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들은 작년에 이어 올해도 상생금융·사회공헌을 강요받고 있습니다. 대통령이 나서 은행을 ‘공공재’라 부르고 금융당국이 노골적으로 압박하는 형국인데요. 주요 은행이 작년과 올해 최대 실적을 낼 것으로 전망되면서 부담은 더욱 커진 모양새입니다.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KB·신한·하나·우리금융 등 4대 금융지주의 올해 연간 당기순이익 추정치는 17조2316억원입니다. 작년보다 4.1% 늘어날 전망인데요. 그러다 보니 은행을 바라보는 여론의 시선도 따갑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은행들은 작년 당기순익의 10% 규모 선에서 민생금융 지원에 나서겠다는 입장입니다. 금융취약계층을 대상으로 캐시백과 같은 이자 환급이나 서민대출 확대 등입니다. 다만 이것이 적절한 방안인지는 좀 따져봐야 합니다.
우선 상생금융 자체가 정책적 모순이라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상생금융은 취약차주에 대한 지원과 금융산업의 건정성 강화를 목표로 합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은행 재정건전성에 부담을 주고 있습니다. 취약차주 지원 자체가 고위험 대출이라는 점에서입니다.
뿐만 아니라 당국이 과하게 개입하면서 금융 시장의 자율성과 효율성을 저해하고 있습니다. 시장 기반의 금리 결정 메커니즘이 작동하지 않는 것인데요. 당국 지시에 따른 금리 인하나 대출 지원은 금융 질서를 흐뜨릴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우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 상생금융에 따른 비용은 결국 고객에게 전가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은행들이 당국에 등 떠밀려 비용 부담을 진다면 수수료 증가나 대출금리 상승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사실 상생금융보다 더 큰 문제는 사회공헌입니다. 2022년 국내은행의 사회공헌활동 규모는 1조2380억원에 달합니다. 대가성으로 해석 여지가 있는 프로스포츠 지원은 제외했다는 점에서 작지 않은 규모지요. 그럼에도 당국은 더 늘리라고 요구하고 있는데요.
상생금융은 그나마 금융소비 당사자에게 직접 혜택이 돌아간다는 긍정적 측면이라도 있습니다. 반면 사회공헌은 금융소비자에게 벌어들인 초과수익을 제 3자에게 돌리는 방식이어서 바람직하다고 볼 수만은 없습니다. 차라리 처음부터 은행들이 과도하지 않은 수익을 가져갈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게 바람직한 방안 아닐까요.
은행의 순익 대부분은 이자수익인데, 이를 유지할 수 있는 이유는 금융당국 규제에 따른 시장지배력 덕분입니다. 은행은 대표적인 규제산업으로 은행 수익도 사실상 당국의 가이드라인에 따라 좌우됩니다. 예컨대 당국이 가계대출을 줄이겠다며 이자를 제한하면 은행들은 앉아서 떼돈을 버는 구조입니다.
따라서 은행의 초과수익을 막는 근본적 처방은 자율경쟁을 유도하는 것입니다. 당국의 개입을 최소화하고 은행업 진입장벽을 낮춰 다양한 경쟁구도를 만들어야 합니다. 같은 규제라도 지금보다 더 구체적이면서 표준화한 이자원가 공개와 같은 규제는 공정경쟁에 도움을 줄 것입니다.
당국은 이자장사라는 거친 표현으로 은행을 두들기기에 앞서 지속가능하면서도 건전한 생태계 조성을 위한 고민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김의중 금융증권부 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