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서 구글, 넷플릭스 등 글로벌 빅테크기업의 영향력이 지속해 커지고 있습니다. 이들 해외사업자는 사실상 규제 공백 상태에서 무소불위로 시장 점유율과 매출을 챙겨가는 모습인데요. 이처럼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국내 사업자들이 빅테크와 겨루다 보면 결국 국내 정보통신기술(ICT) 생태계가 파괴되고 말 것이란 목소리가 나옵니다. 해외 빅테크 기업과 국내 기업 간 비대칭 규제로 발생하는 문제점을 살펴보고, 빅테크 규제와 관련한 최근의 해외 흐름을 참고해 향후 국내 법제도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짚어봅니다. (편집자주)
[뉴스토마토 이지은 기자] 국내 사업자만을 조준하는 미디어산업 규제가 지속되고 있습니다. 미디어콘텐츠산업융합발전위원회(융발위)가 산업 선순환 발전을 도모하고자 규제 혁신에 나섰지만, 글로벌 빅테크에 유리한 '기울어진 운동장' 문제는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습니다. 비대칭 규제로 국내 미디어산업의 주요 재원인 광고 매출뿐 아니라 구독료도 타격을 받고 있는 만큼 공정경쟁을 위한 판만들기가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강형구 한양대 경영학과 교수의 외국계 플랫폼기업의 국내 매출 및 법인세 추정 보고서에 따르면 구글, 메타, 넷플릭스의 지난해 국내 광고 매출은 11조8000억원으로 추정됩니다. 국내 모든 방송·신문사업의 광고 매출을 합한 금액 4조9000억원 대비 2.4배 많습니다.
구글 로고. (사진=뉴시스)
유튜브 VS. 방송, 광고규제 편차 커
구글, 메타, 넷플릭스 등 글로벌 빅테크의 국내 광고 매출이 국내 사업자를 압도할 수 있었던 것은 이용자들이 늘어난 영향도 있지만, 국내의 규제 공백에 따른 결과이기도 합니다.
국내 방송광고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지상파와 비교해보면 사업 환경의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지상파는 방송광고심의 규정을 비롯해 이해관계에 따른 다양한 법의 규제 대상입니다. 가령 방송광고심의 규정과 의료법은 의료광고의 방송광고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국민건강증진법과 방송광고심의에 따라 과도한 주류광고 노출을 방지하기 위해 알코올 도수 17도 이상의 주류광고 방송을 금지하고 있죠. 방송광고심의 규정과 축산물 위상관리법 시행규칙으로 조제분유 광고도 국내에서 불법입니다. 반면 구글의 유튜브는 이같은 규제를 보기 좋게 비껴나갑니다. 유튜브에서는 바카라 같은 불법 도박사이트나 불법 금융 광고 등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융발위 규제완화로 방송광고의 네거티브 규제 전환도 기대됐지만, 광고 유형 단순화, 품목별 규제완화 협의에 그친 상황입니다. 어린이 식생활 안전관리 특별법에 따라 어린이들이 TV를 많이 보는 오후 5시부터 7시까지 고열량·저영양·고카페인 식품 TV 광고를 제한해 왔는데, 이 같은 식품 방송광고 시간제한을 없애고 영화·스포츠 등 어린이가 주 시청자가 아닌 프로그램인 경우 해당 식품 광고를 허용하는 방안 정도가 가능해질 전망입니다. 한국방송협회 관계자는 "뉴미디어와 경쟁이 가능한 수준으로 방송 광고 규제가 완화돼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요금 올리는 OTT …유료방송은 정부 눈치만
국내 미디어산업의 또 다른 매출 축인 구독료와 관련해서도 빅테크 기업들은 자유롭습니다. 구글 유튜브는 지난해 12월8일 기존 1만450원이던 유튜브 프리미엄 가격을 1만4900원으로 올렸습니다. 인상폭이 42.6%에 달하는데요. 당시 유튜브는 공지를 통해 "여러 경제적 요인들이 변화함에 따라 심사숙고를 거쳐 결정된 사항"이라고 했습니다. 넷플릭스도 지난 2021년 11월 사전공지 없이 기존 월 1만2000원인 스탠다드 요금제를 1만3500원, 1만4500원이던 프리미엄은 1만7000원으로 인상했습니다. 지난해 11월부터는 같은 가구가 아닌 구성원과의 계정 공유를 제한하고 광고 없는 베이식 멤버십(월 9500원)의 신규 가입을 막았습니다. 소비자 이용 비용이 오르는, 사실상의 구독료 인상 단행입니다.
반면 국내 유료방송 사업자들은 방송법과 IPTV법으로 요금·약관 규제를 받고 있습니다. 유료방송 요금의 경우 신고제를, 결합상품 요금은 승인제가 적용 중입니다. 정부의 확인과 승인이 필요한 만큼 다양한 요금제를 출시하기가 어렵습니다.
규제 공백 속 글로벌 빅테크의 구독료 매출은 국내 IPTV3사에 비등할 정도로 성장했습니다. 지난해 넷플릭스와 유튜브의 구독료 매출은 2조1500억원 규모로 추산됩니다. 지난해 말 유튜브는 요금인상을, 넷플릭스는 계정 공유 제한 정책을 시행한 만큼 올해 구독료 매출은 더 늘어났을 것으로 전망됩니다.
'확정적 미디어정책 프레임' 필요
해외 빅테크의 성장은 단순히 국내 사업자들의 매출을 빼앗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지상파, 유료방송, 광고, 방송채널사용사업자(PP) 등 기존의 국내 미디어 생태계는 그간 광고와 구독료를 밑바탕 삼아 콘텐츠 유통과 관련해 유기적으로 움직여왔습니다. 하지만 이 재원이 고갈되면 서로 간 연결고리가 깨지면서 국내 미디어산업 생태계 자체가 대책없이 파괴되는 결과를 낳을 수 있습니다.
이에 지금껏 무혈입성한 빅테크가 국내 사업자와 공정경쟁을 펼칠 수 있게끔 하는 장치 마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경쟁상황 평가에 유튜브와 넷플릭스를 포함시키고, 방송통신위원회가 추진하려했던 시청각미디어서비스법을 통해 OTT의 요금 신고 의무 등 조치가 필요하다는 것이 업계 의견입니다. 유료방송업계 고위 관계자는 "시장 지배력을 이용해 가격 설정자로서 역할을 하고 있는데, 신고제 의무만 있었어도 스트림플레이션(스트리밍+인플레이션) 논란은 적었을 것"이라며 "글로벌 빅테크가 미디어 시장에 미친 영향을 고려해 확정적 미디어 정책 프레임이 나와야할 때"라고 말했습니다.
이지은 기자 jieune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