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충범 기자] 서민 애환을 달래는 대표 전통주 막걸리가 최근 세법 개정안 문제와 맞물리며 화두로 떠올랐습니다. 정부가 향료 및 색소를 첨가한 술을 막걸리로 인정하겠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세법 개정안을 두고 찬반이 엇갈리는 까닭인데요.
제도 개선이 최근 주력 주류 수요층으로 떠오르고 있는 20·30세대를 유입하고 막걸리 산업 전반의 파이를 키울 수 있는 토대가 될 것이라는 의견도 제기되지만, 막걸리를 제조하는 방식에 악영향을 미치고 나아가 전통주 본연의 의미를 훼손할 수 있다는 우려 역시 만만치 않은 상황입니다.
향료 및 색소 첨가돼도 '막걸리'…"시장 파이 커질 것"
24일 업계에 따르면 기획재정부가 지난 7월 발표한 '2024년 세법 개정안'에는 탁주(막걸리) 제조 시 첨가 가능한 원료에 향료와 색소가 추가됐습니다. 규제를 완화해 다양한 주류 제조를 지원하기 위한 취지에서 비롯됐다는 것이 기재부 측 설명인데요.
기존에는 막걸리 제조 원료로 녹말이 포함된 재료, 국(누룩), 물, 당분, 과일·채소류가 인정됐고, 아스파탐, 당분 등 첨가제의 범위도 제한적이었습니다. 현재 향료나 색소가 첨가된 막걸리는 '기타주류'로 분류되는데요. 개정이 시행되면 이들 주류가 모두 막걸리에 포함되며 세율 역시 낮아집니다.
이번 탁주 관련 제도 개선은 다양한 주류 제조를 지원하기 위한 취지에서 비롯됐다는 것이 정부 측 설명입니다. 기재부 관계자는 "규제를 완화해 더 다양한 탁주가 나올 수 있도록 하는 조치"라고 설명했습니다.
정부의 설명처럼 이번 개정에 대해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적지 않습니다. 한 주류 업계 관계자는 "그간 막걸리 산업은 전통 방식 제조라는 벽이 존재해, 주류 업계에서도 다소 고립된 느낌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라며 "향료 및 색소를 넣게 되면 젊은 수요층을 대거 끌어들일 수 있고 이로 인해 다양한 제품이 시판되고 시장 전체의 규모 확장도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최근 수년간 막걸리 시장의 전반적인 실적이 좋지 않은 데다 해외 판로를 개척하는데도 어려움이 많은 상황이었다"며 "이번 조치는 (업계) 포트폴리오 확장에도 점진적으로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일부 업체 주세 감면 위한 꼼수…전통주 정체성 훼손 우려
하지만 막걸리가 단순한 술이 아닌 전통주라는 점에서 고유의 정체성을 해칠 수 있다는 우려 역시 강하게 제기되고 있습니다. 본래 막걸리 전통 제조 원료로는 쌀, 누룩, 물만이 필요합니다. 그나마 시대의 흐름에 발맞춰 아스파탐 등 첨가제를 제한적으로 허용해 왔지만 향료 및 색소 사용의 전면 사용은 저의가 의심된다는 지적입니다.
류인수 한국술산업연구소 소장은 "탁주에 향료 및 색소가 들어갈 경우 이를 전통주라고 간주하기엔 무리가 있다. 전통주의 개념 자체가 흔들릴 수 있는 사안"이라며 "향료나 색소를 넣지 말자는 것이 아니다. 이미 현재도 이 같은 주류의 경우 기타주류로 분류되고 있는데, (정부가) 이를 무리해서 탁주 범위에 포함시키겠다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라고 짚었습니다.
류 소장은 "이번 개정으로 인해 소비자들이 다양한 막걸리를 마실 수 있고, 유네스코(UNESCO) 등재 추진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하지만, 이면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며 "개정안이 향료를 넣는 업체들의 주세를 감면하는 일종의 꼼수로 작용할 수 있는 게 문제다. 게다가 탁주 업계와 충분한 숙의를 거치지 않은 상태에서 시행령 개정을 통한 빠른 제도 손질에 나서는 정부의 모습은 저의가 의심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실제 개정안에 대해 우려하는 탁주 제조장 비중도 상당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한국술산업연구소는 지난달 19일부터 20일까지 2일간 전화 조사를 통해 탁주 제조장 752곳에 대한 설문 조사에 나섰는데요. 그 결과 전체 50.27%인 378곳이 응답했고, 이번 세법 개정안에 대해 반대하는 제조장이 323곳(85%), 찬성이 55곳(15%)인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인포그래픽 제작=뉴스토마토)
막걸리 확대 문제는 최근 기획재정부 국정감사에서도 핵심 사안으로 다뤄졌는데요.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날 "개정안 발표 이후 대부분 탁주 제조장이 반대 의사를 표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750곳의 탁주 제조장 중 극히 일부인 10%도 되지 않는 제조장이 속해있는 협회에서 주세법 개정을 제안했다"며 "독일의 맥주 순수령같이 엄격하게 관리해 전통주로서 막걸리를 규정하는 것이 정부가 할 일"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에서 고객이 막걸리를 고르는 모습. (사진=뉴시스)
김충범 기자 acechung@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