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기철 기자] "법절차에 따른 수사라고 하여 국민의 자유와 권리가 무제한으로 희생되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헌법에 따른 비례와 균형을 찾아야 합니다. 특히, 문명 발전의 원동력인 개인의 사적 영역은 최대한 보호되어야 함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2019년 25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대회의실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윤석열 검찰총장 2019년 7월25일 취임사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단어는 '국민'(24)이다. '헌법'(11)이 그 다음이다. 검찰이나 수사는 각각 7, 4번씩 나왔다. 대검찰청 대변인실은 취임사에 대한 설명자료까지 만들어 "국민과 함께하는 검찰은 국민과 공감하는 검찰임과 동시에 헌법 정신을 실천하는 검찰임을 강조한 것"이라며 "이것이 윤 총장의 평소 소신"이라고 소개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검찰은 윤 총장 취임 한 달만에 그의 소신과 정반대로 쏠렸다. 취임 1주년이라지만 윤 총장은 이렇다 할 정책을 펴보지도 못한 채 정쟁의 회오리 속으로 뛰어들었다. 정치권에서 제기하는 조 장관 수사에 대한 정치적 정당성은 윤 총장에게는 중요하지 않았다. 다만, 이는 국민도 어느정도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국민들에게 그는 아직 '살아 있는 권력'에도 칼을 들이댈 결기를 가진 검사였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지난해 7월25일 청와대 본관에서 검찰총장 임명장 수여식 시작을 기다리며 조국 민정수석과 대화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그러나 '법절차'를 이유로 조 전 장관 일가의 '최소한의 자유와 권리'를 제한했다는 점, 그 과정에서 개인의 사적 영역이 보호되지 않았다는 점이 국민을 분노케 했다.
윤 총장을 잘 아는 한 검사장 출신 변호사는 "조 전 장관 일가 수사는 너무도 성급했고 준비가 없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특수수사는 '죽기 아니면 살기'로 덤벼야 한다. 자칫 섣불리 수사에 나서면 분명 검사가 당할 수 밖에 없다. 윤 총장의 조 전 장관 수사는 이를 여과 없이 보여줬다"고 말했다. 부장판사 출신인 한 변호사는 "조 전 장관 일가의 공판 보도를 보면 수사가 제대로 된 것인지 의문"이라고 했다.
조 전 장관 일가 수사가 윤 총장이 잘못 쏜 화살이라면, '검언 유착'의혹 사건은 전세를 굳혔다. 검찰 안팎에서는 사건 발발 초기부터 특임검사를 임명해야 한다는 요구가 빗발쳤다. 하지만 감찰하겠다는 한동수 대검 감찰부장과 기싸움을 하더니 사건을 대검 인권부로,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로 빙빙 돌렸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전문자문단 소집까지 결정하면서 의혹을 점점 부추겼다. 이러는 사이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수사지휘권을 발동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이 지난 6월22일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제6차 공정사회 반부패정책협의회에 참석해 앉아 있다. 사진/뉴시스
속절 없이 수사라인에서 배제된 윤 총장은 리더십과 입지에 깊은 상처를 입었다. 대검 참모들에 대한 장악력도 떨어졌다는 게 내부 평가다. '최측근'이라는 한동훈 법무연수원 연구위원(검사장)을 윤 총장이 더 구설수로 몰았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재경지역의 한 부장검사는 "외관만 보면 딱 수사팀을 억누르면서 까지 한 검사장을 계속 감싸고 도는 모습"이라면서 "특임이든 뭐든, 초기부터 수사에 들어갔으면 쉽게 끝낼 수 있는 일을 왜 이렇게까지 끌고 왔는지 모를일"이라고 했다.
앞의 검사창 출신 변호사는 "윤 총장은 칼을 잘쓰는 검사다. 1대 1 전투에만 능한 검사가 준비 없이 대장군이 된 셈이니 시련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특수수사의 달인'에서 '검찰 수장'으로 탈바꿈 하기 위한 준비가 필요했다는 지적이다. 또 다른 검사장 출신 변호사는 "애초 검찰총장 지명을 덥썩 받는 것이 아니었다. 한 텀 쉬었다가 총장이 됐더라면 이정도까지 사태가 악화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지난 3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으로 출근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윤 총장을 잘 아는 검찰 간부 출신 원로는 "검찰 내부에서도 불만이 많은 줄로 알지만 윤 총장에게 사퇴할 마음이 있더라도 지금은 너무 늦었다. 조 전 장관 수사를 두고 정치권에서 압박을 가해올 때. 그때 사표를 던졌어야 했다"고 말했다. 검찰 내부를 추스리는 것도 쉽지 않다는 의미다.
고검장급 출신의 전직 검찰 간부는 "윤 총장에게 과거 김종빈 총장 같은 결기는 바라기 쉽지 않다. 시대가 변했고 윤 총장도 변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그럼에도 총장으로서의 임무는 놓아서는 안 된다"면서 "내부 수습이 급하다. 식물총장이라는 소리까지 나오지만 총장으로서의 권한을 균형있게 행사해 입지를 다시 확보해야 한다. 그래야 검찰도 나라도 산다"고 했다.
최기철 기자 lawch@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