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강승혁·신유미 기자] 금융당국이 비상계엄 이후 시장 안정 비상 조치에 나섰지만, 정치권이 '탄핵 정국'으로 빠르게 접어들면서 변동성 확대가 불가피할 전망입니다.
4일 한국거래소 정보데이터시스템에 따르면 이날 오후 4시 기준 코스피200 변동성지수(VKOSPI)는 전일 대비 11.90% 급등한 21.34 포인트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장중 최고점은 24.15 포인트(+26.6%)에 달합니다. 해당 지수는 한국 증시의 변동성을 보여주는 지표로 공포지수로도 불립니다.
금융당국이 시장 정상화를 위해 10조원 규모의 증권시장안정펀드, 40조원 규모의 채권시장안정펀드 등을 동원해 유동성을 무한 공급하겠다고 밝혔음에도 시장의 공포가 가시지 않았다는 뜻으로 해석됩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 이후 약세를 보이던 우리 증시에 정치 불안이 더해져 외국인 투자자들의 투심에 악재로 작용할 개연성이 큽니다. 커트 캠벨 미 국무부 부장관은 계엄령 선포를 둘러싼 국내 상황에 "중대한 우려"를 표했습니다.
해외 전문가 "높은 변동성 '코리아 디스카운트' 심화"
한국의 계엄 이슈에 대해 해외에선 국가의 신인도에 당장 영향이 없을 것이라면서도 한편으론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거론했습니다.
국제 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이날 언론 간담회를 열고 한국의 현재 신용등급인 'AA(장기 기준)'를 바꿀 이유가 없다고 밝혔습니다. 이 자리에 참석한 기태훈 NICE신평 평가정책본부 상무는 "기본적으로 기업·금융·경제 펀더멘털은 양호한 수준"이라면서도 "금융시장에는 충격을 줄 수 있다"고 봤습니다.
반면 글로벌 사모펀드 운용사인 칼라일의 제이슨 토마스(Jason Thomas) 글로벌 리서치·투자전략총괄이 3일(현지시간) 블룸버그TV 인터뷰에서 내놓은 전망이 대표적입니다. 그는 "시장을 안정화할 수 있는 금융 인프라가 있는 건 희망적이지만, 복잡한 정치적 이슈로 인해 앞으로도 높은 수준의 변동성이 예상된다"며 "이것은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심화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고 짚었습니다. 이에 금융당국이 공들인 '밸류업 프로그램'이 사실상 수포로 돌아갈 가능성이 커졌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원달러환율 약세도 외국인의 매도세를 부추기는 요인 중 하나입니다. 외국인으로선 원화 가치가 낮아질 경우 환차손 위험이 커지기 때문입니다.
원달러환율은 계엄령 선포 후인 4일 오전 12시20분 1442원까지 치솟았다가, 이날 증시가 마감할 무렵엔 1410원까지 내려왔습니다. 시장이 안정됐기 때문이 아니라 외환당국이 적극적으로 개입하며 평가 절하를 막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주주환원율, 보통주자본비율(CET1), 자기자본이익률(ROE) 향상을 내걸며 밸류업에 힘쓰던 금융지주사들은 당혹감이 역력한 모습입니다. 신한금융지주는 4일 자정부터 임원들을 전부 소집해 은행을 시작으로 리테일 소관 6개 그룹사별 자체점검회의를 개최했습니다. 신한금융 관계자는 "향후 지본비율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다른 이슈가 있는지 시장 모니터링을 강화하겠다"며 "연말에 보통주자본비율이 확정될 때 손익 관련한 부분에 대해서도 선제적인 관리가 필요하다"고 설명했습니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2월 4일 서울 중구 은행연합회에서 긴급 거시경제금융현안간담회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기재부 제공)
민주당, 상법개정 중단…탄핵 집중
민주당은 이날 비상계엄 선포는 헌법 위반이라며 탄핵 추진을 공식화하고 소추안을 공개했습니다. 5일 0시에는 본회의에 보고할 예정입니다.
민주당은 이날 개최하려던 상법개정안 토론회를 미루고 당분간 자본시장과 관련한 법안 논의는 잠정 연기하기로 했습니다. 오직 탄핵한 가결에만 힘을 쏟을 방침입니다. 오기형 민주당 의원은 "내란이 벌어졌고 이보다 더 중요한 일이 어디있겠느냐"며 "상법 개정, 감사원장·검사 탄핵 등을 비롯한 개별 정책은 다 보류이고, 계엄 해제 후 정부의 책임과 관여자들의 책임을 물은 후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정치권이 탄핵 정국으로 접어들면서 금융시장의 혼란은 가중될 전망입니다. 다만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했던 2016년 12월 이후와 비슷한 상황이 연출될지 주목됩니다. 당시에도 증시는 트럼프 트레이드의 영향으로 변동성이 컸지만 결국 증시를 살린 것도 탄핵 소추안 가결이었습니다.
2016년 10월 탄핵 정국 당시 전국 규모의 퇴진 시위가 벌어지며 주식시장이 크게 하락했습니다. 11월1일엔 2000선을 내주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의결된 후 시장은 반등을 시작했고 이듬해 본격적인 상승세에 올라탄 뒤 2017년 말엔 2500선을 돌파하며 6년간의 '박스피'를 벗어났습니다.
증시 전문가들은 이번 계엄 사태 이후 정치적 불확실성은 불가피하다며 단기 변동성 확대를 경계했는데요. 다만 그 충격은 제한적일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이경민 대신증권 연구원은 "비상 계엄은 선포 직후 해제됐고 야간선물시장에서 환율 낙폭도 축소된 점을 감안할 때 금융시장의 충격 강도는 제한적일 것"이라며 "특히 국내 증시와 환율이 극심한 저평가 영역인 만큼 점차 안정을 찾아갈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외환·채권·주식시장의 트리플 약세는 피할 수 없을 전망입니다. 신한투자증권 리서치본부 투자전략부는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 철회와 유동성 지원으로 시장의 변동성은 제어될 것으로 판단한다"면서도 "다만 연말 탄핵정국 진입 가능성으로 외환-채권-주식의 트리플 약세가 우려돼 연말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이 반복될 것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사퇴 촉구 탄핵추진 비상시국대회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 등 야당 대표 및 의원들과 당직자, 보좌진, 당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뉴시스)
강승혁 기자 ksh@etomato.com
신유미 기자 yumix@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