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정해훈 기자] 배달 라이더 등 플랫폼 종사자의 사회적 보호를 위해서는 플랫폼 기업의 '노동 독점력'을 낮춰야한다는 국책연구원의 제언이 나왔습니다. 기업의 수요독점력이 강할 수록 플랫폼 종사자를 대상으로 낮은 수수료를 책정할 수 있는 힘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특히 기존 근로자·사업자 개념에 따른 이분법적 논의가 아닌 플랫폼의 '노동수요독점력' 정도에 따라 보호수준을 달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판단입니다. 알고리즘 투명성에 대한 규제에 대해서도 수요독점력에 따라 단계적으로 차별화할 수 있다고 봤습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23일 '플랫폼 종사자에 대한 사회적 보호 설계' 보고서를 통해 "기업의 독점력이 강할수록 소비자를 대상으로 생산 비용보다 높은 가격(mark-up)을 책정할 수 있듯이 기업의 수요독점력이 강할수록 플랫폼 종사자를 대상으로 생산한 가치보다 낮은 수수료(mark-down)를 책정할 수 있는 힘이 커진다"고 밝혔습니다.
노동수요독점력은 흔히 사용하는 기업의 독점력과 대칭적인 개념입니다. 이번 보고서는 웹 기반 프리랜서 플랫폼의 주요 사례로 정보통신기술(ICT) 소프트웨어 개발자의 상황을, 지역 기반 플랫폼의 주요 사례로는 배달 애플리케이션 종사자(라이더)의 상황을 통해 노동수요독점력을 측정했습니다.
ICT 소프트웨어 개발자의 경우에는 플랫폼의 노동수요독점력이 우려할 수준이 아니라고 판단했습니다. 반면 배달 앱 종사자의 경우 알고리즘에 대한 통제나 플랫폼 간 전환의 어려움 등으로 높은 노동수요독점력을 우려했습니다.
KDI 측은 "라이더 측면에서 바라보면 불충분한 소득으로 인한 비자발적 참여 내지 상당한 전환 비용 등의 이유로 플랫폼 간 이동에 제약이 있어 플랫폼 간 경쟁이 라이더의 근무 여건 향상으로 쉽게 이어지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며 "일거리나 근로 시간 선택은 자유롭더라도 사후적 평가나 업무 배정 알고리즘 등을 통해 상당한 통제도 받는 상황"이라고 진단했습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23일 '플랫폼 종사자에 대한 사회적 보호 설계'란 보고서를 발표했습니다. 사진은 서울 시내에서 배달 노동자들이 오토바이를 타고 이동하는 모습. (사진=뉴시스)
2가지 주요 사례 분석처럼 플랫폼 분야마다 경쟁 상황이 다르고 종사자 보호의 필요성이 다른 만큼, 일괄적인 기준을 적용해서는 안 된다고 제언했습니다.
KDI는 "플랫폼 기업에 의한 혁신을 허용하면서도 동시에 플랫폼 종사자에 대한 실효적 보호를 제공하려면 플랫폼의 노동수요독점력을 낮추거나 그 남용을 억제한다는 목표하에 유연하고 통합적인 정책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면서 "사업자인지 근로자인지 구분하기 애매한 지위에 있는 경우 플랫폼 종사자를 일단 사업자로 바라보되, 해당 플랫폼의 수요독점력을 측정해 사회적 보호의 수준을 비례적으로 결정하는 접근이 필요하다"며 "일정 수준 이상의 수요독점력이 측정되거나 그 정황이 합리적으로 추정될 경우 당국의 검토를 거쳐 개입 수준을 단계적으로 강화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알고리즘 투명성 규제도 수요독점력에 따라 단계적으로 강화할 수 있다"며 "이는 자사 우대와 관련해 논의된 바 있는데, 예컨대 구글이나 애플의 앱 마켓에서 검색 순위와 관련된 앱 개발자들의 문제 제기가 있었고 국내 모빌리티 앱에서도 자사 우대 관련 논쟁이 전개된 바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한요셉 KDI 재정·사회정책연구부 연구위원은 "플랫폼 간 경쟁 촉진이나 사업자 기반의 공정거래 정책은 종사자 개인에 대한 보호 차원으로 보면 여전히 한계가 있을 수가 있다"며 "이에 따라서 노무 제공자 전반에 걸친 기초적 보호도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예를 들어 안전·보건에 관련된 규제나 재해보상 등을 포함할 수 있다"며 "이러한 기초적인 보호는 인적 서비스란 특성상 최소한의 인권 보장이 필요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플랫폼의 노동수요독점력에 대한 최소한의 제약으로도 기능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또 "최소 보호의 기준이 지나치게 높게 설정될 경우에는 플랫폼 경제를 위축시키거나 또는 규제 사각지대에서의 부당한 이익으로 귀결될 수 있기 때문에 현실을 충분히 고려한 기준 설정이 필요하다"고 부연했습니다.
한편, 고용노동부 집계를 보면 지난해 기준 플랫폼을 매개로 노무를 제공하는 플랫폼 종사자는 약 80만명으로 15~69세 취업자의 3.0%에 해당합니다. 스마트폰 앱이나 웹사이트 등 온라인 플랫폼의 단순 중개·소개 또는 알선을 통해 일거리를 구한 종사자까지 포함한 광의의 플랫폼 종사자는 약 292만명입니다.
한요셉 한국개발연구원(KDI) 재정·사회정책연구부 연구위원이 23일 '플랫폼 종사자에 대한 사회적 보호 설계'란 보고서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사진=한국개발연구원)
세종=정해훈 기자 ewigjung@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