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내 인생의 특별한 일주일

입력 : 2021-11-01 오전 6:00:00
“누나, OOO가 뇌출혈로 죽었대요.”
 
갑자기 머리가 띵해지는 것 같았다. 고등학교 후배였던 그는, (고등학교 때) 나와 같은 불어과였는데 학교 졸업하고 분당 쪽에 학원을 여러 개 크게 차렸다가 사정이 좋지 못했었다. 급기야 나한테까지 돈을 빌려달라고 하였고 갚는다는 약속을 번번이 어기면서 이런 저런 사정으로 사이가 매우 서먹해졌었다. 그 후 연락을 끊고 지냈는데 뜬금없이 그가 문득 생각나더니 잘 지내나 궁금해졌었다. 별 일 없겠거니 했는데 그날 밤 동문회 페북에서 그의 부고를 듣게 되었다. 놀래서 그의 페북에 가보니 아직도 나와 찍은 사진이 올라와 있었다. 먹고 살려고 참 열심히도 노력하던 친구였는데 40대 후반에 뜻밖의 비보를 전해 듣고 황당하기도 했고, 형편이 어려워져서 힘든 차에 그의 영혼이 나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러 왔었나 하는 쓸데없는 생각까지 스치면서 많이 미안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그날 이후 1주일 새에 조의금으로만 100만원이 넘게 나갔다. 그만큼 부고가 많았다는 얘기다. 원래 여기저기서 경조사 소식이 많이 오는 편이고, 통상 환절기에는 지인들의 부친상이나 모친상 등이 계속 이어지기에 그 다음 들려온 “OOO 의원의 부친상” 소식은 그러려니 했다. 그런데 그날 하루만 3명 이상의 부고가 들려왔고, 변협 집행부에서 친하게 지냈던 혈기 왕성한 변호사님이 골프치고 돌아오신 그 날 밤에 주무시다가 심정지로 돌아가셨다는 소식도 듣게 되었다. 그 분 역시 60이 안 되는 나이였는데 맨 날 허허 웃으시며 뜬구름 잡는 얘기도 곧잘 하셔서 우리끼리는 ‘도사’라며 놀리기도 했었는데 갑자기 돌아가셨다니 믿기지 않았을 뿐 아니라, 돌아가시는 날까지 골프장에서 그렇게 즐거워하시고 식사도 맛있게 하셨다는 말을 들으니 이게 보통 일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 소식을 듣고 놀라는 것도 잠깐. 그 다음날부터 하루걸러 몇 건씩 부고가 들여오더니 급기야 지난 금요일에는 대학원 직속 후배였던 K가 동맥경화로 죽었다는 소식이 2년이나 늦게 전해졌다. 아마 직장에서 이른 명퇴를 하고 혼자 살던 친구라 소식이 안 전해졌었나보다. 자초지종이 궁금해서 그 소식을 잘 알 것 같은 후배 교수에게 연락을 해보니 이번에는 그 친구 왈 ‘우리 장인어른이 돌아가셔서 지금 장지에 다녀오는 길’이라는 거였다. 그 교수와는 이번 주에 만나기로 되어 있었는데, 이게 무슨 조화인지 너무 놀라 입안에 침이 바짝바짝 마르는 느낌에 인생무상을 경험하게 되었다.
 
'밤새 안녕'이라더니, 참으로 무섭고 서늘한 느낌이 등골을 오싹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그 와중에 부동산 문제로 분쟁중인 J씨가 연락을 하더니 ‘조정’을 하는 게 좋겠다면서 자신이 변호사비로 지불한 5천만 원을 대신 내달라는 것이었다. 황당하고 어이가 없었지만, 그 말을 하는 그 사람의 얼굴색이 매우 좋지 못하고 얼굴색이 초라하며 비굴해 보이기까지 해서 당장 뭐라고 답을 할 수 없었다. 게다가 그 분쟁으로 인하여 집에 계신 부모님들도 편치 못한 상황이었기에 식구들과 의논을 하게 되었는데 동네에서 작은 의원을 하는 동생이 “누나, 그냥 주고 끝내요. 세상 살아보니 그런 게 아닌 것 같아. 우리 병원 환자 중에 다른 곳보다 진료비가 천원 더 나왔다며 억울하다고 하는 사람들도 많은 세상이라 나도 이래저래 많이 마음을 다쳐서 그런지 이제는 거의 화도 안 나네요. 부모님 마음 편한 게 가장 좋지 않겠어요?”라는 것이다. 평소 같았으면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펄펄 뛰면서 “정의적 관점에서도 그런 억지는 받아주면 안된다.”라고 큰 소리를 쳤겠지만, 부모님 얘기를 꺼내니 마음이 약해졌다. 
 
얼마 못 사는 인생 아등바등 싸우면서 사는 것도 싫고, ‘사필귀정’과 ‘새옹지마’라는 말이 있으니 결국 나쁜 끝은 오래 못 가고, 좋은 끝은 그 복을 받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주변에서 부고가 그렇게 많이 들여오니, 큰 수술을 하시고 건강이 좋지 못한 부모님도 걱정이 되었고, 아무래도 내가 그나마 형편이 좀 나으니 양보하는 게 맞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원래는 따로 살았는데, 어머니가 파킨슨병에 걸렸다. 게다가 우연치 않게 어머니의 심혈관이 상당히 막혀있고 예후가 좋지 못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버지 역시 협착증 탓에 다리와 허리가 좋지 못해 보살핌이 필요한 상황이라 서둘러 수술을 마치고 같이 모시고 살게 되었다. 매일매일 같이 살다보니 자잘한 다툼과 서운함이 많았지만, 그래도 내 인생의 특별한 지난 일주일을 경험하고 나니 이렇게라도 같이 지낼 수 있는 게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깨닫게 되었다. ‘소탐대실’의 교훈을 잊지 말고, 한 발 양보하면서 착하게 사는 게 가장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말이다.
 
노영희 법무법인 '강남'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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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