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대중음악신의 ‘찬란한 광휘’를 위해 한결같이 앨범을 만들고, 공연을 하고, 구슬땀을 흘리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럼에도 TV, 차트를 가득 메우는 음악 포화에 그들은 묻혀지고, 사라진다. ‘권익도의 밴드유랑’ 코너에서는 이런 슬픈 상황에서도 ‘밝게 빛나는’ 뮤지션들을 유랑자의 마음으로 산책하듯 살펴본다. (편집자 주)
팬데믹 장기화로 국가 간 장벽이 높아진 시대에도 록은 죽지 않는다. 한국, 독일 메탈 음악이 시공을 넘어 홀로그램 협연 무대를 펼친다.
오는 5~6일 저녁 8시 세계적인 기타리스트 빅토르 스몰스키(53)는 한국 밴드 메스그램과 공연 ‘The Rock Online’으로 양국 음악 팬들을 만난다.
구소련 연방 벨라루스 공화국 출생인 스몰스키는 80년대 중반 결성된 독일 유명 헤비메탈 그룹 레이지(Rage)를 거친 세계적 기타리스트다. 클래식적 소양을 바탕으로 레이지 음악에 오케스트레이션을 적극 활용해왔으며, 현재 심포닉 파워메탈 밴드 알마낙(Almanac)을 주도하고 있다.
2004년 ‘부산 국제 록 페스티벌’을 시작으로 그간 네 차례 한국을 찾았다. 2일 화상으로 기자와 단독으로 만난 자리에서 스몰스키는 “코로나 사태로 대중음악계가 끔찍한 광경을 맞게 된 것은 세계적인 공통 현상”이라며 “어려운 시기지만 한국과 독일의 메탈음악을 독특한 방식으로 보여줄 수 있다는 점이 무척이나 설렌다”며 웃어보였다.
앞서 지난달 30일 스몰스키는 이번 공연 녹화를 위해 독일 스튜디오에 마련된 모니터 앞에 앉아 기타를 잡았다. 홀로그램 기술 구현상 난생 처음 흰색 의상도 입어봤다.
“무대에선 늘 ‘올 블랙’만 입는데 흰 옷에 까만 배경이라니, 획기적인 방식이었습니다. 홀로그램으로 비춰진 제 영상 모습이 특별한 색으로 표현되더군요. 미래 SF 영화를 보는 것 같았습니다.”
공연에서 그는 레이지 시절부터 알마낙까지 대표곡 4곡을 기타로 펼쳐놓는다. ‘All I want’, ‘Self-blinded eyes’ 순서에서는 메스그램 베이시스트 찬현이 합류해 홀로그램인 그와 듀엣 협연도 펼친다.
“한국을 찾을 때마다 장래 유망한 음악가들이 많다는 사실에 매번 놀랍니다. 한국 특유의 부드럽고 유려한 멜로디는 아주 독특해요. 스탠다드 메탈이나 파워메탈 사운드를 베이스로 삼는 유러피안 스케일과는 다른 참신함이 있어요. 함께 잼을 하는 과정에서 늘 새로운 뭔가가 튀어나오기 때문에 배울 점이 많아요.”
스몰스키는 클래식 작곡가였던 아버지 영향으로 6살 때부터 피아노와 첼로를 익혔다. 11살 때부터는 기타의 매력에 빠져 벨라루스의 재즈칼리지에서 5년간 록과 재즈 세계를 탐험했다. 게리무어, 반 헤일런 같은 세계적인 기타리스트로부터 영향 받았으며 숀 레인을 사사했다. 릴렉스 상태에서 부드럽게 이뤄지는 특유의 속주는 레인과 교류하며 개발한 것이다.
“자신보다 연주력이 뛰어난 음악가들과의 교류는 중요합니다. 그러나 타인의 곡을 카피하지 않고 자신의 주법을 개발하려는 노력 역시 병행돼야 합니다. 음악은 내게 단 한 순간도 직업이었던 적이 없습니다. 그저 내가 원하는 바를 자유롭게 표현해주는 언어이자 삶 자체였습니다.”
2일 화상으로 만난 세계적인 기타리스트 빅토르 스몰스키(53). 80년대 중반 결성된 독일 유명 헤비메탈 그룹 레이지(Rage)를 거쳐 심포닉 파워메탈 밴드 알마낙(Almanac)을 주도하고 있는 그는 "지금의 메탈 시장은 '올드카' 시장과 같은 것"이라며 "어느 음악 장르든 업앤다운의 시기는 있다. 록은 죽지 않을 것"이라며 검지와 새끼 손가락을 펴보였다. 사진/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이 세계적인 기타리스트는 카레이싱 선수로도 활동 중이다. 지난 2년 간 독일 랠리크로스 챔피언 대회에서 두 차례나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메탈 음악으로 세계를 돌 듯 카레이싱으로도 마찬가지다. 멕시코, 미국, 유럽... 그래서일까. 센 음악은 아우토반 질주를 연상시킨다.
“무대 위 기타를 잡는 것과 자동차 핸들을 잡는 것은 비슷합니다. 일단 아드레날린이 치솟죠. 관객들은 미쳐있고요. 그리고 모든 신경을 집중해야 합니다... 내 손에.”
컴퓨터로 좋은 멜로디 샘플만 따와 음악을 제작하는 환경에 대해 독설도 거침없이 날렸다.
“그것은 ‘로보트 뮤직’ 아닐까요? 음악가라면 자신이 스튜디오에 가서 직접 악기들을 연주하면서 스토리 구조를 짜야죠. 그리고 무대 위에서 자신이 느낀 그대로를 라이브로 들려줘야 합니다. 그게 음악을 사랑하는 방식입니다.”
코로나 이전 인도 투어를 갔다가 시타르 사운드에 매료된 그는 최근 기타 사운드와 결합시키는 시도도 하고 있다. 내년 솔로 앨범을 내고 유럽 투어와 기타 워크숍을 계획하고 있다. 코로나 상황이 좋아지는 대로 한국 땅도 다시 밟을 예정이다.
“대체로 남미 관객들은 보통 굉장히 거칩니다. 유럽 관객들은 ‘얼마나 잘하나’ 하며 팔짱을 끼고 지켜보는 분위기고요. 이에 비해 한국 관객들은 아주 밸런싱이 좋아요. 흥겹게 뛰어 놀면서도 주변 사람들을 배려하고 친절하죠. 꼭 다시 찾고 싶어요.”
마지막으로 그는 자신의 음악 여정을 “문을 열면 쭉 펼쳐질 복도”라 했다.
“특정 목적지 같은 것은 없어요. 계속 걷고 또 걸어야 할 수평선 같은 것이죠.”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