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표진수 기자] 국회에서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일부개정법률안)’이 가결되면서 국내 완성차 업계의 노사관계가 새로운 전환점을 맞고 있습니다. 특히 완성차 업계와 연결된 수많은 하청업체들이 원청과 직접 교섭할 수 있게 되면서 업계 전반으로 파급 효과가 확산될 것으로 전망됩니다. 다만 업계의 우려가 과도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습니다. 법안은 기존 판례의 법리를 명문화한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 노동법 전문가들의 해석입니다.
지난 24일 국회 본회의에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일부개정법률안(노란봉투법)'이 통과되고 있다. (사진=연합)
27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 완성차 업체들과 직접 거래하는 1차 협력 업체 수는 831개사로 집계됐습니다. 완성차 업체가 협력 업체에 의존하는 이유는 자동차가 2만개 이상의 부품으로 구성돼 있어, 이 모든 부품을 자체 생산하는 대신, 전문성을 가진 협력 기업들에게 생산을 위탁하는 것이 효율적이기 때문입니다.
이번 노란봉투법 통과로 이들 업체의 노조들이 원청업체에 직접 교섭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아진 상황에서, 완성차 업계는 협력 하청 기업들이 원청을 상대로 쟁의행위를 남발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습니다. 노란봉투법은 간접고용 노동자의 교섭권을 보장하고, 쟁의행위 탄압 목적의 손해배상과 가압류를 금지하는 것을 주된 내용으로 합니다.
특히 완성차 업계는 하청업체 의존도가 높아 교섭이 결렬될 경우 생산 차질이 불가피한 상황입니다. 핵심 부품을 생산하는 1차 협력 업체는 완성차 생산 라인 전체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업계의 긴장감이 더욱 높아지고 있습니다.
당장 ‘철수설’ 등을 거론하며 노란봉투법 개정에 거세게 반대한 한국GM은 법안 통과 후 정부에 강력한 재고를 요청한 상태입니다. 헥터 비자레알 한국GM 대표는 “본사에서 사업장을 재평가할 수 있다”며 “강력하게 (노란봉투법) 재고를 요청한다”고 언급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그러나 하청업체 파업이 급증할 것이라는 우려에 대해서 교섭 창구 단일화 제도로 인해 개별 하청 노조들이 원청업체와 직접 교섭을 벌이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습니다. 김성희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원청에게 교섭을 요구하는 움직임은 늘어나겠지만, 원청이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지배력을 행사하는 경우에만 교섭 대상이 되는 만큼 독립적인 외주 하청은 대상이 되지 않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기아 오토랜드 화성 타스만 생산 라인. (사진=현대차그룹)
실제 지난 7월 서울행정법원이 현대제철과 한화오션 사건에서 내린 판결을 살펴보면, 법원은 ‘산업안전보건’, ‘성과급’, ‘노동안전’ 등 특정 영역에서만 원청의 실질적 지배력을 인정했을 뿐, 나머지 사안들에 대해서는 이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이 판결은 교섭 범위가 상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으며, 실질적 지배력에 대한 판단 기준이 까다롭게 적용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노란봉투법 제3조가 노조에게 무제한 ‘면죄부‘를 준다는 우려도 있지만, 이 또한 과도한 걱정이라는 분석이 나옵니다. 불법 파업에 대해선 여전히 책임을 물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손해배상 규모는 법원이 노동자의 지위, 행위 정도, 손해 기여도 등을 따져서 정하게 돼 있어 무조건 면책해주는 것은 아닙니다. 김 교수는 “기존에는 손해배상액이 지나치게 높아서 하청 노조를 압박하는 수단으로 악용됐다”고 설명했습니다.
한편, 노란봉투법은 단순히 국내적 차원의 문제를 넘어서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국제노동기구(ILO)는 그간 사용자 개념의 확대와 노동쟁의 범위의 현실적 반영 등을 지속해서 권고해왔고, 유럽연합(EU) 역시 한-EU 자유무역협정(FTA) 전문가 패널 보고서를 통해 우리 정부에 관련 제도 개정을 촉구한 상황입니다.
표진수 기자 realwater@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