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박근혜 판결' 확정이 쏘아올린 신호탄

입력 : 2021-01-15 오전 6:00:00
박근혜 전 대통령이 14일 징역 20년과 벌금 180억원 형을 확정받았다. 지난해 7월 서울고등법원이 같은 형을 선고한 3년 9개월 만이다. 이로써 박 전 대통령에 대한 논란은 어느 정도 종식됐다.
 
이에 앞서 박 전 대통령은 과거 새누리당의 공천에 적극 개입함으로써 대통령의 중립의무를 저버렸다는 혐의가 유죄로 인정돼 일찌감치 징역 2년형을 확정받았다. 이날 확정된 형까지 합산하면 22년의 징역형과 벌금 180억 원, 추징금 35억원 등을 집행 받게 됐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이번 판결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우선, 박 전 대통령과 그녀를 옹호하던 측이 주장해왔던, '희생자 프레임'이 깨졌다. 그동안 극우 보수 세력들은 "탄핵부터 대법원 확정 판결까지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이 진보 정권이 보수의 아이콘인 박근혜를 죽이고 희생양으로 삼기 위해 없는 죄를 뒤집어씌우는 지난한 역사의 현장이었다"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이번 판결 확정으로 더 이상 그런 주장은 설득력을 잃게 되었다. 
 
두 번째, 이번 판결은 박 전 대통령이 저지른 죄들이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선택한 선의의 행동 때문이 아니라, 상당히 남부끄러운 일종의 파렴치범적 성격이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주었다. 유신 헌법에 반대하며 시위하던 많은 젊은이들이, 국보법위반 등으로 형을 선고받았을 때나 민주화를 외치면서 더 나은 세계를 만들자고 주장하다 군부 독재의 창·칼에 쓰러져 고문을 당하고 수감되었을 때는 그들이 비록 전과자이기는 하지만 나라를 더 좋게 만들기 위해 자신을 희생시킨 아름다운 대한민국의 청년이라는 평가가 가능했었다. 
 
하지만 한 나라의 대통령이, 특정 기업을 상대로 '내가 엄청난 특혜를 주고 당신들의 재벌 기업 세습이 유지되도록 도와줄테니 반대급부로 거액의 돈을 달라'고 한 행위는 너무도 너절하고 냄새나는 행위가 아닐 수 없다. 자신의 정치권력을 굳건하게 하기 위해 주변 사람을 전부 자신 주위에 포진시키는 식으로 공천에 개입한 행위 역시 선진 조국을 만들기 위한 숭고한 희생이 아니라 탐욕과 부패로 얼룩진 부끄러운 지도자의 민낯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일이다. 삼성과 롯데, SK 등 대기업들과 국가정보원장으로부터 뇌물을 받았다는 혐의, 국정원의 특수활동비를 상납 받아 빼돌린 혐의, 그리고 과거 새누리당의 공천에 적극 개입함으로써 대통령의 중립의무를 저버렸다는 혐의 등 어느 하나도 변명이 통할 수 있거나 선의로 표장되기 어렵다. 
 
세 번 째로,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판결 확정은 '수천만 민초들이 촛불집회라는 비폭력적 수단을 이용해 평화로운 정권이양을 추구하고 나라와 국민에게 큰 잘못을 지지른 지도자를 법치주의 통제 하에 단죄 받게 했던 고도의 정치적 결단이 매우 올바른 것이었다'는 평가가 가능하다. 특히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 선거에서 졌으면서도 이를 인정하지 않고 몇 달 내내 미국을 초토화시키고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는 작금의 현실을 감안하면, 결국 당시 우리 국민이 한 마음 한 뜻에서 이루어낸 '대한민국식 민주주의'가 얼마나 괜찮은 것이었는지 깨달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판결 확정은 국민에 대한 진정한 사과가 전제된 ‘사면’을 가능하게 한다는 신호이다. 그동안 사면은 대통령의 고도의 정치적 행위라는 명분아래 정권 교체기나 대선을 앞두고 남의 편을 내 편으로 끌어오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어져 왔다. 그래서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이 아무런 반성과 사과를 하지 않았음에도 '무조건적이고 의례적인 사면'을 시켜주었고, 그 결과 몇 십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전씨가 진실을 왜곡시키고 억울함을 호소하게 만드는 계기를 제공하기도 했다. 
 
그래서 그런지 연초에 이낙연 민주당 대표가 아직 판결 확정도 되지 않은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사면 이야기를 꺼냈을 때 상당수 국민들은 불편해하고, 뜬금없어 했으며, 여당 지지자들조차 자신들의 당 대표를 비난하고 나서게 되었다.
 
물론 박 전대통령이 뇌물 수수 혐의 등을 부인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탄핵 당하기 전부터 수차례 자신이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씨와 함께 국정을 농단했다는 점을 인정하고 이에 대해서는 머리를 조아리며 사죄를 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비리를 저질렀다는 전직 대통령 중 가장 오래도록 차가운 구치소에 수감되어 형을 집행 받고 있기도 하다. 
 
상황이 이러하다면, 이제 문 대통령도 올 4월 시장 선거나 내년 5월 대선 등을 겨냥해 국민 통합의 관점에서 박 전대통령에 대한 사면을 언급하게 될 것이고 궁극적으로는 특별사면을 해줄 것으로 보인다. 
 
결국, 박 전대통령의 판결 확정은, “당신은 이러 이러한 죄를 지었다는 인정, 따라서 그 죄값은 이만큼이나 받아야 한다는 국민적 선언,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못을 인정하는 것처럼 보이기만 하면 얼마든지 '용서할 준비가 되어 있음을 선포하는, 신호탄이 되는 것이다.
 
노영희 법무법인 '강남'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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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