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기철기자] 애플사를 상대로 한 삼성전자의 특허권 침해소송이 인텔사로까지 번질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삼성전자가 인텔을 제외하고 애플만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배경에 궁금증이 생기고 있다.
19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삼성전자와 애플사의 2차 변론준비기일. 공방의 핵심은 인텔이 삼성이 특허권을 가진 핸드폰 칩을 만들어 팔 수 있는 실시권을 가졌는지 여부였다.
실시권은 대가를 지불하고 다른 사람의 특허기술을 이용해 제품을 제조, 판매할 수 있는 권리다.
삼성전자는 애플이 사용한 휴대폰 칩은 인피니아를 인수한 인텔이 제조한 제품인데, 그 제품에 들어간 삼성전자의 특허기술은 사용기간이 이미 끝났다는 것이다. 즉 특허사용에 대한 계약기간이 끝난 후에 만든 휴대폰 칩은 삼성전자의 특허를 침해했다는 이야기다.
실제로 이날 재판과정에서는 삼성과 인텔 간의 계약은 지난 2009년에 끝났다는 사실이 제시됐다.
삼성측의 주장대로라면 최소한 2010년 이후에 애플이 사용한 휴대폰 칩은 삼성의 특허를 침해했을 가능성이 커지는 것이다.
하지만 애플사는 인텔이 제조한 휴대폰 칩에 사용된 특허기술은 정상적인 계약을 통해 실시권을 보유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재판이 진행된 이후 애플은 아직도 인텔의 정확한 입장을 듣지 못한 상태다. 즉 정상적인 실시권을 가진 휴대폰 칩을 판매한 것인지, 아닌지에 대해 인텔이 명료한 입장을 못밝히고 있는 것이다.
만약 애플의 주장대로 인텔사가 실시권을 가지고 있다면 애플은 특허권침해 논란에서 한 발 물러서게 된다. 정당한 권리자가 만든 제품을 이용해 상품을 제조, 판매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텔에게 정당한 실시권이 없다면 애플은 굉장히 곤란한 상황에 봉착하게 된다.
◇실시권 없다면 인텔, 애플 모두 특허권침해자
우선 국내 특허법은 특허권을 침해해서 만든 제품을 이용해 새로운 제품을 생산, 판매하는 경우에는 두 사업자 모두 특허권을 침해한 것으로 본다.
특허전문가들은 이 경우 사전 공모가 있었는지에 따라 공동책임을 질 지 여부가 문제될 뿐 서로 '독립적인 침해자'라고 설명하고 있다.
또 설령 특허권을 침해해 생산된 제품을 이용한 사업자가 그 사실을 몰랐더라도 과실이 없었다는 사실을 입증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따라서 이번 케이스에 적용해보면 삼성은 휴대폰 칩을 만든 인텔을 상대로도 소송을 낼 수 있고, 인텔이 제조한 휴대폰 칩을 내장한 아이폰을 만든 애플을 상대로도 소송을 낼 수 있게 된다.
그런데 삼성은 인텔을 제껴놓고 애플만 상대로 소송을 낸 것이다.
인텔에게 실시권이 없다고 주장하는 삼성측에 따르면 1차적인 특허권 침해자는 인텔이다. 그렇다면 삼성은 왜 인텔을 제외해놓고 애플만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을까.
특허분쟁 전문가들은 이를 경제적, 소송적 차원의 '전략적 선택'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특허분쟁 전문가인 한 미국변호사는 "인텔은 외국회사 중에서 삼성의 핸드폰 칩을 생산할 능력이 있는 가장 큰 제조사로 알려져 있다"며 "오랫동안 좋은 관계를 이어 온 인텔 같은 파트너와 등을 돌리게 된다면 삼성이 입을 경제적 타격이 상당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변호사는 또 "일단 소송에 휘말리게 되면 제품 판매율은 떨어지기 마련"이라며 "스마트폰 판매율 1, 2위를 다투는 두 회사로서는 제조사 보다는 직접 시장에서 맞붙는 라이벌을 겨냥하는 게 훨씬 효율적"이라고 분석했다.
◇제조사 보다 경쟁사 겨냥하는 게 효율적
또 다른 미국변호사도 "애플이 가처분신청이 비교적 잘 받아들여지는 독일을 선택해 삼성 갤럭시탭 10.1에 대한 판매금지 가처분신청을 낸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말했다.
중견 로펌에서 특허전문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는 한 한국변호사는 "애플로부터 세계 여러 나라에서 한꺼번에 소송을 당한 만큼, 삼성으로서도 이의신청 등 수세적 방어보다는 강력한 역공이 필요했을 것"이라며 삼성이 애플을 선택해 제기한 이번 소송에 대해 의미를 부여했다.
그는 "통신기술에 대한 특허소송이 비교적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승소할 경우 경쟁사에 대한 도덕적 비난 등 여론몰이는 물론, 다른 나라에서 진행되고 있는 소송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런 가운데 업계에서는 삼성도 다음 달 쯤 출시가 예상되는 애플 아이폰의 차기작에 대해 한국이나 독일 법원에 판매금지 가처분신청을 낼 가능성이 없지 않다고 내다보고 있다.
뉴스토마토 최기철 기자 lawch@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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