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대형 기자] 의료계가 정부가 제출한 의대 증원 근거자료를 검증하면서 본격적인 반격에 나섰습니다. 정부의 객관적인 연구나 검증이 전무했다며 더 이상의 정책 폭주에 따른 의료농단은 없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와 대한의학회는 13일 서울 용산 대한의사협회 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 자료가) 기존 보고서 재탕 외에 재판부가 석명으로 요청한 증원을 결정한 새로운 객관적인 용역 연구나 검증이 전무하다는 걸 확인했다"고 밝혔습니다.
"정부가 제시한 근거, A4 용지 세 문장이면 끝"
김창수 전의교협 회장은 이날 "5월9일부터 기존에 알려진 입학정원 증원의 근거가 된 3가지 보고서를 포함한 자료 검증 작업을 진행했다"며 "수천 장의 근거자료가 있다는 정부의 주장은 기존 보고서 3개를 인용한 주장 외에는 없었다. A4 용지 세 문장이면 끝나는 근거가 다였다"고 말했습니다.
김 회장은 "수없이 많은 회의를 했다고 주장했으나 2000명을 증원하는 근거는 논의된 바 없었고 2월6일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보정심)이 끝난 직후 진행된 기자회견에서 유일하게 언급돼 있다"며 "최근 정부가 추진하는 의료개혁특별위원회도 마찬가지다. 회의도 하기 전에 주요 결정 내용에 대한 보도자료가 뿌려지고 회의 후의 결과도 보도자료와 동일한 것을 여러분은 확인할 수 있다"고 꼬집었습니다.
이어 "누군가가 한 결정의 근거를 만들기 위해 자료를 취사선택해선 안 된다"며 "(이는) 과학의 영역에선 퇴출되어야 하는 행위이며 문명사회의 근간을 흔드는 행위"라고 날을 세웠습니다.
그러면서 정부를 향해 "불합리한 정책의 추진을 백지화하고 의사를 포함한 보건인력을 과학적으로 추계해 달라. 객관적이고 투명한 연구를 진행하고 모든 논의 과정과 결과를 투명하게 공개해 달라"고 호소했습니다.
김종일 서울의대 교수협의회 회장도 "2000명을 증원하는 객관적·과학적 근거가 전혀 없다"며 "정부가 근거로 제시한 3대 보고서는 보건복지부의 의뢰를 받고 진행됐다. 이해충돌의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또 "보고서를 작성한 저자들도 모두 다양한 가정을 얘기했을 뿐 이 보고서가 2000명 증원의 근거로 이용되지 않았으면 한다고 밝혔다"며 "그런데 정부는 이분들이 마치 2000명 증원을 주장한 것처럼 무리하게 인용했다"고 했습니다.
"비공개·비밀 재판은 북한에서나 하는 것"
의료계 측 소송대리인 이병철 변호사(법무법인 찬종)는 "정부가 내놓은 자료들은 한두 개 빼놓곤 이미 언론에 알려진 사실상 증거 가치가 없는 것"이라며 "기껏 제출한 게 보정심 회의록과 보정심 산하 의사인력전문위원회 회의 내용을 요약한 자료"라고 설명했습니다.
이 변호사는 "1980년대 땡전뉴스라고 있었다"며 "언론 기사, 대통령 말씀자료까지 내는 걸 보고 충격받았다. 제출한 의도가 무엇인지 의아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소송을 방해하는 건 정부"라며 "정부는 소송방해라고 하기 전에 근거자료를 제출해야 한다. 비공개·비밀 재판은 북한에서나 하는 것"이라고 응수했습니다.
앞서 정부는 법원에 제출한 의대 증원 근거자료를 의료계가 공개한 데 대해 "여론전을 통해 재판부를 압박해 공정한 재판을 방해하려는 의도"라며 "무분별한 자료 공개를 삼가길 바란다"고 불쾌감을 드러낸 바 있습니다.
서울고법 행정7부(구회근 부장판사)는 지난달 30일 의대교수·전공의·의대생·수험생 등 18명이 복지부 장관과 교육부 장관을 상대로 낸 의대 증원 집행정지 항고심 심문에서 정부에 2000명 증원의 과학적 근거자료와 회의록 등을 제출하라고 요구했습니다.
정부는 지난 10일 담당 재판부에 47건의 자료와 2건의 별도 참고자료를 제출했습니다.
재판부는 정부가 제출한 자료를 검토한 뒤 늦어도 오는 17일 집행정지 신청 항고심 결정을 내릴 전망입니다.
13일 오후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에서 전의교협, 대한의학회 주최로 열린 '의대입학정원 증원의 근거 및 과정에 대한 기자회견'에서 이병철 변호사가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박대형 기자 april20@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