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종용 기자] 금융당국이 생산적 금융 확대를 위해 금융권 자본규제 완화를 추진하고 있지만 정부 정책 사업을 규제 특례 우선 대상으로 삼고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당국 주문에 따라 기업대출을 적극적으로 늘리고 있는 은행들은 위험가중자산(RWA) 증가 압박이 커지고 있는데요. 정책 목적 자금에 국한된 제한적 자본완화가 아니라 보다 직접적인 기업대출 위험가중치 완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은행권 규제 특례 해석 혼란
23일 금융권에 따르면 시중은행들은 당국이 내놓은 자본규제 합리화 방안을 두고 위험가중치(RW) 산정 해석에 분주한 모습입니다.
앞서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최근 은행권 자본규제 합리화 관련 신규 과제로 운영 리스크 손실 인식 합리화, 구조적 외환포지션 승인 대상 확대, 내부등급법상 신용평가모형 승인 등을 제시했습니다. 당국은 우선 비상장 주식에 적용되는 위험가중치를 기존 400%에서 250%로 하향했습니다. 정부가 법률 또는 정책 발표를 통해 추진하고, 운영 현황을 점검하는 사업에 대해 RW 100%를 적용하고, 은행권이 주택담보대출을 신규 취급할 때 적용하는 내부등급법 RW 하한을 15%에서 20%로 상향한 것입니다.
다만 이 같은 대책이 대출 RW 자체를 낮추는 구조 개편이라기보다는 정책 목적의 주식·펀드 투자에 한해 특례를 적용하는 제한적 완화에 가깝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은행 입장에서 자본 부담을 가장 크게 키우는 것은 중소기업·혁신기업 여신에 대한 RW인데, 투자 익스포저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체감 효과는 상대적으로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이번 자본규제 완화가 생산적금융 확대라는 정책 연장선에서 나온 한계를 보인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입니다.
당국은 정책목적 펀드 투자 시 RW 100% 특례 요건으로 △특정 경제 분야 지원 △정부·정책금융기관의 일정 수준 이상 보조·투자 △금융당국의 감독 및 정책적 제한 사항 포함 등을 제시했습니다. 보험업권의 규제 완화 특례 대상이 되는 것도 △법령 또는 정책으로 발표된 사업 △정부·정책금융기관 보조 △정부·공공기관의 감독 등 정책 프로그랩입니다.
당국이 금융권에 생산적 금융에 동참해 달라는 메시지를 전달한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닙니다. 대통령까지 나서서 '손쉬운 이자장사'라는 표현을 써가며 은행들의 자본이 부동산담보대출 등에 쏠리는 현상을 비판했고, 이러한 자금이 기업들로 흘러 수익을 낼 수 있도록 선순환을 내야 한다는 메시지가 꾸준히 나왔습니다.
은행권 한 관계자는 "국민성장펀드를 통한 투자 건의 경우 정책 특례로 인정받지 못하면 일반 '비상장주식 투자'로 분류돼 최대 400%에 달하는 위험가중치가 적용될 수 있다"며 "정책금융기관이 참여하지 않고 있다거나 시리즈로 묶인 기존 펀드 투자들이 정책 특례로 인정받을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고 말했습니다.
이억원 금융위원장이 지난 16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개최한 제5차 생산적 금융 대전환 회의에서 은행, 보험사 등과 생산적 금융을 위한 은행·보험 자본규제 합리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실질적 기업대출 규제 완화 필요"
당국이 자본규제 합리화 방안 중 운영 리스크 산출 방식 조정의 경우 은행권의 과징금, 보상금 등 손실 사건에 대한 자본 부담을 덜어주는 내용입니다. 기존에는 은행이 과징금 등 제재를 받을 경우 해당 손실을 최대 10년간 RWA에 반영해야 했지만, 이를 3년으로 단축했습니다.
당국은 이번 조치를 통해 은행권의 자본 부담을 줄이고, 기업대출 등 생산적 분야로 자금이 흘러가도록 유도하겠다는 구상입니다. 다만 운영 리스크 손실 인식 제외는 금감원장의 최종 승인을 받아야 합니다. 제도 변경만으로 자동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감독당국이 개별 사안별로 판단하는 방식입니다. 은행권 다른 관계자는 "결국 금감원의 재량에 달려 있는 셈"이라며 "생산적 금융 확대를 위해 감독권을 행사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본다"고 꼬집었습니다.
지난해 말 기준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은행의 RWA는 1010조6973억원으로 집계됐습니다. 전년 대비 1.5% 늘며 연간 기준 처음으로 1000조원을 넘어섰습니다. 은행권 자산 규모 확대와 함께 위험가중치가 적용되는 여신이 늘어나면서 전체 RWA가 증가한 것으로 풀이됩니다.
RWA는 은행이 보유한 자산의 유형별로 위험에 따른 가중치를 부여한 것으로, 보통주자본비율(CET1)을 계산할 때 분모 부분에 들어갑니다. 분모는 보통주 발행으로 조달한 자본과 이익잉여금을 합한 보통주자본입니다. 자본 부담 비율 측면에서 은행들이 정책 특례로 인정받지 못할 경우 자본 부담은 더욱 커질 수 있습니다.
현시점 가장 크게 작용하는 변수는 환율입니다. 원·달러 환율이 1500원선을 넘나드는 등 고환율 기조가 이어지면서 외화자산의 원화 환산 규모가 확대되고, 이에 따라 RWA 증가 압력도 함께 커지고 있습니다. 이는 곧 CET1 하락 요인으로 이어집니다.
국내 주요 금융지주의 CET1 비율은 지난해 말 기준 KB금융 13.79%, 하나금융 13.37%, 신한금융 13.33%, 우리금융 12.9%으로 대부분 13% 내외에서 관리되고 있습니다. 금융당국 권고치인 12%를 웃도는 수준이지만, 주주환원 확대를 위해 13% 이상을 목표로 관리하는 점을 감안하면 환율 상승에 따른 자본비율 부담이 커질 경우 추가적인 위험자산 확대는 쉽지 않은 환경입니다.
금융권 관계자는 "생산적 금융 확대와 이를 위한 규제 완화 기조는 반길만 하다"면서도 "정책 목적의 투자 건을 중심으로 자본규제를 완화해 기업대출 여력을 키우는 우회적 방법이 아니라 직접 대출에 대한 규제 완화를 전향적으로 검토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서울 시내 한 은행 대출 업무 창구. (사진=뉴시스)
이종용 기자 yong@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