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수민 기자] 북한군 피격으로 사망한 고 이대준씨 유족 측이 문재인 전 대통령을 직무유기 혐의 등으로 검찰에 고발하겠다고 밝혔다. 검찰이 전 정부의 국가안보라인에 대한 수사 속도를 높여가고 있는 가운데 문 대통령까지 수사대상으로 거론되고 있는 것이다.
이씨 유족 측 법률 대리인인 김기윤 변호사는 17일 "검찰이 박지원 전 국정원장을 소환조사하는 대로 문 전 대통령을 직무유기·허위공문서작성·공용전자기록손상 등 혐의로 검찰에 고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유족 측은 문 대통령이 이씨 상황을 보고받고도 구조 지시를 내리지 않은 것을 직무유기라고 주장하고 있다. 근거로는 2020년 9월24일 국방위원회 회의록과 같은 해 11월4일 국회 운영위원회 국정감사 회의록을 제시한다.
서해공무원 피격사건과 북한어민 강제 북송 의혹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사진=뉴스토마토
회의록에 따르면 서훈 당시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사고 당일인 9월 22일 오후 6시 36분 문 전 대통령에게 ‘서해에서 실종된 인원이 북측 해역에서 북 어선에 발견된 정황이 있다’고 서면 보고했다. 이에 문 전 대통령은 “정확한 사실 파악이 우선이다. 북에도 확인하도록 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이씨는 사건 발생일 오후 9시40분쯤 북한군으로부터 피격당했는데, 문 전 대통령이 그 전에 보고받고도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았다면 직무유기로 봐야 한다는 것이 유족 측의 주장이다. 유족은 또 허위공문서작성과 공용전자기록손상에 대해선 문 전 대통령이 이대준씨 아들에게 보낸 편지와 해경의 기자간담회 사이 ‘월북 조작’ 지시가 있었는지 확인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문 전 대통령은 2020년 10월8일 이씨 아들에게 쓴 편지에서 “지금 해경과 군이 여러 상황을 조사하며 총력으로 아버지를 찾고 있다. 모든 과정을 투명하게 진행하고 진실을 밝혀낼 수 있도록 직접 챙기겠다는 것을 약속드린다”며 “아드님도 해경의 조사와 수색 결과를 기다려 주길 부탁한다”고 했다.
2주 뒤 해경은 "(이씨가) 정신적 공황상태에서 현실 도피 목적으로 월북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유족 측은 그 과정에서 만약 청와대나 문 전 대통령이 월북 정황이 없다는 점을 알면서도 해경이 월북이라고 발표하는 것을 방치했거나, 사건에 관한 증거를 조작 또는 해경의 월북 조작 발표를 지시했다면 허위공문서 작성 방조와 공용전자기록손상에 해당할 수 있다는 주장한다.
법조계에서는 문 전 대통령에게 직무유기 혐의를 적용하기는 어렵다는 예측이 나온다. 검사 출신 한 변호사는 "직무유기가 성립되려면 직무의 고의적 반기 또는 포기 등의 요건이 필요하고, 사실상 성립되기 매우 힘든 혐의"라며 "문 전 대통령은 (북에도 사실 확인을 해보라는 등) 추상적으로나마 지시했기 때문에 직무를 유기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수사를 위해 대통령기록물을 확보하더라도 문 전 대통령이 월북 조작 발표를 지시했다거나 (월북 정황이 없다는 점을 알면서도) 월북이라고 발표하는 것을 방치했다거나 하는 등의 사실을 구체적으로 입증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검사 출신 법조계 인사도 "사고 당시 문 대통령의 판단이 늦어진 것으로 볼 수는 있지만 소극적으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안 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따라서 직무유기 혐의를 적용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앞서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1부는 전날 오전 박지원 전 국정원장과 서훈 전 국가안보실장, 서욱 전 국방부 장관의 자택에 검사와 수사관을 보내 휴대전화와 개인 수첩 등 증거물을 확보했다. 국방부 예하 부대, 해양경찰청 등 사건 관련자들의 사무실 등도 압수수색 대상에 포함됐다.
피고발인 측은 혐의에 대해 전면 부인 중이다. 박 전 원장 측은 이날 자택 앞에서 취재진과 만나 "자택 압수수색은 겁주고 망신 주려고 하는 것"이라며 "국정원을 개혁한 나를 정치적 잣대로 고발하고 조사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반발하기도 했다.
김수민 기자 sum@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