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기철 기자] 명절 상여금 등을 통상임금에 포함할지 여부를 두고 현대중공업 근로자와 회사 측이 9년여간 싸워온 소송에서 근로자 측이 사실상 승소했다.
대법원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16일 오전 현대중공업 근로자 정모씨 등 10명이 회사를 상대로 낸 임금청구소송 상고심 사건에서 원고 일부승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부산고법으로 되돌려보냈다고 밝혔다.
이번 사건은 근로자들이 짝수달에 받아 온 정기상여금과 설·추석에 지급된 명절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되는지와 노동자들이 3년치 소급분 지급을 회사에 요구하는 것이 신의성실의 원칙(신의칙)에 반하는지 여부가 쟁점이었다. 특히 소급분 지급을 인정할 경우 회사로서는 최대 6300억원대의 부담을 안게 되고, 1심과 2심이 '신의칙 적용'을 서로 달리 했기 때문에 관심이 집중됐다.
법조계 "파기환송 실익 적어 보여"
파기환송의 경우 원심 법원에서 다시 재판이 열리지만 대법원이 쟁점이 됐던 통상임금 재산정상의 신의칙에 대한 법리를 분명히 제시했기 때문에 실익은 없어 보인다는 것이 법조계 평가다.
지난해 11월23일 조경근 전국금속노동조합 현대중공업지부 지부장이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통상임금 소송에 대해 조속한 판결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대법원은 먼저 명절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해야 하는지 부분에 대해 "특정 시점이 되기 전에 퇴직한 근로자에게 특정 임금 항목을 지급하지 않는 관행이 있더라도, 단체협약이나 취업규칙 등이 그 관행과 다른 내용을 명시적으로 정하고 있으면 관행을 이유로 해당 임금 항목의 통상임금성을 부정하는데는 특히 신중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이어 "회사가 1994년경부터 중도퇴직자에게 상여금을 계산해 지급하기 시작했고, 회사의 2012년 급여세칙은 명절상여를 포함해 상여금을 지급일 이전 퇴직자에게도 근무일수에 비례해 지급한다는 점을 명시하고 있다"면서 "개인 또는 노동조합이 명절상여금 지급일이나 그 밖의 특정 시점 이전에 퇴사함으로써 명절상여를 받지 못한 경우 명절상여금 지급을 요구하거나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는 사정만으로는 급여세칙 등 취업규칙상 지급 규정이 효력을 상실했다거나 다른 내용으로 변경됐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또 "회사가 퇴직한 근로자에게 명절상여금을 지급하지 않는다는 사정을 공지하거나 근로자들이 이러한 사정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었다고 볼 자료도 없다"고 지적했다.
"기업, 합리적 경영했다면 악화 예견"
근로자들의 통상임금 재산정 청구가 신의칙에 위배되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보다 분명한 기준을 제시했다. 재판부는 "기업이 일시적으로 경영상의 어려움에 처하더라도 사용자가 합리적이고 객관적으로 경영 예측을 했다면 경영상태 악화를 충분히 예견할 수 있었고 향후 경영상의 어려움을 극복할 가능성이 있는 경우에는 신의칙을 들어 근로자의 추가 법정수당 청구를 쉽게 배척해서는 안 된다"고 판단했다.
같은 맥락에서 현대중공업의 경우 매출액과 영업이익·당기순이익 등 경영지표가 2013년까지 전반적으로 양호했던 점, 같은 기간 매출총이익률과 영업이익률·당기순이익률이 선박가격 하락 등으로 감소하는 추세를 보였지만 경영상태가 열악한 수준은 아니었다고 봤다.
재판부는 특히 "국내외 경제상황의 변동에 따른 위험과 불이익은 피고와 같이 오랫동안 대규모 사업을 영위해 온 기업이 예견할 수 있거나 부담하여야 할 범위 내에 있다"고 판단했다.
현대중공업의 경영상태가 2014년과 2015년 무렵 악화됐는데, 2012년부터 주요 수출처인 유럽의 경기침체에 따른 수출량 감소와 중국 기업의 급속한 성장세에 따른 수출 점유율 하락, 동종업계의 경쟁심화 등이 그 원인으로, 예견할 수 있는 리스크는 아니었지만 회사가 극복할 수 있는 일시적 어려움이라는 것이다.
"현대중공업, 존립 위태롭지 않아"
재판부는 "통상임금 재산정 결과 피고 소속 근로자들의 통상임금 상승률과 실질임금 인상률도 상당할 것으로 보이지만, 추가 법정수당의 규모 등과 그동안의 회사 매출·영업이익·당기순이익 등 손익 추이 또는 경영성과의 누적 상태 등에 비춰 보면, 추가 법정수당의 지급으로 피고에게 중대한 경영상 위기가 초래된다거나 기업의 존립 자체가 위태롭게 된다고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앞서 정씨 등은 2012년 12월 '격월로 지급되는 정기상여금 700%와 설·추석 명절상여금 100%을 합친 상여금 800%를 통상임금에 포함시켜달라'며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이를 적용해 인상된 임금 3년치를 소급해 지급하라는 청구도 했다.
2015년 1심 법원은 근로자들의 주장을 모두 받아들였다. 다만, 임금 소급분은 최소 기준인 근로기준법을 적용하라고 판결했다. 반면 2심은 명절 상여금 100%을 제외한 나머지 상여금분 700%만 통상임금으로 판단했다. 1심에서 인정한 소급청구도 '소급청구분을 인정할 경우 회사의 재정적 부담이 커 경영상 어려움, 나아가서는 회사 존립이 어려울 수 있어 근로자들의 충구는 신의칙에 위배된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최기철 기자 lawch@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