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칼럼)또 다른 ‘김건희 로드’ 가능성 막아야

입력 : 2023-08-10 오전 6:00:00
“최근 20년 이내 24개 고속도로 사업 중 시종점이 바뀐 경우는 14건이다. 특히 2010년 이후 추진한 8개 사업 중 4건이 시종점이 바뀌었다.”
 
지난달 국토교통부가 서울-양평고속도로 종점 노선이 변경된 것과 관련해 밝힌 해명입니다. 예비타당성조사(예타) 이후 시종점이 바뀌는 게 이례적인 일이 아니라는 취지입니다. 
 
고속도로 종점이 왜 하필이면 김건희 여사 일가의 땅이 있는 곳으로 바뀌었는지가 이번 논란의 핵심입니다. 연장선에서 야당의 주장대로 김 여사 일가에 특혜를 주기 위한 이른바 ‘김건희 로드’인지, 아니면 정부여당 주장대로 ‘우연’인지를 가려낼 수가 있습니다. 현재로서는 무엇이 사실인지 예단하기 어렵기에 철저한 조사가 필요합니다. 
 
이 의혹과는 별개로 짚고 넘어가야 할 지점도 있습니다. 예타 이후 시종점이 바뀌는 게 ‘흔한 일’이라는 국토부의 해명입니다. 예타는 대형 신규 공공투자사업을 면밀하게 사전 검토하는 제도로, 사업추진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입니다. 수요가 없거나 경제성이 낮은 사업의 무리한 추진을 막아 예산 낭비를 방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시행됩니다.
 
그런데 예타에서 사업 진행이 일단 통과되면 그 이후에는 예타 때와 전혀 다른 노선으로 (예산 범위 내에서) 변경해도 되고, 실제로 그렇게 해온 사례가 비일비재하다는 겁니다. 이에 대해 김대중 행정학 박사는 미디어 플랫폼 <얼룩소>에 기고한 글에서 이러한 가능성을 제기합니다. 
 
“예타 통과는 꽤 어려운 반면 일단 예타를 통과해 예산에 반영된 이후에는 ‘사업의 구체화’를 이유로, 예타에서 검토된 사업계획을 변동시킬 수 있는 재량적 범위가 꽤 존재한다는 점입니다. (중략) 예타를 어떻게든 통과해야 한다는 관점에서 가정을 한다면 가칭 ‘예타통과용 노선’은 이래야 할 것(양서면 종점)입니다.”
 
다시 말해, 오로지 예타 통과를 위한 목적으로 해당 지역 교통정체를 강조하면서 노선 길이가 가장 짧고 비용이 적게 드는 노선(양서면 종점)을 선택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겁니다. 김 박사는 이를 ‘제도의 허점’이라고 꼬집습니다. 그는 이 허점을 부정적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고도 말합니다. 애초에 예타는 완벽한 제도가 아니기 때문이라는 게 김 박사의 논리입니다.  
 
하지만 제 생각은 다릅니다. IC 추가 설치나, 환경 훼손·문화재 발굴·지역민 민원 등을 이유로 일부 변경이면 모를까, 노선을 절반 이상을 바꾸는 건 사실상 '기망'입니다. 국토부에 따르면, 시종점이 변경된 고속도로 사업 14건 중 예타 시 노선과 비교해 변경된 구간의 비율이 77%입니다. 이 중 5개 고속도로 사업은 노선이 100% 변경됐습니다. 양평고속도로는 55%가 변경됐고요. 
 
예타가 요식행위로 전락했다는 방증입니다. 취지를 살리지 못하는 제도는 무의미합니다. 그동안은 조용하다 이번에 유난히 논란이 된 건 많은 이의 주목을 받는 김건희 여사와 관련이 있어서지, 과거 어느 정부에서 누가 이 시스템의 허점을 악용했을지 모를 일입니다. 예타 제도의 허점을 하루빨리 손봐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김건희 로드’는 언제든 또 반복될 겁니다.
 
유연석 탐사보도 2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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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연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