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왕해나 기자] 조합 자금을 횡령한 혐의로 유죄가 확정된 조합 관계자의 판결문 사본을 조합원들에게 배포한 것은 명예훼손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2부(주심 김상환 대법관)는 명예훼손, 모욕 등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벌금 25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전주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26일 밝혔다.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면 사실 적시 명예훼손이 성립되지 않는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사진은 서울 서초동 대법원. 사진/뉴스토마토
택시협동조합 조합원이던 A씨는 2017년 9월 조합 임시총회장인 건물 출입구 인근에서 총회 참석자들에게 "B씨가 조합 이사장 C씨랑 같이 회삿돈을 다 해 먹었다"면서 조합원을 통해 입수한 B씨의 형사사건 판결문 사본을 배포했다.
해당 판결문은 조합의 발기인이자 금융 자문 제공자였던 B씨가 조합의 자금 20억원을 업무상 보관하던 중 11억4908만원을 횡령해 전주지법에서 특정경제범죄법 위반(횡령)죄로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 사회봉사명령 160시간을 선고받은 내용이었다. C씨는 관련 범행에 가담했음을 인정할 증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혐의없음 처분을 받은 상태였다.
검찰은 B씨에 대해서는 사실적시 명예훼손 혐의로, C씨에 대해서는 허위사실 적시에 따른 명예훼손 혐의로 A씨를 재판에 넘겼다. C씨의 조합 경영에 불만을 품고 욕설을 하고 폭행을 해 상해를 입힌 혐의도 적용됐다.
1심과 2심은 A씨의 혐의가 인정된다고 봤다. 1심은 "C씨는 주먹으로 얼굴을 맞았다며 일관되게 진술하고 있다"라며 "A씨는 판결문 어디에도 C씨가 조합의 돈을 횡령했다고 볼 만한 근거가 없음에도 C씨가 공모해 횡령한 것처럼 말을 했다"며 벌금 250만원을 선고했다. 2심도 "B씨는 A씨의 행위로 인해 잘 알지 못하는 다수의 조합원에게 전과자로 알려지게 됐다"면서 "A씨의 행위가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고 볼 수 없다"고 항소를 기각했다.
대법원은 A씨의 행위가 공익 목적에 해당하고, C씨에 대한 발언도 허위 인식이 없었다며 원심을 파기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 발언과 횡령 사건 판결서 배포를 통해 B씨에 대해 적시한 사실은 진실에 부합하고, 진실인지 여부가 다소 명확하지 않은 부분이 있다고 하더라도 피고인으로서는 그것이 진실하다고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이어 "피고인이 적시한 사실은 조합원들에 대한 관계에서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에 해당하고, 피고인의 주요 동기 내지 목적 또한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었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C씨에 대해서도 "검사의 혐의없음 처분이 있었다는 사실만으로 C씨가 B씨의 횡령 범행에 가담했다는 점이 허위이고, 피고인이 그와 같은 사실이 허위임을 인식했다는 점이 합리적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증명되었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왕해나 기자 haena07@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