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재영 기자]산업계가 고정비 상승 부담 속에 전기요금 추가 인상을 고민하는 정부 동향을 주시하고 있습니다.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등 1분기 적자폭이 확대될 것이 우려되는 반도체 업종을 비롯해 석유화학, 철강 등 국내 주력 수출 품목들이 전기사용량도 많습니다. 이들은 가뜩이나 부진한 실적 가운데 가격경쟁력 저하까지 이어질까 염려하고 있습니다.
3일 업계에 따르면 당정이 고심 끝에 전기요금 결정일을 미뤘습니다. 전날 발표를 앞두고 전기요금 인상은 유력했었습니다. 하지만 당정은 국민 물가부담과 최근 원자재 가격 하락 추세를 감안해 발표를 보류한 것으로 비칩니다. 이에 한국전력과 가스공사 등이 부실 확대 및 전력 수급 생태계 위기를 들어 요금 인상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올해 전기요금 인상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 시기는 한정적입니다. 당정은 전력사용량이 많은 여름철을 피하기 위해 봄철 인상이 유력할 것으로 점쳐집니다. 이에 따라 최종 결정이 잠정 보류됐지만 소폭이라도 인상될 것이란 게 중론입니다.
SK하이닉스 반도체 공장 전경. 사진=SK하이닉스
전기요금 올라 반도체 적자폭 확대
1분기 적자가 심각할 것으로 예상되는 반도체 업종은 전기요금 부담도 상당합니다. 작년에도 상당한 수준의 전력비용 증가가 이뤄졌습니다. 반도체 인력 유출을 막기 위해 급여 인상도 이뤄지는 터라 고정비 부담이 업체들을 짓누릅니다.
삼성전자의 경우 1분기 영업이익은 1조원 정도로 예측됩니다. 작년 1분기 14조원에서 13조원 정도 증발할 것이라는 게 평균적인 관측입니다. 반도체 사업에서만 수조원 적자가 생길 것으로 보입니다. SK하이닉스도 전분기 1조8983억원 영업적자에서 올 1분기 3도5000억여원까지 적자 폭이 커질 것이란 평균 전망치가 제시되고 있습니다. 이런 반도체는 전기를 많이 씁니다.
지난해 이미 전기요금 인상이 거듭된 배경 속에 삼성전자 전기료 등 연료비 지출액은 작년 6조1423억원을 기록했습니다. 전년 4조9289억원에서 24.6% 오른 비용입니다. 또 급여가 같은 기간 28조원에서 30조원으로, 감가상각비가 31조원에서 36조원으로, 복리후생비가 5조원에서 6조원까지 올라 고정비가 커졌습니다. 삼성전자는 올해도 노사가 임금협상에 난항을 보이고 있어 고정비가 더 오를 부담이 상존합니다.
SK하이닉스도 급여가 7조8000억여원에서 5조3000억여원으로 올랐고 감가상각비도 10조원에서 14조원까지 급증했습니다. 그 속에 전력 및 수도광열비 등이 1조6000억여원에서 2조2000억여원으로 37.5% 상승률을 나타냈습니다.
전력을 많이 쓰는 또다른 대표 업종은 철강입니다. 포스코홀딩스는 전력용수비로 작년 9363억원을 지출했습니다. 하반기 침수피해로 철강공장 가동이 멈추는 특수상황이 발생했음에도 전년 7442억원에서 25.8% 올랐습니다. 현대제철의 경우 전력비 및 연료비를 2조2000억원 정도 작년에 썼다고 설명했습니다. 전년보다 3000억원 정도, 13.6% 오른 수치입니다.
국내 전력공기업의 발전소 전경. 사진=남부발전
전기요금 불 지른 유가는 불안
전기요금 인상의 주된 원인인 국제유가는 최근 70달러대 후반까지 후퇴했습니다. 그럼에도 업계가 안심하기 어렵습니다. 원자재가격을 자극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 지정학적 불안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러시아는 최근 3월부터 6월말까지 원유 생산량을 줄여 가격을 밀어올리기로 했습니다. 전쟁에 대한 서방 제재에 반발한 조치로 해석됩니다.
여기에 원유 가격 인상을 억제했던 미국의 공급대책도 점점 힘에 부칩니다. 미국은 인플레이션 대응 차원에서 금리인상과 더불어 원유를 대량 방출해왔습니다. 보통 강달러는 유가하방요인으로 작용합니다. 여기에 공급량을 늘려 유가 하락을 유도해왔습니다. 하지만 미국은 방출량을 다시 충당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방출한 만큼 시장에서 원유를 다시 사려 했으나 조건이 맞지 않아 계획을 철회했습니다. 현재 미국의 원유 비축량은 작년 초에 비해 절반 가까이 줄어 있습니다. 미국의 비축량이 줄면 유가를 끌어올릴 불안요소로 시장 자극재가 됩니다.
데이터센터도 신산업 중에서 전기요금을 많이 쓰는 사업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런 전방 수요 산업의 비용 부담이 커지면 반도체 등 제조사들의 판매 부진으로 연결될 수도 있습니다. 지난 3월까지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 IT품목과 석유화학, 철강 등 전력 다소비 업종 품목의 수출 감소가 이어졌습니다. 에너지 수입액은 같은달 145억달러로 최근 10년의 3월 평균 96억달러를 48억달러 초과했습니다. 에너지가격은 반도체 등 수출 부진과 더불어 무역적자 기간을 늘리는 요소입니다.
업계 관계자는 “한전 적자로 인한 국가적 부담을 고려하면 전기요금 상향은 불가피할 것 같다”라며 “대신 세계 주요국에서도 실시하고 있는 전력 소비 관련 세금감면 등 재정적 지원을 통해 부담을 줄여줬으면 좋겠다”라고 말했습니다.
한편, 프랑스는 작년 2월부터 올 1월까지 기업용 전력소비세를 97.8% 인하시켜줬습니다. 이탈리아는 에너지기업 횡재세율을 기존 25%에서 35%로 강화시켜 소비 업종을 돕기 위한 재원을 마련했습니다. 국내에서도 한전 적자를 줄이기 위해 SMP 상한제 등이 실시되고 있으나 민간발전사의 손실을 줄여주기 위한 대책 등으로 실시 전과 비교해 파급력은 크지 않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이재영 기자 leealiv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