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권순욱·김미애 기자] ELW 부당거래 사건은 두 달에 걸친 준비기일을 거쳐 실제 공판으로 넘어오면서 본격적인 공방이 시작됐다.
법정은 한치의 물러섬이 없는 검찰과 변호인의 날카로운 신경전과 핵심 쟁점을 둘러싼 팽팽한 공방으로 뜨거웠다.
◇ 검찰 공격, 핵심은 '속도'
이번 사건에 적용된 법률은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제178조 제1항 제1호다.
해당 규정에는 '부정한 수단, 계획 또는 기교를 사용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고, 이를 어길 경우엔 제443조에 따라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되어 있다.
기소된 12개 증권사 대표이사들에게는 예민한 부분이다.
검찰이 '부정한 수단, 계획, 기교'로 보고 있는 것은 크게 4가지다. 알고리즘 매매프로그램 제공, 전용선 제공, 가원장 체크 생략, 시세정보 우선 제공 등이다.
알고리즘 매매란 전산시스템에 설정한 목표가격, 수량, 시간 등의 여러 매매조건을 입력해놓으면 전산시스템에 의해 계산이 이루어지고 자동적으로 매매가 이뤄지는 거래를 말한다.
검찰 주장의 핵심은 증권사가 스캘퍼에게 이런 편의를 제공해 시장점유율을 끌어올리고, 수수료 수입을 챙겼다는 것이다.
검찰 주장 |
쟁점 |
변호인 주장 |
알고리즘 매매프로그램을 통해서 LP(유동성 공급자) 보다 먼저 매도를 할 수 있었고, 수익을 올릴 수 있었다. 속도에 뒤지는 일반투자가는 제때에 매도를 하지 못해 overnight(하루 넘기는 것)을 하게 되고, 시간이 흐름에 따라 가치가 자동으로 내려가 손실을 입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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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리즘 매매프로그램 제공 |
알고리즘 매매는 일반적인 프로그램 매매와 동일하다. 알고리즘 매매가 위법이라면 프로그램 매매를 하는 기관투자가, 외국인도 처벌해야 한다. 실제로 스캘퍼의 매도 때문에 일반투자가가 overnight을 하는 것은 아니다. ELW매매에서는 매도하고 싶어도 매도하지 못하는 경우는 거의 없고, 투자자의 판단에 따라 overnight을 하고 있다. |
일반투자자는 신호등이 겹겹이 있는 일반 국도를 달린다면, 스캘퍼는 고속도로를 달리는 셈이다 |
전용선 제공 |
VIP고객에게는 보다 빠른 속도의 전용선을 제공하는 것이 국제적인 추세다. 일반투자가도 원할 경우 설치할 수 있으면 된다. |
가원장을 체크하는 것은 속도가 중요한 매매에서 일종의 '장애물'인데 스캘퍼에게는 장애물을 제거해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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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원장체크 생략 |
가원장 체크를 생략한 항목은 ELW 매매와 상관이 없는 부분에 한정된 것이다. 이론적으로는 검찰 이야기가 맞는지 몰라도 실제로는 가원장 체크 생략은 매매속도와 상관이 없다. |
시세정보를 일반투자자에 비해 먼저 알게 하는 것은 시험문제를 미리 알려주는 것과 마찬가지다 |
시세정보 우선제공 |
시세정보 제공이 먼저 이루어지는 경우는 실제로는 0.02초 정도에 불과하다. 이런 속도 차이 때문에 일반투자자가 손실을 입었다고 할 수 없다 |
이처럼 검찰이 '부정한 수단 혹은 기교'로 보고 있는 4가지를 관통하는 핵심은 '속도'다.
즉, 검찰은 스캘퍼들에게 제공된 편의가 모두 매매에 불편한 장애물을 제거하거나 고속도로를 깔아준 것이고, 이처럼 빠른 속도 때문에 '스캘퍼는 항상이익, 일반투자가는 항상손실'이라는 결과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변호인들은 ELW 매매에 있어서 관건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성'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 변호인단 "손실여부 관건은 '속도' 아닌 '방향성'"
변호인 측은 먼저 검찰이 주장하듯이 '일반투자자들이 스캘퍼 때문에 손실을 입었는가'를 집중적으로 파고들고 있다.
이와 관련해 7일 열린 대신증권 노정남 사장에 대한 재판에서 김앤장의 백창훈 변호사는 대신증권 매매 통계를 제시하며 "ELW 매매에 있어서 일반투자자와 스캘퍼와 실제로 경쟁하는 부분은 LP가 호가를 변경하기 직전의 아주 미세한 부분에 불과하다"며 "스캘퍼 때문에 일반투자가가 주문 체결이 안된 경우는 2010년 12월에서 2011년 2월까지 3개월 간 통계를 보면 0.008%에 불과하다"고 반박했다.
이날 변호인 측이 제시한 통계를 보면 3개월 간 일반투자자의 매매 건수는 69만7724건이었고, 이 가운데 매매체결이 안된 경우는 56건이었다. 즉 오버나잇(overnight)이 1만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변호인 측은 특히 "알고리즘 매매 때문에 일반투자자가 손실을 입었다면 전용선 도입 이후에 손실이 더 커져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실제 통계를 보면 전용선 도입 이전까지 일반투자자의 손실이 가파르게 증가하다가, 그 이후에는 오히려 완만해졌다"고 주장하며 통계자료를 제시하기도 했다.
결론적으로 변호인 측은 "일반투자자의 손실은 스캘퍼 때문이 아니라 방향성 예측이 잘못되었기 때문이고, 대박을 노린 투기적 투자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 근거로 금감원 자료를 제시했는데, 이 자료에 따르면 일반투자자의 평균 투자금액은 400만~500만원으로 복권 사듯이 투자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투자금액이 작아서 주로 권리행사 가능성이 낮은 저가 ELW를 주로 투자하고 있고, 투기적 성향이 강하다고 금감원이 지적한 내용을 제시했다.
실제로 ELW 풋을 사놓고 서울역과 고속버스터미널에 사제폭탄을 터트린 사례가 제시되기도 했다.
변호인 측은 특히 외국에서 폭넓게 허용하고 있는 DMA(Direct Market Access)를 들어 스캘퍼에게 제공한 전용선은 국제적 추세라는 점도 강조했다.
◇ "ELW투자 핵심은 '시간가치'"..검찰 재반격
'속도'로 시작된 쟁점은 '방향성'을 거쳐 '시간가치'로 옮겨갔다.
먼저 ELW는 옵션과 마찬가지로 시간이 갈수록 가치가 떨어진다. 시간이 흐를수록 가치가 떨어져서 만기가 도래하면 휴지조각이 되는 것이다.
7일 열린 재판에서 검찰은 "기관이든, 스캘퍼든, 일반투자자든 시간가치를 보고 투자한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더 나아가 "검찰은 매도에 더 초점을 둔다. 이익실현 과정이기 때문이다. LP가 매수해주는 물량을 스캘퍼가 먼저 매도하면 나머지는 잔량이 된다. 즉 손실이 된다"고 말했다.
overnight으로 하루가 지나면 자동으로 시간가치 감소에 따라 보유하고 있는 ELW 가격이 내려가고, 이것 자체가 바로 일반투자자들에게는 손실이고, 그 손실은 스캘퍼가 전용선을 통한 알고리즘매매로 일반투자자에 비해 더 빠르게 매도했기 때문이라는 논리다.
한발 더 나아가 검찰은 쟁점을 좀더 구체화하고 있다.
이날 재판에서 검찰은 "증권사 외부의 전용선은 문제삼지 않는다. 증권사 내부에 전용선을 탑재하는 것이 문제"라고 밝혔다.
기소된 12개 증권사는 증권사 내부에 전용선을 마련해 스캘퍼들에게 편의를 제공했고, 검찰은 이 부분을 문제삼고 있다는 얘기다.
검찰은 '속도'를 문제삼는 것에 대해서도 그 이유를 분명히 했다. 검찰은 "속도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매매계약이 체결되느냐 아니냐가 핵심"이라며 "속도 차이가 매매를 좌우하고 있어 공정하지 못하다"고 주장했다.
핵심 쟁점은 이런 검찰과 변호인의 공방을 통해 어느 정도 정리가 된 상태다. 하지만 매매시스템과 관련된 기술적인 부분에서는 넘어야 할 산이 또 있다.
법률 등 관련 규정의 해석 문제와 금융감독당국의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