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차종관 기자] "온건한 방식으로 학교의 불통행정에 반대해 왔지만, 의견 반영이 전혀 안 됐어요."(A씨)
"여대는 여성이 사람으로서 온전히 존중받을 수 있는 공간으로 계속 존재해야 해요."(B씨)
동덕여자대학교 학생들의 남녀공학 전환 저지 투쟁이 보름째에 접어들고 있습니다. 이번 투쟁은 지난 7일 동덕여대 총학생회가 학교의 공학 전환 방침에 반대하는 입장문을 내면서부터 본격화됐습니다.
<뉴스토마토>는 20일 서울 성북구 동덕여대 월곡캠퍼스를 찾아 학생들의 목소리를 들어봤습니다. 마침 이날은 총학생회 '나란'이 20일 학생총회를 소집한 날입니다.
20일 서울 성북구 동덕여자대학교 월곡캠퍼스 운동장에서 학생들이 총회를 열고 의결권을 행사하고 있다. (사진=뉴스토마토)
총회 현장에는 재학생 1900여명이 모였습니다. 전체 재학생 6564명 가운데 약 30%에 달하는 숫자입니다. 최현아 총학생회장은 총회가 정족수를 채우자 △공학 전환 △총장직선제 2가지 안건에 대한 의결을 진행했습니다.
공학 전환에 대해선 찬성 0표, 반대 1971표, 기권 2표로 거의 전원이 반대표를 던졌습니다. 총장직선제에 대해선 찬성 1932표, 반대 0표, 기권 1표로 가결됐습니다. 학생들은 공학 전환에 반대하는 한편 이 모든 사태를 해결하기 위한 첫 단추로 총장직선제를 요구하고 나선 겁니다. 총회가 마무리되자 학생들은 박수를 쏟아내며 환호했습니다.
동덕여대 본관 앞 '과잠' 행렬. (사진=뉴스토마토)
현장에서 만난 학생들은 학교를 둘러싼 문제의 본질은 ‘학교의 불통’에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학교가 학생들의 의견을 전혀 듣지 않아 왔다고 토로했습니다. 대표적 사례로는 △학보사가 가파른 언덕길의 위험성에 대해 경고했어도 학교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방치했다가 쓰레기 수거 차량에 의해 학생 사망사고가 발생한 점 △학생 반대에도 상경계열 전공 통폐합 등 비민주적 학사행정을 한 점 △전임 교원 확대 요구를 묵살한 점 등을 꼽았습니다.
A씨는 "또다시 학생과의 상의 없이 사안이 진행되는 것에 대해 학생들의 불안과 분노가 폭발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B씨는 "우리의 손으로 총장을 뽑았을 때도 학생들을 이렇게 방관할 수 있었을까"라고 했습니다.
<뉴스토마토>가 학교를 방문했을 땐 교문과 건물 곳곳에 대자보가 덕지덕지 붙었습니다. 도로와 동상에도 학생들이 래커칠을 해놨습니다. 본관 앞 길가엔 학생들이 가져다 놓은 수백개의 '과잠'으로 도배돼 있었습니다. 흡사 학교가 아니라 난장판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학생들은 언론이 문제의 본질보다 일부 자극적인 현상만 보고서 기사를 쓴다고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C씨는 "언론에서 문제의 본질을 호도하고 학생들의 투쟁을 폭력적으로만 비춘 점이 안타깝다"며 "우리가 왜 이 시위를 하고 있는지에 더 집중해 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지난해에도 학교에 의견을 전달했지만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며 "대자보를 붙이는 등 온건한 방식으로 시위를 매년 해왔음에도 의견 반영이 전혀 안 됐다"라고도 했습니다.
'학생 의견 반영 없다'에 마킹이 되어 있는 <동덕여대학보> 1면. (사진=뉴스토마토)
이날 동덕여대 교수 240명은 불법 시위 중단 성명을 냈습니다. 이에 대해 D씨는 "대학생으로서 권리를 찾기 위해 학교와 투쟁하고 있는데 어떤 어른도 우리를 지지하지 않는다는 점이 서럽다"고 했습니다.
E씨는 "오늘 총회로 학생들의 의견을 객관적 수치로 증명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며 "여성이 하나의 사람으로 온전히 존중받을 수 있는 공간으로서 여대라는 울타리는 여전히 존재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학생들의 시위에 손상된 동상. (사진=뉴스토마토)
이날 총회를 소집한 최 회장은 "모든 수단을 동원해 총장과 연락 내지 면담을 시도하고 있지만 닿지 않는다"며 "'(공학 전환을) 안하겠다' 는 한마디면 된다"고 했습니다.
이에 대해 학교 관계자는 "총학생회를 통해 (총회) 결과를 받게 되면 충분히 참조하겠다"면서도 "(일부 학생들이) 반대 의견을 표명하기 어려운 상황인 점도 감안해 다양한 구성원의 목소리를 모두 수렴할 예정"이라 말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차종관 기자 chajonggwa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