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사이언스)사물을 기억하게 해주는 뇌세포의 발견

사물 인식하는 기억 능력에 핵심적 역할 하는 새로운 유형 뇌세포 발견
기억 작동 방식에 대한 이해 넓혀, 알츠하이머병 치료 가능성 열릴 수도

입력 : 2025-02-21 오전 9:19:47
모니터에서 난원 세포가 발광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셈브로우스키 교수와 아드리엔 킨먼 연구원 (사진= 브리티시 컬럼비아 대학(UBC))
 
[뉴스토마토 서경주 객원기자] 우리는 오래된 사진이나 물건을 정리하며 그것과 관련된 기억을 떠올립니다. 그런 사물들은 개개인의 기억 속에서 정체성을 형성하고 관계와 환경을 이해하도록 만들어 줍니다. 우리의 일상은 그렇게 축적된 기억을 바탕으로 이뤄집니다. 사물을 인식하는 것이 기억으로 이어지는 것, 그것은 인간의 정상적인 삶에 있어서 매우 중요합니다. 일례로 용도에 맞는 도구의 선택도 그런 인식과 기억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집니다.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 대학(UBC) 의대 연구진은 이 기억과 인식의 연결하는 비밀을 풀어줄 중요한 단서를 발견했습니다. 연구진은 사물을 기억하고 인식하는 능력에 중심적인 역할을 하는 새로운 유형의 뇌세포가 있다는 것을 밝혀내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에 발표했습니다.
 
이번에 연구진이 해마에서 발견한 새로운 세포는 난원세포(ovoid cells)라고 불리는 고도로 특화된 뉴런으로, 우리가 새로운 사물을 접할 때마다 활성화됩니다. 이를 통해 해당 사물을 기억 속에 저장하고, 몇 달 또는 몇 년이 지난 후에도 이를 인식할 수 있도록 합니다.
 
이번 연구 논문의 교신 저자인 UBC 세포생리과학과 마크 셈브로우스키(Mark Cembrowski) 교수는 “사물을 인식해 기억하는 것(object recognition memory)은 우리의 정체성과 세상과의 상호작용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면서 “어떤 사물이 익숙한지 혹은 새로운지를 아는 것은 생존부터 일상생활까지 모든 것에 영향을 미치며, 기억과 관련된 질환과 장애 연구에도 큰 의미를 갖는다”고 말했습니다.
 
생김새가 달걀 모양을 하고 있어 ‘난원세포’라는 이름이 붙은 이 세포들은 인간, 쥐 및 기타 동물의 해마(hippocampus) 내에서 상대적으로 적은 수로 존재합니다. 이번 연구에 참여한 애드리엔 킨먼(Adrienne Kinman) 연구원은 쥐의 뇌 샘플을 분석하면서 세포의 독특한 특성과 아울러 고유한 유전자 발현을 가진 작은 뉴런 군집을 발견했습니다. 이 세포들은 다른 뉴런들과는 모양과 기능이 달랐고 신경 회로망에서도 뚜렷한 차이를 보였습니다.
 
난원세포의 역할을 가시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킨먼은 쥐의 뇌 안에서 세포들이 활성화될 때 빛을 내도록 세포를 조작했습니다. 이후 연구팀은 광자 현미경을 사용하여 쥐가 환경과 상호작용할 때 이 세포들이 발광하는 것을 관찰했습니다.
 
난원세포는 쥐가 낯선 사물을 보았을 때는 발광했지만 쥐가 그것에 익숙해지면 반응을 멈췄습니다. 난원세포들이 반응을 멈춘 것은 쥐가 이제 그 사물을 기억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세포들은 새로운 사물을 볼 때마다 강렬하게 반응했습니다. 즉 새로운 자극에만 반응했습니다. 쥐는 어떤 사물을 한 번 접하면 몇 달 동안은 같은 사물을 보아도 반응하지 않았습니다. 그 사물에 대한 쥐의 기억이 몇 달 동안 지속된다고 추정할 수 있습니다. 
 
연구진은 이제 난원세포가 다양한 뇌 질환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조사하고 있습니다. 하나의 가설은 난원세포들이 과도하게 활성화되거나 충분히 활성화되지 않았을 때, 알츠하이머병이나 간질과 같은 질환을 유발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물을 인식하고 그것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알츠하이머병의 주요 특징 중 하나입니다. 예를 들면 도구의 용도를 기억하지 못해 엉뚱한 도구를 들고 청소를 하거나 가족들의 사진을 보고도 그게 무엇인지 기억하지 못합니다. 연구진은 만약 난원세포를 조작해 인식과 기억의 관계가 끊기는 것을 예방하거나 복원할 수 있다면 알츠하이머병을 치료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연구진은 간질도 난원세포가 과잉 반응을 해 나타나는 증상으로 추정했습니다. 이번 난원세포의 발견은 해마에는 한 가지 유형의 세포만 들어 있어서 그 세포가 기억의 여러 측면을 제어한다고 여겨져 온 수십 년간의 정설을 뒤집는 것입니다.
 
셈브로우스키 박사는 “기초 신경과학의 관점에서, 이번 발견은 기억이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한 해석을 근본적으로 바꿔놓았다”고 말했습니다. 이번 난원세포의 발견은 뇌 안에 아직 발견되지 않은 다른 유형의 뉴런들이 존재할 가능성을 시사합니다. 이는 뇌 건강과 질병을 다루는 방식에 대해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고 있습니다. 
 
서경주 객원기자 kjsuh5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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