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효진·김유정 기자] 주주에 대한 이사의 충실 의무를 담은 '상법 일부개정법률안'(상법 개정안)이 민주당 주도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습니다. 국민의힘은 즉각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를 건의할 전망입니다. 정부도 상법 개정안에 부정적 입장이었던 만큼 거부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다만 탄핵소추 선고를 앞둔 한덕수 국무총리 복귀설이 나오는 만큼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정국 상황을 예의주시하며 최종기일까지 결정을 미룰 수 있습니다.
'이사의 주주 충실의무' 등을 담은 상법 일부개정법률안(상법 개정안)이 13일 오후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국민의힘은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날 오전 "민주당이 오늘 상법 개정안을 또다시 일방 통과시키면 즉각 재의요구권을 건의해 우리 기업을 지킬 것"이라고 밝혔다.(사진=뉴시스)
권영세 "거부권"→이복현 "반대"→권성동 "검사냐"
국회는 13일 오후 본회의를 열고 '상법 개정안'을 표결에 부쳤습니다. 재석 279명 중 찬성 184명, 반대 91명, 기권 4명으로 가결됐습니다. 그간 상법 개정안을 놓고 여야가 치열한 공방을 이어온 만큼 야유와 고성이 오갔습니다.
국회를 통과한 법안은 정부로 이송됩니다. 최 대행은 15일 이내로 법안 공포 또는 거부권 행사를 선택해야 합니다.
상법 개정안은 상장·비상장 법인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기존 회사에서 회사와 주주까지 넓힌다는 내용이 골자입니다. 이사가 직무를 수행하면서 회사뿐 아니라 전체 주주의 이익을 공평하게 대우해야 한다는 법률상 의무가 추가됐습니다.
자산총액 2조원 이상의 상장회사는 현장과 전자 방식의 주주총회를 병행해야 한다는 내용도 담겼습니다. 주총 출석이 어려운 주주의 의결권을 보장하기 위해서입니다.
정부·여당과 경제계는 반발하고 있습니다. 상법 개정 시 기업들이 각종 소송에 시달릴 수 있고 해외 투기 자본으로부터 빈번한 경영권 공격을 받을 수 있다는 이유에서입니다.
이날 표결에 앞선 의원 토론에서 최은석 국민의힘 의원은 "작년 초까지 대기업 대표이사로서 기업 일선에서 일해왔던 사람으로서 기업 경영 현실 전혀 모르는 위험한 탁상공론의 결과물"이라며 질타하기도 했습니다.
국민의힘은 정부에 거부권을 요청할 예정입니다. 권영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앞서 이날 오전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민주당이 오늘 상법 개정안을 또다시 일방 통과시키면 즉각 거부권을 건의해 우리 기업을 지킬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사업 초기 시가총액이 작은 기업들은 미래를 위한 투자와 발전 전략 수립에 다 쏟아도 부족한 에너지를 경영권 방어에 써야 한다"고 덧붙이기도 했습니다.
정부도 거부권 행사가 유력합니다. 정부는 상법 개정이 부작용 우려가 크다고 판단해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자본시장법)' 개정을 추진해 왔습니다. 앞서 최 대행도 지난 14일 '거시경제·금융현안 간담회'에서 "일반 주주를 실효성 있게 보호하기 위한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심도 있게 논의되기를 기대한다"며 자본시장법 개정에 힘을 실은 바 있습니다.
하지만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이날 서울 여의도 한국경제인협회에서 열린 '기업·주주 상생의 거버넌스 구축을 위한 열린 토론' 후 취재진과 만나 상법 개정안 거부권 행사에 대해 "직을 걸고서라도 반대한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같은 날 오후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이 원장을 향해 "검사 때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던 습관이 금감원장이라는 막중한 자리에서도 나오는 것 같다"며 "옳지 못한 태도로 반드시 지적받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은 15일 이내로 상법 개정안 공포 또는 거부권 행사를 결정해야 한다. 여야의 공세가 심한 가운데 한덕수 국무총리 복귀설까지 불거지며 최 대행의 숙고가 길어질 전망이다.(사진=뉴시스)
한덕수 탄핵 선고 변수…거부권 땐 범야 '반발'
상법 개정안에 대한 거부권 행사까지는 갈 길이 멀고 험합니다. 한 총리 탄핵심판 선고가 임박한 점이 최대 변수인데요. 헌법재판소가 한 총리 탄핵을 기각할 경우 최 대행은 다시 2선으로 물러나게 됩니다. 데드라인이 임박할 때까지 상법 개정안 거부권 행사를 유보하며 정국을 지켜볼 것이라는 관측이 나옵니다.
최 대행 앞에 놓인 거부권 처리 여부도 변수입니다. 최 대행은 지난달 27일 야권 주도로 국회를 통과한 '명태균과 관련한 불법 선거 개입 및 국정농단 사건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의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명태균 특검법)'에 대한 거부권도 아직 쓰지 않았는데요.
결정 시한이 오는 15일까지로, 최 대행은 이르면 14일 임시 국무회의를 열고 '명태균 특검법'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할 전망입니다. 이 경우 범야권의 반발이 거셀 것으로 보입니다.
실제로 민주당 강경파 사이에선 최 대행을 탄핵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옵니다. 최 대행이 거부권을 일곱 차례 행사하고 마은혁 헌법재판관 후보자를 미임명하는 부분을 문제 삼고 있습니다. 최 대행이 여기에 상법 개정안에 대해서도 거부권을 행사할 경우 거야의 반발은 최고조에 달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반면 상법 개정안을 공포하면 국민의힘과 갈라서게 됩니다. 최 대행은 지난해 말 헌법재판관 2인 임명으로 한차례 여권과 관계에 금이 갔는데요. 또다시 여권의 거부권 요청을 외면하는 건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이효진 기자 dawnj789@etomato.com
김유정 기자 pyun9798@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