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 두 번 울리는 ‘기습 공탁’…대검 “악용, 엄정대응”

피해자 몰래 ‘공탁’ 후 ‘감형’ 등 악용 사례 늘어
대검 “피해자 의사 양형에 반영되도록 의견 적극 개진”

입력 : 2024-01-08 오후 2:21:30
 
 
[뉴스토마토 유연석 기자] 시행 1년여를 맞은 ‘형사공탁 특례제도’에 대한 악용 사례가 늘어나자 대검찰청이 일선청에 “엄정 대응”을 주문했습니다. 대법원도 피고인이 ‘기습 공탁’, ‘꼼수 공탁’으로 유리한 양형을 받는 문제를 인지하고 공탁제도 절차를 개선할 계획입니다.
 
피해자 모르게 ‘공탁’하고 나서 ‘감형’
 
‘형사공탁 특례제도’는 2022년 12월 시행됐습니다. 핵심은 피고인이 피해자의 동의 없이도 공탁을 가능하게 한 겁니다. 이전에는 피해자 동의가 필요하다 보니 가해자 등 피고인이 피해자를 찾아가 합의를 종용하거나 협박하는 등 2차 가해가 발생했습니다.
 
그런데 시행 1년여가 지난 현재 도입 당시 예기치 못한 문제가 발생해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피해자가 원치 않는 일방적 공탁이 이뤄지는 겁니다. 특히 피해자나 피해자 측 변호사가 의견을 제출할 수 없도록 변론이 종결된 이후 선고 직전에 기습적으로 공탁하는 겁니다.
 
이러한 기습 공탁의 주목적은 ‘감형’입니다. 특히 성범죄자들이 이를 악용하고 있습니다. 성범죄 양형기준표에는 감경 사유 중 하나로 ‘상당한 피해회복(공탁 포함)’을 두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공탁이 피해자가 알지 못한 채 이뤄지는데, 공탁 사실만으로 형이 감경되는 것은 ‘돈으로 형량을 거래’하는 꼴이라는 지적도 나옵니다.
 
일례로 지난 2022년 수사로 드러난 ‘자매 길들이기(그루밍) 성폭력 사건’에서 피고인인 40대 목사가 지난해 10월 1심 판결 직전 법원에 수천만원을 공탁하고 검찰 구형량(징역 20년)의 절반도 안 되는 징역 8년을 받아 논란이 됐습니다. 법원에는 반성문을 10차례나 보낸 것으로도 전해졌는데, 정작 피해 자매에게는 사과한 적이 없습니다.
 
법조계에 따르면, 지난해 10월까지 형사공탁 특례제도 시행 후 판결이 나온 988건의 비재산 범죄 가운데 피해자 의사에 반한 공탁임에도 이를 피해회복으로 간주해 법원이 일방적으로 감경한 사건은 약 80%에 달했습니다. 이 중 선고 2주 전 이뤄진 ‘기습 공탁’은 558건으로 절반 이상을 차지했습니다.
 
대검 ‘악용 사례 대한 구체적 대응방안’ 지시 
 
이처럼 피해자를 두 번 울리는 ‘기습 공탁’, ‘꼼수 공탁’에 대한 문제가 대두되자 대검찰청이 팔을 걷고 나섰습니다. 이원석 검찰총장은 7일 일선청에 ‘형사공탁 특례제도 악용 사례에 대한 대처방안’을 지시했습니다.
 
변론 종결 이후 기습적으로 형사공탁이 이뤄진 경우, 재판부에 선고 연기 또는 변론 재개를 신청한 뒤 피해자에게 공탁 사실에 인지 및 합의 여부를 확인하고, 재판부에 ‘공탁 경위, 금액, 피해 법익, 피해자 의사’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신중히 양형 판단을 해달라는 의견 적극 개진하도록 했습니다.
 
또한 대검은 “대법원 양형위원회에 ‘공탁’ 관련 양형인자 적용 시 피해자 의사를 고려하도록 의견을 개진하는 등 형사공탁에 대한 피해자의 의사가 양형에 반영될 수 있는 절차가 제도적으로 보장되도록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밝혔습니다.
 
대법원도 절차 개선에 나섰습니다. 지난달 전국법원장회의에서 공탁제도 절차 개선을 의결했습니다. 피해자의 동일인 확인 증명서를 법원과 검찰이 직접 발급하는 제도로 이달 말부터 시행합니다. 이 제도가 시행되면 피해자의 공탁금 수령 및 거절 절차가 줄어들게 됩니다.
 
이원석 검찰총장이 2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열린 대검찰청 신년회에서 신년사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유연석 기자 ccbb@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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