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지난 몇년 간 '코로나 블랙홀'에 흡착됐던 대중음악·공연 시장은 올해부터 완전한 회복을 본격화했습니다. K팝 실물 음반 글로벌 판매량은 연 1억장 시대를, K콘(K콘서트) 포함 국내 공연 시장은 연 1조원 시대를 열며 전례 없는 초유의 기록을 달성했습니다. 데뷔 55주년을 맞은 '가왕' 조용필을 필두로 멤버 전원이 군 입대에 들어간 방탄소년단(BTS)까지 한국대중음악사를 통시적으로 고찰한 해이기도 했습니다. 뉴진스의 '뉴(New) 한 사운드'가 BTS 이후 새로운 K팝 패러다임으로 읽힌 가운데, K팝 성장둔화에 대한 우려가 상존했고 그에 대한 매출 다변화에 음악업계의 관심이 쏠린 한 해였습니다.
방탄소년단. 사진=빅히트뮤직
전례 없는 K팝 음반 1억·K콘 1조 시대
올해 코로나 팬데믹으로 한파를 겪었던 국내 공연 시장은 K콘의 성장을 필두로 빠르게 회복되면서 연 1조원 시대를 열었습니다. 이미 3분기까지 대형 공연이 속속 잡히면서 이미 8000억원을 돌파한 가운데, 공연 성수기인 연말 효과까지 더해지면서 연간 기준 역대 최고 매출 기록을 낼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합니다.
특히, 점점 더 큰 규모의 세련된 미학을 내뿜는 대형기획사들의 초대형 연출은 글로벌 팬덤을 사로잡고 있습니다. 360도 회전 스테이지, 내부 삼면으로 구성된 초대형 LED 무대, 그리고 음악의 세계관과 연결시킨 무대는 전 세계로 뻗어갔습니다. 특히 공중에서 내려온 회전목마와 동화에 나올 법한 성의 계단('TXT'), 인어공주 콘셉트('르세라핌'), 미국 현지의 밴드 라이브셋으로 기존 곡들의 롤라팔루자 편곡 무대('뉴진스') 등 하이브 가수들의 연출은 특기할만 했습니다. 한옥 기와 문양을 무대 위로 수놓은 블랙핑크는 올해 국내 여성 가수 최대 규모의 월드투어 기록을 썼습니다.
K콘의 성황은 전례 없는 실물 음반 판매의 기록으로 이어졌습니다. 트리플 밀리언셀러(300만장), 쿼드 밀리언셀러(400만장), 펜타 밀리언셀러(500만장)라는 말이 전혀 낯설지 않은 시대입니다. 올 한 해 약 1104만3265장(2023년 1~9월)의 판매량을 기록한 세븐틴을 필두로 스트레이키즈(연말 집계까지 1000만장 예상), BTS 솔로와 뉴진스, 아이브, 르세라핌 같은 4세대 걸그룹 등이 선전했습니다.
방탄소년단(BTS) 10주년과 멤버 전원 군입대는 음악업계 최대 이슈였습니다. <뉴스토마토>는 대중음악전문가 11인에게 'BTS의 지난 10년'에 대한 제언을 구했고 이들은 "영미권 중심으로 움직이던 글로벌 팝의 중심축이 대대적 전환을 시작한 계기이자, 한국 대중음악사가 그간 '걸어 가보지 못한 새 길'을 열어젖혔다는 의미"로 평가했습니다. 뉴진스와 피프티피프티 같은 K팝 걸그룹의 약진도 거센 한 해였습니다. '이지리스닝(듣기 편한 사운드)' 계열의 장르와 숏폼 등 플랫폼을 적극 활용한 전략으로 '뉴 K팝 사운드'를 표준으로 만들며 전 세계로 뻗어갔습니다.
올해 '이지 리스닝' 세계적 신드롬을 일으킨 그룹 뉴진스. 사진=어도어
라이트 팬덤 늘려 'K팝 연착륙' 실현해야
한국 대중음악사의 굵은 발자취를 돌아본 해이기도 했습니다. '가왕' 조용필은 데뷔 55주년을 기념해 EP 음반을 내고 5월과 12월에 걸쳐 두 차례 전국 투어를 이어갔습니다. 서태지와 아이유가 각각 25주년 10주년 기념 콘서트 영상을 극장에 내걸며, 해외의 테일러스위프트 사례처럼 '실황 붐' 시대를 이끌었습니다. 데뷔 30주년을 맞은 이소라와 엄정화, 20주년을 맞은 에픽하이 등도 연말까지 릴레이 공연을 열며 힙합과 발라드가 걸어온 시계추를 돌렸습니다.
그러나 창사 이래 최대 실적이라는 수치적 규모에도 음악업계에서는 K팝 위기론에 대한 지적이 나왔습니다. 최근 한 방송에서 방시혁 하이브 의장과 박진영 JYP 총괄 프로듀서의 진단대로 "K팝은 강렬한 팬덤 기반의 진입장벽이 큰 시장"이라는 구조적 한계를 안고 있기 때문입니다. '코어 팬덤' 위주인 K팝이 향후 '라이트 팬덤'을 늘리는 구조로 가야한다는 진단이 나온 가운데, 기획사들은 신성장 동력 확보에 나서고 있습니다. 최근 하이브를 필두로 기획사들은 다국적 걸그룹을 론칭하고, 다른 신대륙의 글로벌 음악 기업들을 흡수하는 흐름입니다. 확장과 위기 사이의 K팝은 '지속가능한 성장'을 달성할 수 있을지. 수치적인 면보다 질적인 면의 성장을 위한 개선을 꾀해 '세계 속 K팝 연착륙(소프트랜딩, soft landing)'을 실현시켜야 할 시점입니다.
조용필. 사진=소속사 YPC, 유니버설뮤직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