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지영 기자]
현대중공업(329180)그룹의
대우조선해양(042660) 인수가 유럽연합(EU)의 벽을 넘치 못한 채 3년째 제자리걸음이다. 지역사회도 합병을 반대하면서 오는 30일인 인수 시한은 또 한번 미뤄질 것이란 관측이다. 당초 인수 시한은 지난 6월 말이었지만 절차가 마무리되지 않으면서 3개월 연장된 바 있다.
23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중공업그룹과 대우조선해양 인수합병(M&A)은 EU와 우리나라, 일본 당국의 승인을 받지 못하면서 3년째 지지부진한 상태다.
대우조선해양 채권단인 산업은행은 2019년 1월 매각을 발표했고 같은 해 2월 현대중공업과 M&A 계약을 체결했다. 두 기업이 합병하기 위해선 우리나라를 포함해 6개국 경쟁당국에서 심사를 받아야 하며 중국과 싱가포르, 중국에선 승인을 받았다.
아직 심사가 진행 중인 3개국 중에선 EU의 승인 여부가 가장 관건이다. EU는 올 초 세계 1·2위 크루즈선사인 이탈리아 핀칸티에리와 프랑스 아틀란티크조선소의 합병을 최종 불허할 만큼 독과점에 민감하기 때문이다. EU가 승인 결정을 내리면 한국과 일본도 심사를 마무리 지을 것으로 보인다.
심사를 담당하는 EU집행위원회는 지난해 현대중공업에 LNG선 독과점 우려를 해소할 방안을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두 기업 합병 시 세계 LNG선 시장 점유율은 60% 이상으로 확대된다. 당초 업계에선 EU가 컨테이너선 점유율을 문제 삼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으나 최근 LNG선 시장이 커지면서 이 분야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것으로 보인다. LNG선을 발주하는 선사 중 상당수가 유럽에 있어 EU가 다른 선종보다 더욱 민감하게 살펴본다는 해석도 나온다.
현대중공업그룹은 독과점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 LNG운반선 건조 기술을 중소 조선사에 이전하고 수년간 가격 인상을 제한하는 방안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EU는 지분이나 사업부 매각 같은 보다 근본적인 대안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현대중공업그룹의 대우조선해양 인수가 EU 기업결합 심사 지연으로 미뤄지고 있다. 대우조선해양 조선소. 사진/대우조선해양
다만 EU의 요구대로 LNG사업을 따로 떼 매각하는 건 현실적으로 쉽지 않아 보인다. LNG선은 컨테이너선, 초대형 원유운반선(VLCC)을 만드는 도크(생산설비)에서 함께 제작해 생산을 분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회사 조직에 LNG선 사업부가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인력을 분리하기도 쉽지 않다.
이처럼 LNG선 사업부 매각이 어려운 만큼 시장에선 자회사 지분 정리를 통해 시장 지배력을 낮출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현대중공업그룹 조선 부문 자회사로는 현대미포조선과 현대삼호중공업이 있다.
EU의 심사 지연과 함께 대우조선해양 노조와 지역사회가 합병을 반대하는 것도 걸림돌이다. 이들은 합병 시 구조조정은 물론 불어난 덩치를 토대로 하청업체에 대한 갑질이 심해질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지역 기자재업체들 또한 EU가 요구하는 LNG선 독과점 해소를 위해 생산량이 줄면 물량 감소가 불가피하다며 매각 반대를 외치고 있다.
변광용 거제시장은 지난 15일 문재인 대통령에 보낸 서한에서 "1200여 협력사·기자재업체와 산업생태계를 이루며 경남도와 거제시 경제를 뒷받침하고 있는 대우조선이 이대로 매각되면 경남지역 전후방산업의 동반 몰락과 대량실업 발생 등 지역경제는 치명적 타격을 입을 것"이라며 매각 철회를 호소하기도 했다.
한국 공정거래위원회 또한 EU의 심사와 함께 이런 부분도 고려해 승인을 미루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딜 무산 시 대우조선해양을 구제할 만한 마땅한 방안이 없는 만큼 공정위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은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노조와 지역사회의 책임 없는 권리 주장을 어디까지 수용해야 하는지, 기업결합이 승인되지 않았을 경우 책임은 누가 지겠다는 것인지 모르겠다"며 "이번 거래가 틀어지면 대우조선 정상화가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지영 기자 wldud91422@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