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규하 기자] 수출 전선 악재 속에 K-반도체가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지만 날이 갈수록 불안감만 커지고 있습니다. 새해 첫 달 반도체 수출이 역대 1월 중 두 번째 실적(1위 2022년 108억달러)을 올렸지만 범용 메모리칩 수요 약화와 함께 트럼프발 리스크에 대한 불확실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특히 트럼프 2기의 반도체 관세 우려로 인한 혼돈과 반도체 산업 경쟁력을 회복하기 위한 근로시간 규제 완화 요구가 맞물리면서 반도체를 둘러싼 긍정·부정적 전망이 혼재할 것으로 보입니다.
지난 1월 8일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에서 한 직원이 이동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버팀목 반도체…전망 '먹구름'
3일 통계청의 '2024년 12월 산업활동동향'을 보면, 지난해 12월 광공업 생산 중 반도체가 전월보다 5.6%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특히 반도체 제조용 기계를 포함한 기계류(2.9%) 등의 호조세로 지난해 연간 설비투자는 4.1% 늘었습니다.
그만큼 생산이 늘면 설비가동률은 올라가고 일자리에 영향을 줍니다. 지난해 반도체 수출 지표가 좋았지만 기업 설비투자가 마이너스를 보인 것과 비교하면 대조적입니다.
올해 첫 달 자동차, 디스플레이, 무선통신기기, 일반기계, 가전 등 13개 품목의 수출액은 줄었지만 반도체 수출이 101억달러를 달성하면서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문제는 반도체마저 전망이 밝지 않다는 점입니다. 현재 글로벌 기관들은 반도체 수출 증가세가 크게 둔화하는 추세로 성장 동력의 약화가 뚜렷해질 수 있다고 판단합니다.
최근 글로벌 투자은행인 씨티은행의 분석을 보면, 한국의 반도체 수출 증가율은 기저효과 및 범용 메모리칩 수요 약화로 상반기 감소를 예상하고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김록호 하나증권 수석연구위원은 "2025년 1분기 삼성전자 DS(반도체) 부문 영업이익은 1조5000억원으로 부진할 전망"이라며 "비수기 진입 및 스마트폰, PC 재고조정이 진행되며 전 분기 대비 출하량이 디램(DRAM)은 7%, 낸드(NAND)는 11% 감소할 전망"이라고 내다봤습니다.
때문에 AI 메모리의 핵심으로 꼽히는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 변화에 관련 업계는 예의주시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더욱이 중국 스타트업 딥시크가 공개한 인공지능(AI) 모델이 예상보다 빠르게 다가오면서 미국과의 AI 패권 경쟁을 둘러싼 여파에 긍정·부정적 영향이 혼재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승은 국제금융센터 연구원은 "충격이기는 하나 미국의 AI 리더십이 쌓아온 진전을 훼손시키기에는 충분하지 않으며 오히려 미국 기업들을 더 자극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시각도 상당한다"며 "미국의 중국 기술 야망 억제 실패에 따른 반성으로 규제가 더욱 강화되고 트럼프 2기 하에 미·중 기술전쟁이 격화되면서 중국의 기술 발전이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의견"이라고 말했습니다.
정부는 전 세계 '관세 전쟁'이 임박하자, 360조원대 유동성 공급 등 수출기업 지원을 재차 피력한 상황입니다. 수출기업 유동성 확보와 수출 모멘텀 확대를 위한 '범부처 비상수출대책' 마련도 추진한다는 입장입니다. 사실상 트럼프발 통상압박을 버티기 위한 지원책으로 수출기업들 중 반도체 분야도 지원 확대를 요청한 상태입니다.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행복하고 정의로운 대한민국, 반도체특별법 노동시간 적용제외 어떻게?'를 주제로 열린 더불어민주당 정책디베이트 3에서 법안 소개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반도체법…AI 관련 추경 '이목'
무엇보다 산업계·노동계가 첨예하게 대립한 '주 52시간 예외'의 반도체특별법에 이목이 쏠립니다. 정부와 여당은 산업계 입장을 고려해 반도체 산업에 대한 초과 근무 예외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반면 민주당은 근로기준법 무력화를 주장하던 노동계와 궤를 함께해왔습니다.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전삼노)이 지난달 26일부터 지난 2일까지 연구·개발(R&D) 직군 조합원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를 보면, R&D 직군 조합원 10명 중 9명은 R&D 노동자들의 주 52시간 상한제 예외 조항을 둔 반도체 특별법에 반대하고 있습니다.
'주 52시간 예외 도입이 근로 환경에 어떤 영향을 미칠 건가'라는 질문(복수선택)에는 '워라밸 저하(769명)', '업무 스트레스 증가(697명)', '노동 시간 증가(642명)' 등을 꼽았습니다. '최근 1년 동안 법정근로시간을 초과한 경험'에는 249명(27.5%)이 '그런 경험이 있다'고 답했습니다.
최근 이용우 민주당 국회의원실이 분석한 자료를 보면, 삼성은 지난해 10월 말까지 3개월(12주) 단위로 15차례에 걸쳐 1658명의 연구개발 인원을 대상으로 주 12시간씩 총 23만8752(12x12x1658)시간의 특별연장근로를 실시했습니다.
2023년에는 7회에 걸쳐 1358명 대상 19만5552시간을 연장근로를 실시했습니다. 중복인원을 고려해도 삼성의 연구개발 노동자들은 약 2년간 43만4304시간의 연장근무를 했다는 얘기입니다.
하지만 이재명 대표가 전향적 검토 가능성을 시사하면서 근로기준법이 무력화될 수 있다는 우려의 시선이 높았습니다.
이와 관련해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은 "구태의연하고 시대착오적인 노동시간 적용 제외 도입 논의에 강력히 반대한다"며 "노동조건의 최저기준을 법정화한 근로기준법을 사실상 무력화시키는 것"이라고 비판했습니다.
다만, 주 52시간 내에서의 탄력적 운영을 전제로 한 만큼, 앞으로 유연성 확대는 쟁점이 될 전망입니다. AI 개발을 위한 관련 추가경정예산(추경) 여부도 이목이 쏠리는 대목입니다.
글로벌 투자사인 바클레이즈 측은 "1월 수출 감소폭은 시장 예상(-14.0%) 만큼 크지 않았으나 반도체 사이클 하락, 관세 영향 등으로 상반기 중 수출 부진 흐름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구조적 측면에서는 중국의 첨단 제조업 경쟁력 향상, 미국의 대중 수출통제, 중국의 비미국 시장 점유율 확대 노력 등이 한국 수출에 부정적 요인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소속 조합원들이 3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반도체특별법 노동시간 적용제외 시도 규탄 및 논의중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규탄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세종=이규하 기자 judi@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