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충범 기자] SPC그룹은 최근 기업 명운을 걸고 미국 시장 공략에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고 있습니다. 이는 지난 수년간 'K-콘텐츠'의 열풍에 힘입은 국내 식품 산업 전반의 성장세에 편승해 수익 효과를 거두겠다는 의도도 있지만, 갈수록 내수 시장에서 동종 업계의 경쟁이 치열해지며 운신의 폭이 좁아짐에 따라 글로벌 시장으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는 구조적 한계도 한몫하고 있는데요.
사실상 해외 포트폴리오 확장이 필연적으로 요구되는 시점인 만큼, SPC그룹은 미국을 전진 기지로 삼아 매장을 확대하고 공장 건립에 나서는 등 매우 공격적인 투자 행보에 나서고 있는 상황입니다. 문제는 이 같은 외형적 성장과는 달리 누적 순손실은 1000억원에 달할 정도로 수익 측면에서 적자가 지속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더욱이 전 세계적 원자재 가격 상승, 국내 기업들의 미국 시장 진출에 따른 경쟁 구도 강화 등 요인은 SPC 측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는 분석입니다.
외형 확대됐다지만…적자에 '허덕'
SPC그룹은 미국 텍사스주(州) 존슨 카운티 벌리슨 시의 산업단지 하이포인트 비즈니스 파크 소재 약 15만㎡ 규모의 제빵 공장 부지 매입을 마치고, 투자 계획과 지원금 등을 지방 정부로부터 이달 3일 승인 받았습니다. SPC그룹은 1억6000만 달러(약 2300억원)를 투자해 오는 2027년까지 공장 준공을 마친다는 계획입니다.
SPC는 해외 14개국에 600여개의 파리바게뜨 매장을 운영 중인데요. 이중 미국과 캐나다 등 북미 지역 매장은 200여개에 달합니다. SPC는 북미 지역을 비롯해 향후 진출 예정인 중남미 지역까지 베이커리 제품을 공급하는 생산 시설을 가동하기 위해 공장을 건립했다고 밝혔는데요. 공장 위치를 미국 본토 최남단에 위치한 텍사스로 잡은 것도 이들 지역으로의 접근성을 고려했다는 분석입니다.
하지만 이 같은 외형 성장과는 달리 SPC가 미국에서 거둔 실적은 처참한 수준입니다. 파리바게뜨 미국 법인(PARIS BAGUETTE BONDOUX, INC.)은 지난 2002년 설립 이후 연 단위로 단 한 번도 흑자를 기록한 적이 없고, 누적 손실 규모만 1000억원이 넘습니다.
파리크라상 연도별 연결감사보고서에 따르면 바리바게뜨 미국 법인의 당기순손실은 △2018년 169억원 △2019년 123억원 △2020년 560억원 △2021년 11억원 △2022년 75억원 △2023년 33억원 등 단 한 번도 적자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했습니다.
또 매출의 경우 지난 △2020년 1222억원 △2021년 1526억원 △2022년 2961억원 △2023년 2931억원으로 2022년까지 성장세를 보이다 2023년 소폭 축소되며 정체되는 모습을 나타냈습니다.
이처럼 적자 행진이 지속되는 가운데 SPC그룹이 텍사스 공장 건립을 통한 대대적 투자를 천명한만큼 이에 따른 일시적 대규모 손실 부담까지 더해져, 수익성 개선은 더욱 쉽지 않을 전망입니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해외 법인이 설립된 이래 20여년간 좀처럼 흑자를 기록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현지 시장 공략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의미다. 게다가 이 기간은 지금만큼 불확실성이 컸던 시기도 아니었다"며 "여기에 SPC의 경우 공장 증설이라는 직접투자가 가해지면서 자금 압박이 증가하고 있다. 계속 흑자를 이어왔다 해도 부담이 큰데, 적자 상황에서는 추가 리스크로 작용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이와 관련해 SPC그룹 관계자는 "해외 투자 초기에는 막대한 비용이 발생한다"며 "해외 사업을 하는 기업들이라면 적자는 어쩔 수 없다"고 답했습니다.
원자재 가격 상승, 경쟁 구도 격화가 더 문제
이처럼 SPC가 공격적으로 미국 시장 진출을 도모하고 있지만 적자 누적이라는 수치 너머 향후 글로벌 시장을 둘러싼 불확실성 확대가 더 큰 문제라고 업계는 진단합니다.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보편관세 문제가 현실화할 경우를 대비해 공장 설립으로 가닥을 잡은 것은 다행일지 모르지만, 글로벌 제빵 산업 환경 자체가 녹록지 않은 점이 결정적 걸림돌이라는 분석인데요.
우선 국제곡물가격이 높은 수준을 유지하면서 제빵 업계에 지속적인 부담을 주고 있습니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제빵 산업과 밀접한 밀이나 옥수수의 경우 곡물자급률은 0%대에 수렴하는데요. 이는 사실상 이들 주요 곡물을 수입에 의존해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특히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지난달 곡물가격지수는 0.3% 상승한 111.7로 2014~2016년 평균 가격을 100을 훌쩍 웃돕니다. 특히 글로벌 이상 기후 여파와 함께 이들 곡물 가격은 전반적으로 우상향하는 추세인데요. SPC 역시 최근 상당수 제품의 가격을 인상하면서 “원부자재 가격 상승에 따른 부담으로 가격을 높이게 됐다”고 밝혔습니다.
파리바게뜨가 북미 지역에 운영 중인 매장들 모습. (사진=SPC그룹)
SPC가 미국에서 확실한 킬러 콘텐츠를 확보하고 있느냐에 대한 의문도 제기됩니다. SPC는 미국에서 300종 이상의 제품 구성으로 다양성을 중시하고 쟁반과 집게를 이용해 빵을 고르는 방식이 현지에서 먹히고 있다고 설명하지만, 이 같은 방식이 영속성을 가질지는 다른 문제라는 것이죠. 국내 시장에서야 이렇다 할 대체재가 없어 SPC의 독주가 가능하다지만, 시장이 넓은 미국에서 이 같은 방식이 계속 통하기는 어렵다는 겁니다.
한 외식업계 관계자는 "국내에서도 파리바게뜨 하면 딱 떠오르는 제품이 없는 것이 현실인데, 빵의 본진이라 할 수 있는 미국에서 확실한 킬러 콘텐츠가 없는 것은 두고두고 경쟁력 제고에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다"며 "제품의 다양성을 무기로 한다지만, 이는 국내 동일 업종 기업들이 같은 방식의 마케팅에 나설 경우 경쟁력을 잃을 수밖에 없는 요소다. SPC 측이 매장 확대와 매출 증대라는 규모의 경제 측면에 포커스를 맞추고 홍보하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고 진단했습니다.
경쟁사이자 미국 시장을 사실상 장악했다고 평가받는 CJ푸드빌이 북미 시장 공략에 속도를 내고 있는 점도 SPC 입장에서는 극복해야 할 난제인데요. 실제로 CJ푸드빌의 미국 사업은 외형 성장과 내실을 모두 잡으며 SPC와는 사뭇 다른 행보를 보이고 있습니다.
CJ푸드빌의 미국법인 순이익은 지난 2020년만 해도 23억원 수준이었지만 146억원으로 크게 늘었습니다. 또 현재 미국 내 150여개인 매장도 오는 2030년까지 1000개로 확대한다는 방침입니다. 아울러 CJ푸드빌 미국 조지아주에 5400만 달러(약 791억원)를 투입해 신공장을 조성 중인데요. 완공 예정 목표가 올해 하반기인 만큼 준공 시점도 SPC보다 더 빠릅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경제학과 교수는 "미국 시장이 아무리 넓다지만 미국에서의 사업 전개 양상 방식이 비슷하기에 일정 수준 SPC와 CJ푸드빌의 경쟁은 불가피하다"며 "다만 CJ푸드빌의 경우 베이커리뿐만 아니라 외식, 한식 등도 함께 주력으로 삼고 있고, 이 자체가 미국 수요층에 경쟁력이 돼 중장기적 측면에서 유리한 위치에 있다. 사실 미국인들에게 빵은 특별할 것이 없지만, K-콘텐츠의 중심인 한식은 이야기가 다르다"라고 설명했습니다.
김충범 기자 acechung@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