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지영 기자]
HMM(011200) 육상노조가 사측이 제시한 임금 8% 인상안에 거세게 반대하며 파업을 향해 가고 있다. 현재 해상 물류난이 극심한 만큼 파업 카드를 만지작거리는 노조의 심정도 편치는 않다. 그런데도 물러서지 않는 건 경영난으로 지난 수년간 동결한 임금을 이제라도 보전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육상노조와 같은 내용으로 올해 임금과 단체협약을 하는 해상노조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전정근 HMM 해상노조 위원장(사진)은 22일 "떠다니는 배에서 휴일 없이 견뎌온 건 회사와 채권단이 충분한 보상을 해줄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라며 "우리는 임금 인상이 아닌 정상화를 해달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회사가 경영난에 빠지면서 육상노조는 2012년부터 8년간 해상노조는 2013년부터 6년간 임금을 동결했다. 최근 5년간 우리나라 명목임금이 매년 3~5% 수준씩 상승하는 동안 HMM 직원들의 월급만 제자리였던 것이다.
HMM 육·해상노조가 사측과 올해 임단협 합의에 이르지 못하면서 파업 전운이 감돌고 있다. 인물 사진은 전정근 HMM 해상노조 위원장. 사진/HMM·해상노조
하지만 올해 해운업이 역대급 호황을 맞고 HMM의 영업이익이 창립 이래 최대치를 찍으면서 잠잠하던 직원들도 목소리를 내고 있다. 육·해상노조는 올해 임금 25% 인상을 주장하고 있다.
전 위원장은 "예상과 달리 5.5% 임금 인상과 기본급 수준의 격려금 100% 제시안이 나오자 조합원들이 크게 실망한 분위기"라고 말했다. 사측이 채권단인 산은을 설득해 상향한 조정안 또한 8% 임금 인상에 그치자 투표에 참여한 육상노조 조합원의 95%가 반대표를 던졌다. 이 투표에는 전체 조합원 99% 이상이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 위원장은 "국내 1위 컨테이너선사인 HMM의 임금은 글로벌 해운사와 비교해 크게 뒤처져 있다"며 "MSC의 절반도 안 되고 중소형 선사와 비교해도 낮은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MSC는 세계 2위 규모 스위스 선사로 규모를 키우면서 최근 한국 선원 모집에 나선 바 있다.
그는 "사측과 산은은 글로벌 선사와 경쟁하라면서 임금은 비교해선 안 된다고 한다"며 "운송 서비스 질을 높이려면 인적 요소를 빼고 논할 수는 없는 것 아니냐"고 토로했다.
HMM 해상노조 조합원이 지난 6월 HMM 선박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HMM 해상노조
임금과 근무조건에 대한 불만으로 회사를 떠나는 직원들도 부쩍 늘었다. 해상 직원의 경우 최근 1년 새 100명에 달하는 인원이 짐을 쌌다. 인원이 줄면서 남은 직원들의 업무는 더욱 가중되고 있다. 선원들의 경우 통상 6개월씩 승선 계약을 하는데 HMM의 경우 인원 부족으로 1년 가까이 배에서 내리지 못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전 위원장은 "선원들은 선박을 '떠다니는 감옥'이라고 말한다"며 "모든 게 통제당하고 휴일 없이 일만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임금이나 처우 개선을 하지 않으니 수시 채용을 해도 아무도 지원하질 않는다"며 "인력 부족으로 남은 사람들은 아내가 출산하거나 부모님이 돌아가셔도 배에서 내리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도 임금과 처우에 대한 HMM 직원들의 불만 글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대체로 임금이 오르지 않아 사기가 떨어진다는 지적이 많다. 한 직원은 '저임금으로 인해 희망 없음. 관리단 체제 하에서 변하기 어려움. 회사 분위기 어두움'이라고 회사를 평가했다.
이처럼 불만은 커지는 가운데 사측과 합의도 불발되면서 노조는 파업에 돌입할 태세다. 육·해상노조 모두 고용노동부 중앙노동위원회가 조정 중지 결정을 내리면서 합법적으로 파업권을 확보한 상태다.
HMM 선원들이 피켓을 들고 항의하고 있다. 사진/HMM 해상노조
다만 전 위원장은 "노조 또한 파업은 최대한 피해야 한다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코로나19로 물류 대란이 빚어진 가운데 배를 멈춰 세우는 건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선박 공간을 공유하는 해운동맹으로부터 퇴출당할 수 있다는 우려도 크다. 특히 해상노조의 경우 선원법에 따라 운항 중인 선박이나 외국 항구에 있는 선박에서는 쟁의 행위를 할 수 없어 파업하더라도 제약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전 위원장은 "쟁의 행위를 제한할 정도로 중요한 직업이라면 처우는 당연하게 개선돼 왔어야 하는 것 아니냐"며 "쟁의는 제한하고 처우 개선은 못 해주겠다고 하니 우리가 노예라는 생각까지 든다"라고 말했다. 이어 "국가 물류를 책임지는 사회 필수 인력의 삶의 질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없다"고 강조했다.
김지영 기자 wldud91422@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