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지영 기자] 한진그룹의 아시아나항공 인수가 쉽게 풀리질 않고 있다. KCGI가 인수 방식에 태클을 걸면서 법적 분쟁이 한창인 가운데 재판부는 경영권 분쟁이 이번 합병과 관련 없는지 살펴보겠다는 방침을 밝히며 쉽지 않은 앞날을 예고했다. 만약 이대로 합병이 불발된다면 아시아나항공은 다시 채권단 관리 아래로 들어가 경영 정상화를 위한 절차에 돌입할 전망이다.
26일 업계와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방법원은 내달 2일 전까지 KCGI가 제기한 한진칼 신주 발행 금지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일지 여부를 결정한다는 방침이다. 법원이 내달 2일로 마감 시한을 정한 건 이날이 인수를 위한 한진칼 유상증자 납입 기일이기 때문이다.
KCGI는 행동주의 사모펀드(PEF)로 반도건설,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과 연합을 결성해 조원태 회장과 경영권 분쟁을 하고 있다. 이번 인수를 통해 조 회장이 우호 지분을 확보하게 되면서 이를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한진그룹의 아시아나항공 인수는 여러 암초를 만나 난항 중이다. 이번 인수를 추진한 아시아나항공 채권단인 KDB산업은행을 비롯해 금융위원회, 대한항공 노조는 항공업 재편을 위해 인수해야 한다는 주장이지만 KCGI 주주연합, 조종사 노조, 아시아나항공 노조는 인수 후 구조조정 등 여러 부작용을 우려하며 저지하고 나섰다.
KCGI 주주연합과 경영권 분쟁 중인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사진/뉴시스
법원 "경영권 분쟁과 관련 있나"
전날 KCGI의 가처분 신청에 대해 심문을 한 법원은 이번 인수 방식이 경영권 분쟁과 연관이 있는지 살펴보겠다는 방침이다.
한진그룹은 이번 인수가 항공업계 재편이 목적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다만 산은이 주주명부 폐쇄 전인 12월 중 인수 자금 8000억원을 서둘러 지급해 지분을 확보하는 점을 고려할 때 의혹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이보다는 이번 인수가 항공업계 재편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지, 인수 무산 후 아시아나항공이 입을 타격 등에 더욱 중점을 둘 것으로 보인다. 이번 인수 방식이 조 회장 경영권 확보에 유리하더라도 국내 항공 산업에 기여하는 바가 크다면 가처분을 통해 인수를 무산시키는 것은 부담이기 때문이다.
실제 재판부는 전날 심문에서 한진칼이 산은에 신주를 발행하는 인수 방식이 적정한지, 대안이 있는지 등을 질문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이번 판결로 인한 인수 무산 가능성을 확인한 것으로 보인다.
아시아나항공 노조가 지난 25일 여의도 국회 앞에서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구조조정 우려하는 노조…"대화하자"
이 가운데 대한항공 노조를 제외한 두 기업의 노조 대부분은 이번 인수를 반대하고 있다. 항공사끼리의 합병은 중복 인력을 낳는 만큼 대규모 구조조정을 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기 때문이다.
산은과 한진그룹은 구조조정은 하지 않으며 자연 감소로 인력을 줄일 수 있다고 설득하고 있지만 노조를 비롯해 업계에서도 의구심을 드러내고 있다. 이에 따라 노조는 노·사·정 협의체를 꾸려 인수 방식을 다시 논의하고 구조조정을 하지 않기 위한 구체적인 계획을 밝히라는 주장이다.
특히 아시아나항공 노조는 채권단인 산은의 이동걸 회장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전날 노조는 성명서를 내고 "아시아나항공을 대한항공에 매각하는 것은 정부의 항공산업 정책 실패를 덮어 보려는 꼼수"라고 지적했다.
다만 조 회장은 자사 노조와는 대화할 수 있지만 아직 인수 전이라 아시아나항공 노조를 만나는 것은 때가 아니라고 언급한 바 있어 협의체 구성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인천국제공항에 주기된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 항공기. 사진/뉴시스
인수 무산 시 아시아나는?
이처럼 두 항공사의 합병이 험난한 가운데 이번 인수가 무산되면 아시아나항공은 다시 채권단 관리 아래로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산은과 한진그룹은 법원이 KCGI의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여 신주 발행을 못 하게 되면 인수를 중단하겠다는 방침이기 때문이다. 신주 발행 외의 다른 인수 방식에 대한 가능성에 대해서도 '대안은 없다'고 못 박은 상태다.
이 경우 산은은 다시 아시아나항공을 매각하기 위해 경영 정상화 절차에 돌입할 것으로 보인다. 사실상 일시적으로 국유화하는 셈이다.
다만 이 경우에도 구조조정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재매각을 위해 수익성이 낮은 노선은 정리하고 부서를 통폐합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코로나19로 이스타항공을 비롯해 해외에서도 규모가 작은 항공사를 중심으로 줄줄이 파산하는 상황"이라며 "인수 방식에 대한 논란은 있지만 항공업계 재편을 위한 최선의 대안일 것"이라고 말했다.
김지영 기자 wldud91422@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