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나볏 기자] 일본 로봇공학자 모리 마사히로는 로봇이 인간을 어설프게 닮으면 '불쾌한 골짜기(uncanny valley)'가 발생한다고 주장했다. 인간과 동떨어진 모습일 때는 로봇에 대한 호감도가 올라가지만 인간과 유사한 모습일수록 호감도가 외려 떨어진다는 이론이다. 즉, 로봇이 인간을 닮아갈수록 역설적이게도 이질감에서 오는 불편한 감정이 커진다는 것이다. 이번 MWC2025에서 선보인 휴머노이드 로봇들을 보면 이 같은 주장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개인적인 소견이나 가령 작은 키에 일자 모양 눈을 한 중국 유니트의 'G1'이나 동그란 눈을 한 LG유플러스의 '앨리스'는 친근감을 자아냈지만, 아랍에미리트의 이앤(e&) 그룹이 만든 '아미라'는 그렇지 않았다. 마네킹과 유사한 외양에 빨간 가디건까지 갖춰 입은 채 말을 하는 모습은 거리감을 넘어 두려움마저 느끼게 했다.
이러나저러나 휴머노이드 로봇은 머지 않은 미래에 일상 속으로 깊이 침투할 듯싶다. 이른바 '피지컬 AI(물리적인 AI)'의 현현이다. 우선은 산업 현장에 적용될 것으로 보이지만 사람의 외양을 닮아가는 것 보니 집 안에도 언젠가는 들어올 태세임이 틀림 없다. 기술의 속도는 늘 생각보다 빠르니 마음의 준비를 해두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휴머노이드 로봇은 내게 과연 어떤 가치를 줄 것인가? 일단 반복해서 해야 하지만 티가 잘 안 나는 일들부터 떠넘겨야겠다. 집에서는 청소와 빨래, 식사 담당이다. 직장에서는 커피 심부름이나 복사물을 가져오는 일을 시켜야지. 그 밖에는 별로 시킬 일이 떠오르지 않는다. 그저 사람 꼴을 하고 느닷없이 등장해 나를 놀래키지만 않았으면 하는 마음뿐.
아마도 휴머노이드 로봇은 컴퓨터 화면을 보며 일하는 사람들보다는 물리적 노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칠 것이다. 집 안에서는 가사노동 해방이라는 가치를, 노동 현장에서는 위험한 환경에 대한 노출을 막는 가치를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가운데 은근슬쩍 사라져버리게 될 것으로 예상되는 다른 가치들도 있다. 가령 집 안에서는 사람 간 돌봄이라는 가치가 사라질 수 있다. 노동 현장에선 산업재해는 획기적으로 줄겠지만 이와 동시에 사람 일자리도 함께 사라질 가능성이 크다.
'나는 사무직이니 상대적으로 여파가 적을 것'이라고 여긴다면 오산이다. 산업 현장에 휴머노이드 로봇이 간다면, 사무실에는 AI 에이전트가 온다. 책상머리 앞에서 단순 반복되는 업무로만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면 긴장할 필요가 있다. 당신이 지금 하고 있는 모든 업무는 어쩌면 대체 가능한 것이 될 수 있다.
미국은 물론이요, 중국의 기술 굴기가 매섭다. 뉴스를 보면 온통 우리나라가 기술혁신에 뒤처져 낙오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요즘이다. 그래도 당신이 ICT 관련 업계 종사자나 정책 입안자가 아니라면 일단 나라 걱정, 기술혁신에 대한 걱정에 잠 못 이루기보다는, 우선 나 자신의 혁신에 집중하는 것이 현명하지 않을까 싶다. 오랫동안 인간의 상상 속에 머물던 AI 세상, 로봇 세상이 이제 정말 코앞으로 다가와 있다. 거대한 AI 파도가 모든 것을 집어삼키기 전에 나만의 가치는 무엇인지 깊이 생각해 찾아내야 한다. 마지막까지 인간 몫으로 남을 유일한 역할은 어쩌면 프롬프트(명령어) 입력일 수 있다. 일에 대해서건 자기 자신에 대해서건 제대로 명령어를 입력하기만 한다면, 격변의 시기를 뚫고 살아남을 확률이 상대적으로 크다.
밤에 만나면 좀 무서울 것 같은 휴머노이드 로봇 '아미라'. (사진=뉴스토마토)
김나볏 기자 freenb@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