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사주 매입 ‘꽃놀이패’…너도나도 교환사채 발행

EB 통해 빚도 갚고 차익도 챙기고
자사주가 '오버행' 부담으로
주주환원 위해선 소각해야

입력 : 2023-03-08 오전 6:00:00
 
[뉴스토마토 박준형 기자] 지난해 증시급락 속에서 주가부양을 위해 매입했던 상장사들의 자사주가 주가 상승의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됩니다. 통상 자사주 매입은 주주환원 정책으로 인식되면서 주가에 긍정적인 흐름을 보이는데요. 금리상승 등으로 자금상황이 악화한 일부 상장사들이 매입했던 자사주를 교환사채(EB)의 형태로 시장에 풀고 있어섭니다. EB의 경우 신주를 발행하는 것은 아니지만 자사주 물량이 시장에 나오는 만큼 ‘오버행’(잠재적 매도물량) 부담이 커질 수 있습니다.
 
EB 발행 전년 대비 2배 증가…'오버행' 주의
 
(그래픽=뉴스토마토)
 
8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해들어 상장사들의 EB발행이 전년 대비 큰 폭으로 늘었습니다. 올해 초부터 지난 6일까지 국내 상장사들이 발행한 EB는 총 1044억원 규모로 전년 동기(517억원) 대비 2배가량 급증했습니다.
 
교환사채는 채권자의 의사에 따라 원금과 이자를 받거나 추후 채권을 발행한 회사의 주식 등으로 교환할 수 있는 채권의 종류 중 하나입니다. EB의 경우 채권투자자 입장에선 빠르게 자금을 회수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전환사채(CB)나 신주인수권부사채(BW)처럼 신주를 발행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별도로 락업기간이 정해져 있지 않죠. 예로 올해 EB를 발행한 기업 7곳 중 위니아(071460)이엔코퍼레이션(066980), 이스트소프트(047560), 클리노믹스(352770) 등 4곳은 EB 납일일 바로 다음 날부터 EB의 주식전환청구가 가능합니다. 이밖에 코아스템켐온(166480), 테라사이언스(073640), 미래나노텍(095500) 등도 납입일 이후 1~3개월 이후부터 주식전환 청구가 가능합니다.
 
EB의 경우 신주를 발행하지 않고 기존에 회사가 보유한 주식을 준다는 점에서 직접적인 주식가치 희석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은 긍정적입니다. 다만 회사가 보유하던 주식이 시장에 풀릴 수 있다는 점에서 개인투자자들에겐 물량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어 유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EB의 경우 보호예수 기간 없이 즉시 주식으로 전환가능하다는 점에서 단기적으로 주가 상승의 걸림돌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EB는 표면·만기이자가 0%로 발행되는 경우가 많은데요. 올해 EB를 발행한 상장사 7곳 중 위니아를 제외한 6개 기업이 모두 표면이자가 0%입니다. 결국 채권투자자는 주가가 상승할 때 EB를 주식으로 전환해 매도해야 수익을 볼 수 있는 구조인 거죠.
 
코아스템켐온·테라사이언스, 상장사의 EB 활용법
 
올해 발행된 EB의 특징은 자금 사용 목적에서부터 작년과는 큰 차이를 보였습니다. 작년의 경우 대부분의 자금이 타법인 취득 등 사업확대 목적을 위해 발행됐는데요. 올해는 모든 자금이 채무상환이나 운영자금의 목적으로 발행됐습니다. 발행규모 1044억원 중 393억원이 채무상환을 목적으로 발행됐으며, 나머지 651억원이 운영자금 목적으로 발행됐죠. 그만큼 기업들의 자금상황이 넉넉지 않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테라사이언스(073640)코아스템켐온(166480)의 사례를 보면 EB가 어떻게 활용됐는지 볼 수 있습니다.
 
줄기세포치료제 개발기업 코아스템켐온은 과거 코아스템이 자회사 켐온과 합병하면서 사명이 변경된 회사입니다. 코아스템켐온은 합병과정에서 보유하고 있던 켐온 주식을 자기주식으로 가져왔는데요.
 
이번 EB발행과 자회사합병 모두 앞서 발행했던 CB의 조기상환청구권(풋옵션) 행사와 관련이 있습니다. 코아스템은 앞서 줄기세포치료제 임상을 위해 410억원의 자금을 조달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당시 발행한 CB의 전환가액이 한도까지 하락하며 풋옵션 행사가 이어졌고, 재무건정성 악화 우려가 커졌죠.
 
코아스템은 자회사 켐온과의 합병을 통해 늘어난 자산으로 CB 풋옵션에 대응했는데요. 합병으로 취득한 자기주식 역시 CB 풋옵션 대응에 사용됩니다. 코아스템켐온은 올해 EB발행을 통해 조달하는 자금 323억원 중 108억원을 CB 상환에 사용했죠. 합병의 표면적 이유는 양사의 시너지 창출과 사업성 강화지만, 사실상 채무상환을 위해 합병과 EB발행이 이뤄진 셈입니다.
 
테라사이언스 역시 채무상환을 위해 EB를 발행했습니다. 테라사이언스는 앞서 지난 2021년 608만6951주의 자기주식을 매입했는데요. 당시 매입 가격은 140억원으로 주당 2195원이었습니다. 이번에 발행한 EB는 당시 매입한 주식을 포함한 615만6875주. 주당 교환가액은 2400원입니다. 테라사이언스는 채무상환을 위한 EB를 발행하면서 빌린 돈도 갚고 12억원이 넘는 차익까지 챙겼습니다.
 
테라사이언스와 코아스템켐온의 EB는 모두 표면이자가 0%인데요. 교환가액은 코아스템켐온 8870원, 테라사이언스 2400원입니다. 전환가능 주식수량은 각각 발행주식총수의 11.08%, 6.86%인데요. 주가가 교환가액을 넘어설 경우 시장에 물량이 출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사진=코아스템 홈페이지 캡처)
 
소각되지 않은 자사주, 결국 물량 부담으로
 
통상 자사주 매입은 기업이 주가안정 및 주주가치 제고를 내세워 진행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취득 후 소각되지 않은 자사주는 주가상승의 걸림돌이 될 수 있습니다. 상장사들이 매입한 자사주가 EB로 발행되고 있기 때문이죠.
 
자사주를 매입했던 상장사 입장에선 EB발행을 통해 필요한 자금을 조달할 수도 있고 주가 상승에 따른 차익도 기대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개인투자자들에겐 물량 부담으로 작용하는 만큼 EB발행 역시 주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EB의 경우 회사가 자금을 조달하는 대가로 자사주를 넘겨주는 방식이라 일반 주주들에겐 물량 부담이 생길 수밖에 없다”며 “주주환원책이 진정한 효과를 거두려면 자사주 취득에 그치지 않고 소각까지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박준형 기자 dodwo90@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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