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대법관 사법농단 첫 증언…"통진당 문건 받았다"

"행정처의 문건 전달 적절하지 않아…판결에 내용 반영 전혀 안 해"

입력 : 2020-08-11 오후 4:51:42
[뉴스토마토 왕해나 기자] 이동원 대법관이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의 '사법농단 의혹' 재판에 출석해 2016년 통합진보당 국회의원 지위 확인 소송 항소심을 맡을 당시 법원행정처로부터 관련 문건을 받은 것은 사실이라는 취지로 증언했다. 현직 대법관이 사법농단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6부(재판장 윤종섭)는 11일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등 혐의로 기소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속행 공판을 진행했다. 이 대법관은 이날 증인으로 나왔다. 이 대법관은 서울고법 부장판사이던 2016년 옛 통진당 의원들이 낸 국회의원 지위확인 소송의 항소심을 맡았는데, 검찰은 임 전 차장과 이민걸 전 법원행정처 기조실장 등이 해당 재판에 대한 결론에 관한 문건을 재판부에 전달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동원 대법관이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사법농단' 혐의를 받는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59차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1심은 의원직 상실 결정이 헌법재판소 권한이기 때문에 이를 다시 법원에서 심리할 수 없다며 소송을 각하했다. 하지만 항소심은 '정당이 해산되면 소속 의원들도 당연히 의원직을 상실한다'고 원고 패소 판결했다. 이는 소송 권한 자체가 없다고 본 1심과 달리 의원직 상실에 대한 결정 권한을 법원이 판단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이 전 실장으로부터 2016년 문건을 전달받은 적 있냐는 검찰 질문에 이 대법관은 "어떤 문건인가 받은 건 있다"며 "이 전 실장과는 연수원 때부터 친한 사이로 (제가)다시 서울고법으로 오면서 (이 전 실장이)식사나 같이하자고 해서 했고 식사가 끝나고 읽어보라면서 줬던 것"이라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당시 이 전 실장과의 대화 내용에 대해서는 "위헌정당 해산 결정이 있을 때 의원 지위를 상실하는 것이 어떨지는 법원이 알아서 판단할 수 있는 문제인데 이걸 아예 법원이 재판권이 없다고 하는 건 조금 이상하지 않냐는 뉘앙스였다"고 증언했다. 이에 대해 어떤 답변을 했고 어떤 생각을 했냐는 질문에는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면서 "(제가) 통상적 흐름인 '잘 검토해볼게요' 정도는 얘기했을 수 있는데, 판사는 사건에 대해 제3자로부터 접근이 오면 긴장하고 그 사건에 대해 침묵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당시 건네받은 문건 내용에 대해 이 대법관은 '법원에 재판권이 있다', '국회의원 지위 상실과 지위 유지에 대한 논거' 등이 간단하게 정리돼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 대법관은 "당시 문건 논거들이 와닿지 않아 한 번 읽고 더 이상 안 봤다"고 말했다. 당시 재판부 구성원들에게는 이 전 실장이 문건을 전달했다는 사실을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이 전 실장으로부터 받은 문건 내용을 판결에 반영했냐는 임 전 차장 측 변호인 질문에는 "영향을 받은 것은 전혀 없다"면서 "저는 근데 지역구 의원이 위헌정당 해산결정에 의해서 자격을 잃게 되나가 가장 관심을 가졌는데 행정처에서는 그 부분을 설명하고 있지 않다"고 했다. 
 
이 대법관은 행정처가 재판부에 문건을 전달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재차 이야기 했다. 그는 "재판부가 행정처에 검토한 자료가 있냐고 물을 수는 있지만 행정처에서 거꾸로 하는 건 아니다"라면서 "재판부 의도에 의해 움직여야 하는 것이지 외부에 의해서 재판부에 접근하는 것은 절대 반대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증인신문이 끝난 후 "대법관으로서 증인석에 앉는 게 유쾌한 일은 아니다"며 "그렇지만 재판은 필요한 일이고, 증거로 제출된 서면에 대한 공방은 나올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잘 안다"고 말했다. 이어 "재판에 나와 증인석에 서서 이 사건의 무게 가운데 재판부가 많이 고생하겠구나 생각했다"면서 "잘 마무리해서 좋은 재판으로 기억됐으면 한다"고 말한 뒤 법정을 빠져나갔다.
 
왕해나 기자 haena0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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