에 관한 것이다. 지난 주말에 두산을 이겨서 18연패라는 프로야구연패기록을 깨지는 않았지만, 이후에도 2연패 중이다. 한화이글스의 현재 승률은 0.237이다. 2019년 10위인 롯데는 0.340이었다. 작년의 수치가 최종 결과이기는 해도 한화이글스는 지난 해 최하위인 롯데 보다 더 낮은 승률을 기록하고 있다. 
 
프로 경기는 아마추어와 다르다. 프로는 승리해야 한다. 더 좋은 성적을 내야  하고, '승자독식사회'에서 얘기되는 것처럼 그 이상의 성과를 가져간다. 8-7-8-9-9-6-7-8-3-9. 한화이글스의 2010년대 성적이다. 2012년까지는 8개팀, 2014년까지는 9팀이었으니 반짝 3위를 차지한 2018년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꼴찌 아니면 하위권이었다. 
 
흔히 한화이글스의 팬을 ‘보살팬’이라고 부른다. 무려 오픈국어사전에도 나와 있다. 사전에서는 ‘순위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항상 한화만의 육성응원으로 열정을 불태우는 한화 야구 팬클럽을 일컬어 만들어진 신조어’라고 되어 있다. 한화 팬에게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가 바로 ‘순위에 아랑곳하지 않고 응원하는’ 모습이다. 
 
아무리 그래도 응원하는 팀이 승률이 높지 않으면, 더군다나 기록적인 연패를 기록 중이라면 팬으로서 속상한 일 아닐까? 
 
최근에 한화 이글스의 보살팬인 여자변호사 A와 B에게 하나 물었다. 지금도 한화를 응원하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A는 “좀 못났다는 이유로 힘들었던 시절을 함께 해온 친구를 버리면 안 되거든”이라고 했고, B는 “맨 날 지다가 한번 이기면 한국시리즈 우승한 듯 즐겁다”면서 “승리의 소중함을 알게 된다.”고 답했다. 우문현답(愚問賢答)이다. 넥센 히어로즈를 응원하는 나 역시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18연패의 원조는 히어로즈의 조상이라고 할 수 있는 삼미의 역사다. 이후 막강한 자금력을 동원한 현대가 왕조시대를 구축한 적이 있었지만, 구단인수는 아니라도 인적 자원을 이어받은 히어로즈가 선수 팔이 하면서 또 다시 하위권에 맴돌 때 너무 화나서 밤잠을 설친 것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B는 허구한  날 ‘거지팀’이라고 놀렸다. 하지만 나는 팀을 바꾸지는 않았다.
 
이번에는 다른 보살팬 C에게 물었다. 분명 자신이 응원하는 팀이 지면 스트레스가 생기는 법일 텐데 그런 스트레스가 없는지. C는 졌을 때보다는 최선을 다하지 않는 모습일 때, 열심히 하지 않는다고 여겨질 때, 그리고 감독의 작전에 대한 불만이 있을 때가 스트레스가 더 크다고 했다. 그는 잘하는 팀, 성적이 좋은 팀을 응원하는 것과 성적과 상관없이 응원하는 것은 다르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성적이 좋으면 갑자기 원래부터 한화팬이었다고 하는 사람이 늘어날 거라고도 했다.
 
TV를 틀면 인기가 부쩍 생긴 연예인이 모든 프로그램에 등장한다. 후광효과, 베스트셀러효과라고 하는 것처럼 인기가 있다고 하면 더 많은 팬이 생긴다. 남이 좋아하면 나도 좋아하기도 한다. 언제나 유명한 사람, 권력을 가진 사람 근처에는 사람이 모인다. 
 
그러나 언제까지 잘할 수도 없고, 인기와 권력을 누릴 수도 없다. 인기와 권력이 사라지면 모여든 사람들은 흩어지기 마련이다. 어찌 보면 이기는 팀, 잘하는 팀을 좋아하는 게 아니라 그저 그 팀이라서 좋아한다는 게 새삼 희한하게 느껴지는 세상이다. 성적과 결과에 따라 부침이 있지도 않고 작은 성과에도 즐거워하는. 그래서 보살팬들이 ‘나는 행복합니다.’라고 노래할 수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전국구 인기구단이면서도 젊은 팬들로 하여금 우승 장면을 야구장이 아닌 유튜브로만 확인할 수 있게 한 엘지나 롯데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올해 한화가 몇 위를 했으면 좋겠냐는 질문에 A는 “8위”면 좋겠다고 했고, C는 “7위?” 라며 웃었다. 우승이 아니라 7위, 8위를 달성해도 기쁜 현실이 하나쯤 있는 것이 정말 다행이다. 
 
김한규 법무법인 '공감' 변호사, 전 서울지방변호사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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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