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한동인 기자] 북한이 핵탄두를 만드는 데 쓰이는 고농축 우라늄(HEU) 제조시설을 처음으로 공개한 지 닷새 만에 단거리탄도미사일(SRBM)을 여러 발 발사하는 도발을 감행했습니다. 50일도 채 남지 않은 미국 대선을 앞둔 '무력시위'인데요. 미국 민주당과 공화당 모두 한반도 비핵화를 정강에서 삭제한 가운데 존재감을 과시하기 위한 행보로 풀이됩니다.
북한 노동신문은 지난 13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핵무기연구소와 무기급 핵물질 생산시설을 현지지도했다고 보도했다. 이 시설들은 2010년 미 핵과학자가 방문해 확인한 것보다 크게 진전된 것이다. (사진=뉴시스)
핵물질 시설 '최초' 공개…북·미 협상 염두
합동참모본부에 따르면 우리 군은 18일 오전 6시 50분께 평안남도 개천 일대에서 동북 방향으로 발사된 SRBM 수 발을 포착했습니다.
이와 관련해 한·미·일 외교 당국자들은 이날 오전 3자 유선 협의를 갖고 "북한이 고농축 우라늄 제조시설을 공개한 데 이어 탄도미사일을 발사한 것은 다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에 대한 명백한 위반이자 한반도와 국제사회의 평화와 안정을 심각하게 위협한다"고 지적했습니다.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는 지난 12일 이후 엿새 만으로 당시 북한은 평양 일대에서 동해상으로 SRBM인 초대형 방사포(KN-25) 여러 발을 발사했습니다.
특히 지난 13일에는 관영매체 보도로 핵탄두를 만드는 데 쓰이는 고농축 우라늄 제조시설을 공개하며 도발 수위를 올리기도 했습니다. 고농축 우라늄 제조시설은 핵무기 생산의 심장부인데, 북한이 공개한 사진을 보면 수천 개의 원심분리기가 확인됩니다.
원심분리기는 핵 개발 과정에서 우라늄 핵연료 생산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장비입니다. 통상 원심분리기 2000개에서 연간 약 40kg의 고농축 우라늄을 생산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지는데, 북한은 1만~1만2000개 가량의 원심 분리기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즉 원심 분리기 추정치가 사실이라면 북한은 매년 200∼240kg의 고농축 우라늄을 확보해, 매년 8~10개의 핵탄두(핵탄두 1개당 고농축 우라늄 25kg 필요)를 생산할 수 있다는 겁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핵무기 연구소와 무기급 핵물질 생산시설을 현지지도하고 "전술핵무기 제작에 필요한 핵물질 생산에 총력을 집중"하라고 지시했습니다. 김 위원장은 신형 원심분리기 도입과 원심분리기의 개별분리능력을 올리도록 주문하기도 했습니다.
북한이 지난 2010년 미국 핵물리학자인 시그프리드 헤커 박사를 초청해 평안북도 영변 핵시설 내 우라늄 농축시설을 보여준 적이 있긴 하지만 실물을 직접 대외에 공개한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결국 북한이 수십 년 동안 존재를 감춰 온 고농축 우라늄 제조시설을 현시점에 공개한 건 미국 대선을 겨냥한 존재감 드러내기라는 해석이 나옵니다.
실제로 김 위원장은 이번 현지지도에서 "핵무력을 중심으로 한 국방력 강화는 미국과 대응하고 견제해야 하는 우리 혁명의 특수성"이라고 밝혔습니다. 이는 북한의 비핵화가 불가능하며 핵 보유를 용인하는 핵 군축 협상에 나서라는 메시지로 풀이됩니다.
미국 민주당과 공화당의 이번 대선 정강에는 4년 전과 달리 한반도 비핵화 부분이 모두 삭제돼 있기도 한데요. 김 위원장과의 '직거래'를 예고하며 핵 군축 협상 가능성을 내비치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에 힘을 실어주려는 의도로도 해석됩니다. 북핵 위협을 높이는 것이 트럼프 전 대통령 재선 시 미국과의 협상력을 강화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미 대선 앞두고…북, '7차 핵실험' 가능성까지
북한이 미국 대선을 목전에 두고 7차 핵실험을 감행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옵니다. 지난 4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린 제5차 한·미 외교·국방(2+2) 확장억제전략협의체(EDSCG) 고위급 회의에서 조창래 국방부 국방정책실장은 "미국 대선 전 북한의 전략적 도발과 관련해 7차 핵실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정각발사 등을 고려해 볼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2019년 6월 30일 경기도 파주 판문점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회담했다고 조선중앙TV가 보도했다. (사진=뉴시스)
하지만 북한의 의도와 달리 미국 대선의 흐름은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쪽으로 기우는 분위기입니다.
미국 여론조사업체 '모닝컨설턴트'가 대선 TV 토론 직후인 지난 13~15일(현지시간) 유권자 1만1022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17일 공표한 여론조사(오차범위 ±1%포인트)에 따르면 해리스 부통령의 지지율은 51%, 트럼프 전 대통령은 45%로 집계됐습니다. TV 토론 직전보다 3%포인트 더 벌어진 격차입니다.
다만 변수는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대선 결과를 좌우할 주요 경합주에서 여전히 두 후보가 접전을 펼치고 있어, 어떤 후보의 승리도 장담하기는 어렵습니다. 게다가 트럼프 전 대통령이 두 번째 암살 시도를 면하면서 공화당 지지층이 결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동인 기자 bbha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