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기철기자] 인감증명서도 형법상 재물에 해당되므로 소지인을 속여 가로채면 사기죄에 해당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제2부(주심 양창수 대법관)는 20일 아파트 분양권을 이중 매도하기 위해 명의인의 가족을 속여 인감증명서를 받아 빼돌린 혐의(사기) 등으로 기소된 정모씨(35·인테리어업)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유죄취지로 사건을 서울중앙지법으로 되돌려 보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먼저 판결문에서 "인감증명서는 인감과 함께 소지함으로써 인감 자체의 동일성을 증명함과 동시에 거래행위자의 동일성과 거래행위가 행위자의 의사에 의한 것임을 확인하는 자료"라며 "이는 개인의 권리의무에 관계되는 일에 사용되는 등 일반인의 거래상 극히 중요한 기능을 가진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따라서 그 문서는 다른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재산적 가치를 가지는 것이어서 형법상의 '재물'에 해당하고, 이는 그 내용 중에 재물이나 재산상 이익의 처분에 관한 사항이 포함되지 않았다고 해서 달리 볼 것이 아니고 인감증명서를 그 소지인을 기망해 편취하는 것은 그 소지인에 대한 관계에서 사기죄가 성립한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이어 "피고인은 피해자의 재개발아파트 수분양권을 이중으로 매도할 목적으로 피해자 명의의 인감증명서를 기망으로 취득한 것이므로 피고인의 행위는 재물의 편취에 의한 사기죄가 성립하는 데도 이와 달리 보고 무죄를 선고한 원심은 재물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위법이 있다"고 덧붙였다.
정씨는 2003년 2월 유모씨로부터 매입한 재개발지역 아파트 분양권을 전매했다가 이를 다시 다른 사람에게 팔기 위해 유씨의 가족들을 속여 유씨 명의의 인감증명서 3장을 받아 임의로 사용한 혐의로 기소됐다.
정씨는 이 외에도 2002~2009년 "철거예정 건물 소유자에게 공급하는 아파트 특별분양권 등을 분양받게 해주겠다"고 하거나, 특별분양권을 이중매매하는 수법으로 약 12억여원을 받아 가로챈 혐의도 함께 받았다.
1심 재판부는 정씨의 두 혐의를 모두 유죄로 인정해 징역 5년을 선고했다. 그러나 2심재판부는 정씨의 다른 사기사건을 병합해 판단하면서 1심보다 무거운 징역 5년6월을 선고했으나 인감증명서를 재물로 볼 수 없다는 이유로 사기부분을 무죄로 판단했다. 이에 검사가 상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