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충범 기자] 지난 십수년간 이랜드그룹의 발목을 잡은 대표적 요인은 재무 리스크입니다. 이랜드는 2010년 무렵까지만 해도 전사적으로 특유의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가 뛰어난 콘텐츠를 생산하며 경쟁력을 유지해왔지만, 이후 해외 패스트패션(SPA)의 공습, 소비 시장의 다변화 흐름에 적응하지 못하며 빠르게 시장 주도권을 내줬는데요.
특히 이랜드그룹이 고수했던 다양한 유명 브랜드의 공격적인 인수합병(M&A) 및 차입 전략을 통한 사세 확장 패턴은 오히려 이랜드그룹의 재무 전반에 걸쳐 부담으로 돌아오고 있는 실정입니다. 무엇보다 이랜드그룹이 오랫동안 겪어온 차입 문제, 낮은 현금창출력 등은 단기간 내 해결되기 어려운 난제라는 점에서 투자자들의 주의가 요구된다는 지적마저 나옵니다.
이랜드 CI. (자료=이랜드그룹)
그룹 주축 '이랜드월드'…1년 내 갚아야 할 빚만 2조7000억원
이랜드그룹의 계열사들 중 핵심은 박성수 이랜드그룹 회장이 40.67%의 지분을 확보하고 있는 '이랜드월드'라 할 수 있습니다. 패션 사업과 함께 그룹 전체의 실질적인 지주사 역할을 하고 있고, 그룹 전체 매출의 절반가량을 차지할 정도로, 그룹 내에서의 이랜드월드 영향은 절대적입니다.
2021년 이후 이랜드월드의 차입금 구성 비교 표. (제작=뉴스토마토)
문제는 수년째 이랜드월드의 차입금 부담이 경감되지 않고 있다는 점입니다. 10일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이랜드월드의 올해 2분기 기준 차입금의 구성에서 전체 차입금 규모는 4조1438억원으로 파악됐습니다. 이는 지난해 3조8373억원, 재작년인 2021년 3조9379억원보다도 높은 수치입니다.
마곡 연구개발(R&D) 센터, 중국 물류 센터 및 관계사 지분투자 등 자본적 지출, 투자자금 소요에 따른 적자가 발생했고, 이에 따른 차입금이 지속된 탓입니다.
특히 올해 2분기 총 차입금 중 67%에 달하는 2조7697억원이 유동성 차입금으로 분류됐는데요. 쉽게 이야기해 1년 안에 갚아야 할 빚이 약 2조7000억원이라는 뜻입니다.
이 중에서도 34%인 9328억원은 단기차입금인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즉 3개월 안에 갚아야 하는 부채가 무려 1조원에 육박하는 셈으로, 단기차입금만으로도 월평균 3100억원가량은 만기도래하고 있는 것이죠.
반면 같은 기간 이랜드월드의 현금 및 현금성자산은 4856억원으로 전체 차입금의 약 8분의 1 수준에 불과합니다. 현금창출력이 매우 떨어지는 상태로 사실상 빚을 내 이자 비용을 갚는 형국이 되풀이되며 재무 안전성 지표 회복이 지연됨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급기야 올해 이랜드는 빚이 많아 채권은행의 재무안전성 평가를 받아야 하는 '주채무계열' 기업군에 새로 편입되기도 했는데요.
지난 5월 금융감독원은 작년 말 기준 총 차입금이 2조717억원 이상이고 은행권 신용공여 잔액이 1조2094억원 이상인 38개 계열기업군을 올해 주채무계열로 선정한 바 있습니다. 이중 7개 계열이 새로 선정됐고 이랜드가 포함됐습니다.
'빚 많은 기업' 인증에도…"문제없다"는 이랜드
이랜드 측은 재무 건전성과 관련된 우려에 대해 별다른 문제가 없다는 입장입니다.
이랜드그룹 관계자는 "우선 주채무계열 편입에 대해 설명하면 별다른 것이 없다. 사실 주채무계열 기업군에 삼성, LG 등도 포함돼 있지 않나"라며 "부채 관련 은행 비중이 높아졌기 때문에 벌어진 현상이다. 쉽게 이야기해 제1금융권의 부채 비중이 늘었기 때문에 부채 자체의 안전성은 높아졌다고 볼 수 있다"고 해명했습니다.
그는 "코로나19 팬데믹 시기를 겪으며 힘들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부채비율도 계속 200% 이하를 유지하는 중"이라며 "게다가 최근 계열사 전반에 걸쳐 실적 개선이 이뤄지고 있는 상황으로 유동성 위험도는 높지 않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하지만 이 같은 이랜드 측 입장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렵습니다. 우선 주채무계열이란 부채가 많아 주채권은행으로부터 재무구조를 평가받아야 하는 대기업 그룹을 뜻합니다.
특히 38개 계열기업군 중 이랜드는 총차입금 기준으로 23위에 올랐는데요. 유통 업체들 중 이랜드(재계 46위)보다 앞선 순위의 기업은 전통의 강자로 체급 자체가 큰 롯데(재계 6위·주채무계열 3위), 신세계(11위·10위), CJ(13위·12위)와 종합 식품 기업으로 빠르게 외연을 확장하고 있는 하림(27위·20위) 밖에는 없습니다. 모두 재계 순위가 이랜드보다는 크게 앞섭니다.
게다가 주채무계열에 선정되면 개선이 필요하다 판단되는 기업의 경우 재무구조개선 약정을 체결해야 하며, 부실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차원에서 필요시 선제적 구조조정도 실시됩니다. 사실상 빚이 많은 기업으로 공인 인증되는 만큼, 재무개선을 위한 페널티도 적지 않습니다.
실적 개선됐다지만…험난한 업황에 고금리 '가시밭길' 예고
이랜드그룹의 실적이 개선된 것은 사실입니다. 이랜드월드의 지난해 연결 기준 매출은 5조328억원으로 전년(4조8604억원) 대비 3.55% 증가했고, 영업이익도 1256억원으로 2021년(1120억원)보다 12.18% 신장했습니다. 코로나19로 침체됐던 패션 사업이 회복세를 보이고 유통 사업을 영위하는 이랜드리테일, 외식 사업을 운영하는 이랜드이츠 등이 선전한 까닭입니다.
하지만 이 같은 실적 개선에도 좀처럼 차입금 부담이 줄지 않는 것은 분명 문제입니다. 이랜드월드의 주축인 패션 사업의 경우 전형적인 내수 중심의 기반 산업인 데다 콘텐츠의 라이프 사이클도 타 업종 대비 매우 짧아, 경기 변동에 민감하고 중장기 전망을 가늠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단기적으로 실적이 호전됐다고 해서 이 같은 추이가 이어질지 속단하기 어렵다는 이야기입니다.
한한령이 해제됐다지만 중국 리스크가 여전한 점도 변수입니다. 최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경우 올해 중국의 성장률 전망치를 5.4%에서 5.1%로 0.3%포인트 크게 낮춰 잡는 등, 사실상 중국의 경제 위기는 심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는데요.
이는 중국 시장을 필두로 글로벌 사업을 전개하려는 이랜드 입장에서는 달가운 소식이 아닙니다. 특히 중국 시장에서는 상당한 투자비와 고정비 지출이 불가피한데, 이에 따른 추가적 재무 부담 위험 가능성도 남아있습니다.
대외 금리 상황도 녹록지 않습니다. 현재 국내 기준금리는 3.5%로 지난 2021년 8월 이후 1년 반밖에 안 되는 짧은 시기에 무려 3%포인트 상승했고, 향후 추가 인상 가능성도 점쳐지는 상황입니다.
특히 이랜드월드는 한국신용평가로부터 BBB 등급에 '부정적' 전망까지 달리면서, 추가 신용도 하락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이랜드월드가 최근 1000억원 규모의 회사채 수요예측에서 260억원의 주문에 그치며 미매각을 기록한 점도, 이랜드월드에 대한 냉랭한 투자심리와 무관치 않습니다.
지난 8월 열람된 이랜드월드의 투자설명서에 언급된 투자위험요소도 간과하기 어렵습니다. 설명서는 "대기업을 중심으로 한 패션 시장 경쟁의 심화, 해외 유명 기업 및 브랜드의 국내 진출 확대, 가치소비 트렌드로 인한 브랜드 가치 경쟁 등 시장 환경의 많은 변화가 예상된다"며 "이에 따른 실적 변동성의 증가 및 성장 제한의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습니다.
또 "올해 반기 말 순차입금은 4조2939억원을 기록하면서 재무안정성 지표 회복이 지연되고 있다. 당사는 그룹 내 M&A, 지분출자 등 자금 지원으로 차입 규모가 높은 수준"이라며 "향후 그룹의 사업전략 이행, 계열사 지원 등으로 대규모 자금 소요가 발생할 경우 재무 안정성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박성수 이랜드그룹 회장. (사진=이랜드그룹)
김충범 기자 acechung@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