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지영 기자] 공정거래위원회가 운임 담합을 이유로 최대 8000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면서 해운업계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공정위가 중국과 일본 노선 운임 담합 조사에도 착수하면서 과징금 규모는 최대 2조원까지 늘어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과징금이 실제로 부과되면 규모가 작은 중소 해운사는 파산에 이를 수밖에 없다는 게 업계의 생각이다.
13일 해운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이르면 이달 한국~동남아 항로 운임 담합 해운사들에 대한 과징금 부과 여부를 최종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공정위는 지난 5월 국내외 23개 선사가 15년간 동남아 항로 운임을 담합했다는 내용의 심사보고서를 냈다. 심사보고서는 검찰의 공소장 역할을 한다.
공정위 조사에 따르면 국내 12개 선사와 해외 7개국 11개 선사는 이 노선에서 운임을 담합하며 122차례에 걸쳐 이를 제대로 신고하지 않았다. 이에 따라 화주가 피해를 본 것으로 판단되기 때문에 제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과징금은 이 기간 발생한 매출액의 8.5~10%에 이르는 규모다. 국내 선사들에 대한 과징금만 최대 5600억원에 달하며 업체별로 최소 31억원에서 최대 2300억원으로 추산된다. 외국 해운사들의 경우 최대 2400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할 전망이다.
지난달 1일 오전 부산 남구 신선대부두에 정박한 컨테이너선. 사진/뉴시스
해운업계는 선사들 간 운임 공동행위는 해운법 29조에서도 인정한 내용이라며 과징금 조치에 반발하고 있다. 일반적인 담합과 달리 해운사들의 운임 담합은 폭리보다는 중소 선사들의 최소 이익을 보장하기 위한 목적이기 때문이다. 과거 대형 선사들이 가격을 낮춰 중소 선사들이 줄도산하는 사례가 있었고, 이를 예방하기 위해 한국도 1978년 해운법을 개정해 담합을 허용하게 됐다는 것이다.
부산상공회의소는 지난 7일 운임 담합에 대한 과징금 부과에 반대하며 공정위에 탄원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부산상의는 탄원서에서 "공정위 심사관의 과징금 부과 방침이 현실화한다면 국내 해운법뿐만 아니라 국제적 관례에도 어긋나 국제 해운시장에서도 고립을 자초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국해운협회를 비롯해 전국해상선원노조·부산항발전협의회 등 주요 해운 단체들은 청와대 앞 1인 시위에도 나섰다.
공정위도 해운법을 고려해 운임 담합 자체보다는 해운사들이 절차를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는 점을 문제 삼고 있다. 해운사들은 운임 공동행위 시 화주 단체와 협의하고 해양수산부에 관련 내용을 신고해야 한다. 이에 따라 신고한 운임 공동행위는 적법하지만 그렇지 않은 122번의 담합은 제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해운업계는 15년간 19회에 걸쳐 매년 1회 이상 해수부에 공동행위를 신고했고, 그렇지 않은 건은 앞서 신고한 운임보다 낮아 대상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해운협회 관계자는 "해운법에 따라 40년간 이어온 운임 공동행위를 공정거래법으로 제재하는 건 말이 안된다"며 "만약 절차상 문제가 있었다면 해운법에 따라 과태료를 부과하거나 처벌하면 된다"고 말했다.
반발이 거세지자 국회에서는 공정거래법으로 해운사들의 공동행위를 제재할 수 없도록 해운법 개정안까지 발의된 상태다. 공정위 과징금 부과가 현실화할 경우 경영 여건이 열학한 중소 선사들은 도산 위기에 내몰릴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해운업계만 공정위 담합 제재에서 제외하는 건 지나치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지영 기자 wldud91422@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