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한동인 기자] 그간 보수 진영에서 제기한 '한반도 핵무장론'이 북·러 정상회담과 국민의힘 전당대회를 계기로 재점화하고 있습니다. 한반도 위기가 고조되는 상황에서 우리 정부는 9·19 남북군사합의 효력 정지 이후 처음으로 서북도서 해상훈련을 재개했는데요. 북한 역시 탄도미사일 발사를 시도하고 올해만 6번째 오물 풍선을 보내면서 한반도가 한 치도 앞을 알 수 없는 일촉즉발의 상태에 놓였다는 우려가 나옵니다.
블라디미르 푸틴(왼쪽) 러시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9일 북한 평양 금수산 영빈관에서 '포괄적 전략 동반자 협정'을 체결한 후 협정서를 들고 악수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자체 핵무장 선 긋지만…'금융 제재' 땐 경제까지 타격
북·러 정상회담이 쏜 한반도 핵무장론이 연일 한반도를 뒤흔들고 있습니다. 국민의힘 당권주자인 나경원 의원은 26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북핵은 고도화되고 있으며, 북·러 협력 등 국제정세도 우리 대한민국의 안보에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다"며 "견고한 한·미 동맹으로 억제력이 작동하고 있지만, 미래 안보 환경 변화까지 담보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면서 △국제정세를 반영한 핵무장 △평화를 위한 핵무장 △실천적 핵무장이라는 핵무장 3대 원칙을 당론으로 채택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전날에 이어 이틀 연속 한반도 핵무장론을 주장한 셈입니다.
북한과 러시아의 '포괄적인 전략적 동반자 조약' 체결 이후 여권 내에서 보수층 결집을 위한 선명성 경쟁이 시작된 모양새인데요. 여권 대권주자로 꼽히는 오세훈 서울시장과 홍준표 대구시장도 '핵무장' 필요성에 동조하면서 오랜 시간 반복된 보수 진영의 '한반도 핵무장론'이 되살아났습니다.
애초 한반도 핵무장론 재점화는 한·미 정부에서 시작됐습니다. 국가정보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원(전략원)은 지난 21일 '북·러 정상회담 결과 평가 및 대 한반도 파급 영향' 보고서에서 "한·미 확장 억제를 지속적으로 강화하는 한편, 전술핵 재배치 및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식 핵 공유, 자체 핵무장 또는 잠재적 핵 능력 구비 등을 포함해 다양한 대안에 대한 정부 차원의 검토 및 전략적 공론화를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북·러가 '자동군사개입'으로 해석될 수 있는 조항을 담은 것에 대한 대응 방안으로 '핵무장'을 카드로 꺼낸 겁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에서 북·미 실무협상에 관여한 앨리슨 후커 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아시아 담당 선임보좌관도 "한국이 계속해서, 어쩌면 점점 빠르게 자체 핵무장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배제해선 안 된다"면서 "북·러 관계 심화가 확실히 한국을 그런 방향으로 내몰고 있다"고 밝혔는데요.
하지만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는 반대 입장을 분명히하고 있습니다. 커트 캠밸 미국 국무부 부장관은 24일(현지시간) 미국외교협회 대담에서 "미국이 현재 한국에 제공하는 확장억제가 적절한 수준"이라며 "워싱턴 선언에 마련된 한·미 간의 메커니즘과 한국에 대한 미국의 확장억제 중요성을 강조하는 전략적 계획은 현재 우리가 일할 필요가 있는 부분을 제공했다고 본다"고 짚었습니다. 북·러 협력에 따른 한반도 북핵 위협이 고조된다 하더라도 기존의 장치로 충분히 대처할 수 있다며 여권의 논의에 선을 그은 셈입니다.
미국은 지난 2022년 윤석열 대통령이 '미국에 실질적 핵 공유를 요청했다'라는 보도 내용과 관련해서도 "한반도에 전술핵 배치 계획이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문제는 여권의 주장대로 우리나라에서 핵개발이 공론화되면 그 파장이 동북아 전체로 퍼질 수 있다는 겁니다. 한국이 핵확산방지조약(NPT)을 탈퇴하게 되면 동북아 주변국 모두 NPT 탈퇴를 요구하는 '핵도미노' 현상이 벌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 NPT를 탈퇴하게 되면 국제 제재가 가해지는데, 원자력발전의 핵연료 수입이 제한돼 전력 생산에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에 금융·무역 제재가 더해지면 한국 경제는 타격이 불가피합니다.
26일 인천광역시 옹진군 연평도의 한 해병대 포 사격훈련장에서 K-9 자주포가 포사격 훈련을 하고 있다. 해병대는 포사격 훈련을 9·19 남북군사합의 효력이 전면 중단된 이후 연평도와 백령도에서 포사격 훈련을 재개한다고 밝혔다. (사진=뉴시스)
북 '복합 도발'에…연평도·백령도서 '290여발' 쐈다
이런 가운데 우리 정부는 9·19 남북군사합의 전부 효력 정지에 따라 중단했던 서북도서 해상 사격을 2017년 이후 7년 만에 재개했습니다.
서북도서방위사령부 예하 해병대 제6여단과 연평부대는 해상사격훈련을 실시했는데, K-9, 천무, 스파이크 등의 전력을 운용해 가상의 적에 대해 총 290여발의 사격을 진행했습니다. 이는 북한과 맞닿아 있는 서북도서 해병대 전력의 핵심으로 황해도 내륙의 북한 장사포 기지와 지휘부까지 타격이 가능합니다.
해병대는 "적이 도발하면 강력히 응징할 수 있는 능력과 태세를 검증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육군도 지난 25일 충남 보령 웅천사격장에서 다연장로켓 K239 천무 실사격훈련을 실시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정부의 조치에 대응한 북한의 도발 행태도 복합적 양상을 보이면서 한반도 정세는 일촉즉발의 위기에 놓였습니다.
합동참모본부는 이날 오전 "26일 오전 5시 30분경 북한이 평양 일대에서 동해상으로 미상 탄도미사일을 발사했으나 실패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습니다. 해당 미사일은 북한이 개발 중인 신형 미사일일 가능성이 제기되는데, 북한은 극초음미사일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등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지난 25일 밤 북한은 오물풍선 250여개도 추가로 살포했는데요. 올해 들어 6번째입니다.
북한의 복합적 도발이 이어지면서 우리 군도 심리전 수단인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는데, 자칫 접경 지역 내 우발적 충돌이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총장은 <뉴스토마토>와 통화에서 "완충지역에서 군사적 적대 행위를 중지하는 9·19 군사합의를 파기한 것은 한반도 상황의 안정적 관리를 포기한 것"이라며 "국민의 재산과 생명을 보호하는 헌법 정신을 역행하는 것이고 한반도의 긴장을 고조시키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꼬집었습니다.
한동인 기자 bbha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