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칼럼)다시 노무현을 생각한다

입력 : 2021-05-24 오전 3:00:00
"권력에 맞서서 당당하게 권력을 한 번 쟁취하는 우리의 역사가 이루어져야만이 이제 비로소 우리의 젊은이들이 떳떳하게 정의를 얘기할 수 있고 떳떳하게 불의에 맞설 수 있는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낼 수 있다."
 
2001년 12월10일 제16대 대통령 민주당 후보 국민경선 출마를 공식 선언한 노무현 당시 상임고문의 연설 중 일부다. 영상기록을 통해 지금도 즐겨 듣는 이 연설은 여전히 투박하고 직선적이다. 어느 부분은 변칙적이기까지 하다. 그러나 한 올의 가식도 없는 진정성이 이를 압도한다. 많은 국민이 보았고 기억하는 노 전 대통령의 모습 그대로다.
 
그날의 연설은 총 2915자 였다. 원고는 없었다. 애석하게도 지금까지 회자되고 있는 부분은 흐름상 허리쯤으로, 770자 정도다. 가장 드라마틱한 곳이긴 하다. 그러나 잘 알려지지 않은 더 많은 부분 중에는 이런 대목도 있다. 역대 정부의 비전을 평가한 내용이다.
 
"어느 때인가 부터 제가 대통령이 되겠다고 말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많은 분들이 제게 '무엇을 했느냐'를 묻지 않고 '무엇을 하겠느냐?' 비전을 내 놓으라고 했습니다. 비전을 생각해봤습니다. 제 마음을 가장 끄는 비전은, 그것은 전두환 대통령이 5공 때 내 놨던 '정의로운 사회'였습니다."
 
그는 "노태우 대통령이 내 놨던 '보통사람의 시대'도 상당히 매력있는 비젼"이라고 말했다.
 
'노무현의 정의'와 '전두환의 정의'는 분명 서로 달랐다. 같은 것은 문언상의 의미일 뿐이다. '노무현의 정의'는 잠시나마 찬란하게 빛났던 참여정부에서 확인됐다. 굴곡이 있고 시각에 따라 평가는 다르더라도 분명 찬란했던 그 시절을 지금도 추억하는 이는 필자만은 아닐 것이다. 
 
'이명박근혜' 시대에도 정의는 각각의 정부가 외친 정책운영 방향이었다. 그러나 역사에 남은 그 시대의 정의는 그들만의 정의였다.
 
국정농단 사태에 봉기한 시민들의 촛불혁명으로 세워진 문재인 정부도 정의를 추구해왔다. 그 성패는 역사에 어떻게 기록될지는 모른다. 
 
다만, 현실은 고통스럽다. 취업난과 집값만 봐도 그렇다. 청년들에게 더욱 가혹하다. 결혼해서 아이 낳고 가정 꾸려 소소하게 사는 재미 조차 모르고 늙어가는 이들이 적지 않다. 투기 바람에 놀란 직장인들은 '영끌'로 투자했다가 그야말로 영혼까지 탈탈 털리고 있다. '벼락부자'와 '벼락거지'만 사는 세상이다. 그러나 어찌 이들을 탓할 수 있겠는가. 이렇게 만든 사람들은 위정자들이다.
 
국가가 궁극적으로 추구해야 할 가치는 더 많은 국민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다. 그것이 동서고금을 관통하는 '정의'이다. 시대정신은 변할지라도 시대적 가치는 변하지 않는다.   
 
입맛따라 내 국민, 네 국민을 따로 알고 있는 정치판에서 나오는 국민에 대한 걱정은 그래서 진정성이 없어 보인다. '차가 밀려도 비가 와도 다 노무현 탓'이라고 했던 것 처럼, 이 역시 코로나19 때문이라고 하겠는가.
 
여야 대선 후보들이 봉하로 광주로 대구로 달려가고 있다. 저마다 자신들의 '정의'를 부르짖는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2주기에, 그가 20년 전 서울 힐튼호텔에서 한 질문을 지금의 대선 후보들에게 던진다.
 
"저도 그렇게 말하면 됩니다. 저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말하는 제 가슴은 공허합니다. 그 말을 누가 못하냐? 누가 무슨 말을 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누가 할 수 있느냐가 중요한 것 아니겠습니까?"
 
최기철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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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