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정해훈 기자] 경찰이 취업제한 위반 혐의를 받는 이재용
삼성전자(005930) 부회장을 무혐의로 판단한 것에 대해 시민단체가 "면죄부를 줬다"고 반발했다.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는 10일 논평에서 "취업 그 자체보다 경영 참여를 막고자 한 취업제한 규정을 몰각한 경찰의 이번 무혐의 판단은 특정경제범죄법 14조의 취업제한 규정을 사문화(死文化)하는 무책임한 결정으로, 경제 윤리에 반하는 엄중한 범죄를 저지르고도 재벌 총수가 어떠한 거리낌도 없이 기업에 복귀해 또다시 막대한 영향력을 누리도록 면죄부를 준 잘못된 결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제 역할을 망각한 경찰의 이번 결정을 규탄하며, 법 위반 행위의 재발을 막고 해당 기업체를 보호해 건전한 경제 질서를 바로 세우기 위해 재수사에 나설 것을 촉구한다"며 "이재용 부회장의 취업제한 규정 위반의 엄중함과 사회적 의미를 고려해 해당 결정에 이의신청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들 단체는 "국정농단 사건으로 유죄 판결을 받고 수감됐던 이 부회장은 수감 중에도 부회장직에서 물러나지 않았고, 나아가 가석방 후에는 대외적인 업무 활동 등에 적극적으로 나서며 실질적으로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며 "그런데도 경찰은 이 부회장이 삼성전자에 취업 상태가 아니라고 판단해 특정경제범죄법상 취업제한의 취지나 실효성을 무색하게 했다"고 지적했다.
또 "단지 무보수에 미등기 임원이고, 상근하지 않는다는 표면적 이유만으로 취업 상태가 아니라고 해석하는 것은 그동안 재벌 총수 일가가 기업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면서도 법적 책임을 지는 등기이사는 맡지 않는 모순적인 행태가 지속된 우리 현실을 외면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아울러 "이 부회장은 대주주로서 보수를 받지 않아도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기업 지배 구조상 의사결정을 좌우할 수 있고, 일감 몰아주기 등을 통해 기업의 이익을 자신의 사익으로 편취할 수도 있는 영향력도 가지고 있다"며 "이 부회장의 경영 활동이 명백한데도 이를 취업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한다면 이는 재벌 2세, 3세 등 총수 일가는 아무리 기업에 해를 끼치는 법 위반 행위를 하더라도 아무 일 없다는 듯 기업에 돌아와 다시 제약 없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말이 된다"고 꼬집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7일 오전 서울 강서구 서울김포비즈니스항공센터를 통해 네덜란드 등 유럽 출장길에 오르고 있다. (사진=뉴시스)
앞서 참여연대, 경제개혁연대,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금융정의연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민생경제위원회 등은 지난해 9월1일 이 부회장을 특정경제범죄법 위반(취업제한)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이들 단체는 고발장에서 "이 부회장은 삼성전자의 자금 86억8081만 원을 횡령해 특정경제범죄법 3조 1항 1호를 위반한 범죄사실로 유죄 판결을 선고받아 확정됐는데도 8월13일 가석방된 직후 해당 범죄 행위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기업체인 피해자 삼성전자에 취업했다"고 주장했다.
해당 사건을 수사한 서울경찰청 금융범죄수사대는 지난 9일 이 부회장의 혐의에 대해 불송치 결정을 내렸다. 이에 대해 경찰은 이 부회장이 미등기 임원으로 상시적인 근로를 제공한다고 보기 어렵고, 보수도 받지 않았으므로 취업 상태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앞서 이 부회장은 박근혜정부 당시 국정농단 사건과 관련한 특정경제범죄법 위반(횡령) 등 혐의로 기소된 후 지난해 1월18일 파기환송심에서 징역 2년6개월을 선고받아 법정 구속됐다. 법무부는 징역형이 확정된 이 부회장에 대해 그해 2월15일 특정경제범죄법상 취업제한 대상자임을 통보했다. 이후 이 부회장은 지난해 광복절 기념 가석방 대상자에 포함돼 8월13일 서울구치소에서 출소했다.
특정경제범죄법 14조 1항 1호는 사기, 횡령, 재산국외도피 등으로 유죄판결을 받은 사람은 징역형의 집행이 종료되거나 집행을 받지 않기로 확정된 날부터 5년 동안 금융회사, 국가·지방자치단체가 자본금의 전부 또는 일부를 출자한 기관과 그 출연이나 보조를 받는 기관, 유죄 판결된 범죄 행위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기업체에 취업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정해훈 기자 ewigjung@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