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이상 지속되고 있는 코로나19는, 각 사회가 알면서도 침묵했거나, 혹은 전혀 알지도 못했던 사회의 약점을 드러내고 있다. 가깝게는 프랑스혁명으로부터 멀게는 그리스의 직접민주주의로 거슬러 올라가는 서구민주주의의 위대함은, 개인의 자유와 공동체적 가치의 균형이 깨지는 순간 무너지기 시작했다. 모두가 한국이나 대만보다 나은 정치체제를 보유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프랑스, 영국, 미국의 방역은, 정치권력의 무능함과 개인의 자유를 공동체의 안전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 시민들에 의해 무너졌다. 그리고 유교적 권위주의 때문인지, 아니면 공동체적 시민의식의 발현 때문인지 모를 이유로 K-방역이라는 신화를 만들었던 한국사회는, 공동체보다 권력의 유지에만 관심을 갖는 정치와, 사회의 안전보다 헌금이 더욱 중요한 일부 종교에서 그 약점을 드러냈다.
한국의 방역이 거의 완벽할 정도로 확진자수를 통제하고 있던 약 1년전 이맘 때쯤, 대구에서 터진 신천지 교회를 통한 집단 확산으로 인해 한국은 발칵 뒤집혔다. 국가 전체가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하며 어렵게 유지하던 확진자 숫자는, 성경공부방을 이유로 방역지침을 어기고 종교집회를 지속한 신천지 교인들에 의해 폭증했다. 사이비종교가 유난히 극성을 피우는 나라라는건 모두 알고 있었지만, 사이비종교가 사적 피해를 넘어 국가 전체에 심각한 위협이 된 건 신천지가 처음이었다. 이만희 총회장 휘하 20만이 넘는 신천지 교인들은, 언제든 국가의 존립을 위협할 수 있는 한국 사회의 약점이었던 셈이다. 종교의 자유라는 헌법조항 때문에, 국가는 사이비종교의 해악을 알지만, 아무 조치도 취할 수 없다.
한국의 개신교 연합이 신천지를 이단으로 치부한다고 해서, 정통 개신교는 괜찮다는 뜻은 아니다. 신천지 사태가 잊혀질 때쯤, 코로나19 사태를 사기극으로 치부하며 광화문에서 대규모 집회를 감행했던 전광훈 목사는 한 때 한국기독교총연합회의 회장이었던 인물이다. 그는 신천지 사태를 겨우겨우 막아냈던 국민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안겨줘 놓고도 전혀 반성하지 않았다. 전광훈 목사가 기독교의 주류가 아니라고 변명하는 일부 개신교 신자와 목사가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코로나19 집단감염 뉴스를 도배하다시피 한 장소의 상당수가 개신교 교회였다. 심지어 은혜의강 교회는 코로나19를 예방하겠다며 신도들에게 소금물을 뿌렸다가, 오히려 집단감염을 초래했다.
얼마전엔 IME국제학교라는 개신교 개열 대안학교에서 수백명의 집단감염이 확인되었고, 그 대안학교를 만든 마이클 조 선교사가 미국에서 했던 발언도 화제가 됐다. 그는 하나님이 자신과 수련회에 참석한 이들을 과학적으로 지켜준다는 황당한 말을 한다. 선교회가 매일 같이 모이고 자신이 전국을 돌아다니는데 아무도 코로나에 걸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종교와 과학이 상극이라는건 일종의 상식이지만, 이 정도면 진실이라고 봐도 될 듯 싶다. 여의도 순복음교회에서 벌어진 사건은 이런 생각에 종지부를 찍는다.
며칠전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이영훈 목사는 신도 전원에게 안티코로나카드를 배포했다. 그 카드는 창조과학자이자 유사과학자로 잘 알려진 연세대 김현원 교수가 만든 제품이다. 그저 황당한 사건이라고 넘기기엔, 그들의 과학에 대한 왜곡이 선량한 신도들뿐 아니라 교회와 아무런 상관도 없는 시민들에게 피해를 입힐 수 있다는 사실이 공포스럽다. 물론 이보다 더 실망스러운 점은, 순복음교회 신도들에게만 카드를 나누어준 그 이기적인 욕망이 아닐까 싶다. 교회와 신도만 살면 그만이라는 이 태도야말로, 한국사회에 보여주는 해악의 총체가 아닐까 싶다.
1517년, 루터가 면죄부 판매에 항의하는 글을 쓰면서 시작된 종교개혁으로, 기독교의 천년왕국 유럽은 개벽을 맞이해야 했다. 루터는 종교개혁까지 원하던 급진적인 사람이 아니었다고 한다. 그는 단지 자신의 지역에서 면죄부 판매가 철회되기를 바랬을 뿐이다. 하지만 결국 그의 용기가 이후 서구 근대문명의 형성에 이바지한 기독교적 공공성의 주춧돌이 되었다. 이후 개신교는 유럽 개혁의 핵심이었고, 20세기 나치의 광기에 저항하던 운동의 중심이었으며, 한 때는 제3세계 빈곤과 저개발의 심각성을 알리던 공익의 화신이었다. 한국의 민주화운동 또한 개신교의 지대한 협력 속에 이루어진 역사임을 부정하기 어렵다. 하지만 더이상은 아니다.
과학사를 면밀히 살펴보면, 기독교와 과학이 상극이라는 상식은 깨진다. 근대과학의 탄생에는 기독교가 기여한 부분이 분명히 존재하고, 심지어 근대과학 탄생의 주역들 중 상당수는 신을 증명하기 위해 노력한 과학자였다. 멘델이나 프리스틀리처럼 성직자이면서 위대한 과학자인 사람은 셀 수 없이 많고, 이들의 신앙은 과학적 이성을 통해 사회의 상식에 닿아 있었다. 한국 개신교에 필요한 건, 어쩌면 바로 이런 과학적 신앙인지 모른다.
김우재 초파리 유전학자(heterosis.kim@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