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지는 '3차 오일쇼크'…장기대책이 없다

에너지 다소비 기업 "석유 사용 3.3%↓"
원전 1기분' 절약 짜내는 대기업 50곳
민간 영역까지 에너지 절약 확산 조짐
"싸게 많이 쓰는 구조, 이젠 버틸 수 없어"
"대전환까진 요금 정상화로 절약 유도해야"

입력 : 2026-04-07 오후 5:32:14
[뉴스토마토 이규하 기자] 시멘트, 정유, 석유화학 등 에너지 다소비 업종 기업들이 '석유 사용량을 3.3% 줄이겠다'는 계획을 정부에 제출하면서 민간 영역의 허리띠 졸라매기가 본격화될 조짐입니다. 이들은 50개 민간기업으로 전력 기준 환산 시 원전 1기를 한 달 가동해야 생산할 수 있는 규모를 아끼는 셈입니다. 그러나 기업 이익률을 방어하기 위한 이번 대응은 단기 처방에 불과할 뿐입니다. 재생에너지 전환 과정까지 단순 절약을 넘어 수요 관리 체계를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나옵니다. 지금까지 한국 경제는 값싼 에너지를 기반으로 성장해 왔지만 '싸게, 많이 쓰는 구조'로는 버틸 수 없기 때문입니다.
 
7일 기준 국내 휘발유 가격은 리터당 1952.11원으로 전년보다 22.2% 폭등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원전 1기 한 달 생산량 절약"
 
7일 정부의 중동발 대응을 큰 틀에서 보면, 공급망 해소와 에너지 절약 '투 트랙' 전개로 읽힙니다. 이 중 공급망 병목 해소와 관련해서는 호르무즈 봉쇄, 원유 수입 차질, 나프타 부족, 석유화학·의료제품 생산 영향, 물류·수출 지연, 산업 전반 타격 등 끊긴 공급망 흐름을 다시 연결하는 데 방점을 두고 있습니다.
 
내부적으로는 승용차 5부제 자율 시행, 석유 사용량 절감 계획 제출 등 민간기업들의 자발적인 에너지 절약 참여 유도입니다. 승용차 5부제의 경우 공공 분야 시행 이후 삼성, SK, 현대차, 포스코, 롯데, 한화, HD현대, GS, CJ 등 대부분의 대기업집단과 KB, 신한, 하나, 우리, NH농협 등 5대 금융지주사를 비록한 금융사들도 동참하고 있습니다.
 
대한상공회의소, 한국경영자총연합회, 한국무역협회 등 경제단체를 비롯해 오리온, 셀트리온, 삼천리 등 중견기업과 한양대, 경남대 등 사립대학들도 승용차 5부제 대열에 합류했습니다. 5부제 자율 참여 요청 열흘 만인 지난 3일 기준으로 보면, 총 50여개의 민간기업 및 경제단체 등이 힘을 보태는 상황입니다.
 
8일 자정부터 시행하는 공공 2부제, 공영주차장 5부제에 따라 더 확산될 것으로 보입니다. 시멘트, 정유, 석유화학 등 에너지 다소비 업종들도 사실상 '비상체제'에 돌입했습니다. 이들 50개 기업은 '석유 사용량을 3.3% 줄이겠다'는 계획을 정부에 제출한 상태입니다. 이는 전년과 비교해 약 13만석유환산톤(toe) 절감을 의미합니다.
 
원자력 발전소 1기를 약 한 달간 가동해야 생산할 수 있는 양과 맞먹는 규모입니다. 이번 대기업의 석유 사용량 절감 선언은 전체 민간 영역의 절약 신호탄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호현 기후에너지환경부 2차관이 7일 서울 종로구 종묘공영주차장을 찾아 공영주차장 승용차 5부제 시행 준비 상황을 점검하고 있다. (사진=기후에너지환경부)
 
'제3차 오일쇼크' 준하는 복합 위기
 
전문가들은 단순한 유가 상승을 넘어 원유 수송 차질과 공급망 붕괴, 산업 생산 위축까지 겹치면서 '제3차 오일쇼크'에 준하는 복합 위기라는 평가가 지배적입니다.
 
국회 긴급 토론회를 통해 발표한 석광훈 에너지전환포럼 전문위원의 분석을 보면, 호르무즈 봉쇄로 인한 석유 공급 충격은 두 차례 오일쇼크(1973년 1차 쇼크 430만배럴·1979년 2차 쇼크 560만배럴)의 합계와 동일한 것으로 분석했습니다. 즉, 공급 지장 규모가 1110만배럴에 달한다는 얘기입니다. 
 
액화천연가스(LNG) 공급 충격은 약 8700만톤으로 추산하는 등 우크라이나 전쟁 당시(4000만톤)의 2배 이상이라고 경고했습니다. 7일 기준 국내 휘발유 가격은 리터당 1952.11원으로 전년보다 22.2% 폭등하는 등 갈수록 민생경제를 압박하는 상황입니다. 경윳값은 리터당 1849.52원으로 18.4% 급등했습니다.
 
서정석 한양대 겸임교수는 "'에너지 트릴레마(안보·접근성·지속가능성)' 관점에서 한국의 위기 상황을 진단했습니다. 서 교수는 "동일한 GDP(1억달러)를 생산할 때 한국은 경쟁국 대비 재생에너지 비중이 턱없이 낮고 막대한 수입 화석연료에 의존해야만 하는 구조다. 이러한 고비용·저효율의 취약성 탓에 글로벌 에너지 트릴레마 지표에서 최하위권"이라고 말했습니다.
 
지난 2일 서울 서초구 경부고속도로 부산방향 만남의 광장 주유소에서 한 시민이 주유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요금 정상화해야…에너지 절약 저해 구조"
 
석광훈 전문위원은 "거대한 공급 충격으로 인해 당장 오는 6월부터 국내 LNG 가격이 걷잡을 수 없이 폭등할 가능성이 크다"며 "현재 국내 석유 소비의 66%를 수송 부문이 차지하고 있는 만큼, 수송 부문의 대대적인 소비 감축이 필수적이다. 석유 가격이 본연의 수요 관리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도록 정상화해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번 위기가 고착화된 원인 중 하나로 '가격 신호의 기능 상실'도 지목합니다. 그동안 정부가 전기 요금을 억제하는 등 난방유(등유)보다 전기가 더 저렴해지는 역전 현상을 꼬집고 있는 겁니다.
 
석 위원은 200조원을 넘어선 한전 부채와 가스공사의 미수금을 언급하며 이러한 요금 왜곡은 국민과 기업의 자발적인 에너지 절약을 저해하고 국가 전체의 에너지 안보를 취약하게 만드는 핵심 기제로 작동한 점을 지적했습니다.
 
단기 과제로는 "석유 가격이 아닌 '사람'에 대한 지원으로 전환해야 한다"며 최고가격제 지원은 재난지원금으로 전환(수요 관리, 대중교통비 지원)하고 화물차 유가보조금을 월 고정 부담경감 크레딧으로 전환할 것을 제안했습니다. 또 히트펌프 지원 확대, 수상 태양광 확대(범국가적 컨소시엄 구성), VPP사업자들의 태양광 친화형 혁신요금제의 진입을 허용(전기차 등)과 중기 과제로는 에너지 네트워크 산업에 대한 구조 개혁을 제시했습니다. 
 
철도·송전·가스관 망관리 사업자와 서비스 공급자 분리, 서비스 판매 경쟁 도입을 통한 탈탄소화, 경쟁력 개선(OECD 보편 모델)이 필요하다"며 "전력·난방·철도물류 서비스는 혁신사업자들의 혁신요금제를 통한 경쟁이 필요하고 네트워크 인프라는 중립적인 제3기관 또는 공기업이 관리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에너지시민연대 측은 성명을 통해 "비상 시기에는 비상 대책이 필요하다"며 "공공부문 승용차 2부제 시행에 맞춰 지하철, 버스 등 대중교통 운행을 확대하고 대중교통을 무료로 전환해 에너지 위기 극복에 시민사회도 적극 동참할 수 있는 여건을 강화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냈습니다.
 
7일 서울 광화문 사거리에 직장인들이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사진=뉴시스)
 
세종=이규하 기자 judi@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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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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