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기철기자] #A씨는 보험설계사로, 같은 교회에 다니는 B변호사의 부동산 투자 제안에 귀가 솔깃해졌다. B변호사는 "강원·경기지역에 200만평 크기의 골프장과 스키장, 납골공원을 설립 중인데 자금이 부족하다. 사업이 끝나면 직원도 수백명 채용 할 텐데 당신이 보험을 체결하도록 도와주겠다"며 투자를 제안했다. A씨는 같은 교인으로 변호사인 B씨의 말에 의심 없이 1억8000만원을 투자했다. 그러나 B변호사의 말은 모두 거짓이었고, B변호사 자신도 신용불량자였다. 사기혐의로 기소된 B변호사는 지난 9월 징역 1년6월을 선고받았다.
#C변호사는 지난 4월 자신의 의뢰인에게 2주 안에 50억원, 45일 내에 800억원을 대출받도록 알선해 주겠다며 돈을 요구했다. C변호사는 의뢰인이 머뭇거리자 "내가 모 은행 법률자문변호사를 맡고 있으니 걱정 마라"며 안심시켰다. 그러나 전혀 그럴 능력이 없는 C변호사는 의뢰인으로부터 자금조달 용역계약금으로 1억원을 받은 뒤 잠적해 숨어 지내다가 검찰에 붙잡혀 기소됐다.
변호사들의 비리범죄가 도를 넘어서고 있다. 15일 대한변협에 따르면, 각종 범죄에 연루돼 수사를 받고 있는 변호사들을 대상으로 검찰이 변협에 징계개시를 신청한 건 수가 해마다 급격히 늘고 있다.
◇검찰의 변호사 징계개시 신청 건수 급증
최근 4년을 기준으로 전국 지방검찰청에서 수사 중인 변호사를 대상으로 징계개시를 신청한 건수는 2008년 19건에서 2009년 20건, 2010년 40건으로 급증하고 있으며, 올 10월말 현재 40건으로 지난해 통계수치를 넘어설 기세다.
문제는 변호사들의 비리사건이 점차 대담해지고 범죄액수도 커졌다는 점이다.
대한변협 관계자는 "최근 변호사들의 공소사실을 보면 대출알선 사기나 분양알선 사기 등 대규모 사기사건이 많다"며 "자신들을 은행이나 건설사의 자문변호사로 소개하며 범행에 나서고 있다”고 지적했다. 법률을 자문하는 변호사이니만큼 충분히 힘을 써줄 것으로 쉽게 믿을 수 있다는 점을 이용한 것이다.
이 관계자는 또 "물론 일부 변호사들의 범죄이지만, 브로커를 고용해 사건을 수임하거나 불성실 변론 등으로 진정을 당하거나 고소를 당하는 일은 이제 얘깃거리도 안되고 있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변호사들의 이같은 비리행위는 계속적인 경기침체와 함께 급속히 늘어난 변호사 수와 필연적 관계가 있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한달 운영비 2000만원 마련 쉽지 않아
변호사들에 따르면, 개인 사무실을 운영하는 변호사의 경우 임대료와 직원 월급 등을 포함해 한달 사무실 비용이 2000~3000만원 정도 드는데 이것이 쉽지 않다는 지적이다. 심지어 사무실 임대료도 내지 못해 사무실을 닫고 재택근무를 하는 변호사도 없지 않다는 것은 변호사 업계에서는 이미 공공연한 사실이다.
전 대한변협 임원으로 현재 한 로펌에서 재직 중인 모 변호사는 "사무실 경영은 어렵고, 직원 월급은 고사하고 자신의 생활비도 제대로 갖고 가지 못하는 변호사들이 적지 않다"며 "경영난에 쪼들리다 보면 어느 변호사나 한번 쯤 범죄의 유혹을 느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서울지방변호사회 임원 출신의 한 변호사도 "변호사들이 기본적으로 머리가 좋고 법을 잘 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돈을 불법으로 융통하더라도 언제든 되돌릴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며 "이렇게 안일하게 생각하다가 범죄의 수렁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설명했다.
보다 본질적인 문제를 지적하는 견해도 있다.
특히 여러 청년변호사들은 "청년변호사들의 경우 사법연수원을 수료하면서부터 이미 마이너스통장을 갖고 업계에 뛰어드는 사례가 적지 않다"며 "이런 상황이 개업 5~10년차까지 이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2억원 정도의 마이너스 통장을 가지고 있는 변호사들을 쉽게 찾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사법연수원 수료 때부터 마이너스 통장
한상인 대한변협 이사는 비리 변호사의 증가와 관련, "일부 변호사들의 문제지만 전체 변호사들의 문제이기도 하다"며 "변호사 전체의 위상과 신뢰가 추락하는 상황인 만큼 엄정한 조사와 징계를 통해 국민의 신뢰를 회복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개인의 품성과 성향의 문제이지만 내년부터 배출되는 로스쿨 출신 변호사들에 대해서도 6개월의 의무연수교육기간 동안 변호사법 등 법조윤리에 대한 강도 높은 교육을 집중적으로 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 이사는 이어 "출로가 막힌 제한된 시장에서 경쟁이 과열된 원인도 있는 만큼 법률시장 확대에 대한 정부의 관심과 대책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