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18일 하루 차이를 두고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 인물들이 있다. 17일 민정수석비서관으로 임명된 김영식 변호사, 18일 더불어민주당 선거대책위원회에 합류한 이정헌 JTBC 기자와 안귀령 YTN 앵커가 당사자다. 정권 임기 말 민정수석 인사가 무슨 대수냐고 볼 수도 있다. 대선정국에 여야를 막론하고 수많은 각계 인사들이 선대위에 합류하는 것 또한 흔한 뉴스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들의 행보가 불편한 것은 이들의 원래 직업 자체가 정치권과 거리가 멀어야만 했기 때문이다.
민정수석비서관으로 임명된 김 변호사는 부장판사로 재직 당시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이 연루된 ‘사법부 블랙리스트 의혹’이 불거지자 검찰 수사를 촉구하는 등 법원 내 개혁에 앞장섰다. 2018년 전국법관대표회의에서는 “삼권분립을 지켜야 하는 최고법원이 얼마나 청와대의 로펌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했는지 알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렇게 법원과 권력의 유착을 비판하고 사법권 독립을 강조했던 김 변호사는 2019년 갑자기 법원에 사표를 내고는 청와대 법무비서관으로 직행했다. 이후 대형로펌으로 잠시 직장을 옮기더니 대통령 비서실의 꽃이라 불리는 민정수석의 자리에까지 간 것이다.
헌법에는 엄연히 '국회-정부-법원'을 별도의 장으로 규정하여 권력분립원리를 구현하고 있다. 법원은 국회나 정부의 권력 행사를 통제하고 상호 견제하는 역할을 담당하라고 헌법에서 선언한 것이다. 법관이 권력을 쫓게 되면 결국 그가 선고한 판결에 대한 신뢰는 땅에 떨어지게 되고, 이는 결국 사법 불신으로 이어지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 변호사는 그가 그토록 강조했던 사법권 독립을 휴지통에 버리는 것에 아무런 거리낌도 없었다.
이정헌 JTBC 앵커와 안귀령 YTN 앵커도 마찬가지다. 물론 이들은 억울할 수도 있다. 그동안 수많은 언론인들이 정치에 참여했고, 누군가는 청와대에서, 누군가는 국회의원에 당선되서 큰소리를 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악습이 정당한 항변사유가 될 수는 없다.
언론의 자유와 독립성은 민주주의 핵심적 가치다. 따라서 방송편성의 자유와 독립은 보장되고, 누구도 방송편성에 관하여 법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어떠한 규제나 간섭도 할 수 없도록 보장하고 있다.
헌법재판소도 이정현 홍보수석비서관이 2014년 KBS 보도국장에게 전화해 9시 뉴스의 세월호 여객선 침몰 사건에 대한 해경 비판 뉴스에 항의하고, 향후 비판 보도를 중단 내지 대체할 것을 요구한 혐의로 1심 법원에서 유죄를 선고받고 방송법에 대한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한 사건에서 “방송의 자유는 민주주의의 원활한 작동을 위한 기초인바, 국가권력은 물론 정당·노동조합·광고주 등 사회의 여러 세력이 법률에 정해진 절차에 의하지 아니하고 방송편성에 개입하여 자신들의 주장과 경향성을 대중에게 전달하고 여론화하는 일이 발생한다면, 국민 의사가 왜곡되고 사회의 불신과 갈등이 증폭되어 민주주의에 중대한 위해가 발생하게 된다” 고 결정했다.
언론매체는 국민의 정치적 의사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특히 대선 과정에서 뉴스를 진행하는 앵커의 경우 정치적 중립성이 각별히 요구됨은 당연하다. 그런데 대선 관련 뉴스를 보도하던 앵커가 갑자기 특정 후보 캠프로 자리를 옮기게 되면 그가 방송에서 전했던 뉴스들은 자연히 특정 정파에 유리한 것이 아니냐는 불신의 늪으로 오염되기 마련이다. 앵커의 자리에서 물러난지 불과 열흘도 되지 않아 특정 후보 캠프로 자리를 옮긴 두 앵커에 대해 JTBC 기자협회와 전국언론노조 YTN 지부가 앞장서서 비판에 나선 것은 어쩌면 방송의 중립성이 흔들릴 것에 대한 위기의식의 발로가 아닌가 싶다.
법관의 반복되는 청와대 직행이 문제 되자 2020년 법관의 경우 퇴직 후 2년간 청와대에 들어갈 수 없도록 법원조직법이 개정되었다. 이제 언론인에 대한 규제 입법이 필요하다. 국민은 법원에서 재판을 진행하는 법관도, 방송에서 뉴스를 진행하는 앵커도 특정 정파를 위해 뛰는 선수가 아닌 직업적 양심을 지닌 심판역할을 기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한규 법무법인 '공간' 변호사·전 서울지방변호사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