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역 1조달러를 돌파했다. 축하할 일이다. 하지만 그 성장의 열매는 대기업이 독식하고 있다. 대기업들이 이뤄낸 성과라는 것도 분명하지만, 대기업들의 성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다른 많은 부분을 희생한 것도 사실이다. 이런 성장정책을 추구한 것은 이른바 '낙수효과(Trickle-down Effect)' 때문이다. 우리나라 경제가 개발도상국 단계에 있을 때는 낙수효과가 일리있었다. 수출기업의 성장은 투자를 늘렸고, 일자리를 늘리고, 소비를 늘리고, 세수를 늘렸다. 하지만 무역대국으로 성장한 오늘날 더 이상 낙수효과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 정부는 낙수효과를 전제로 대기업과 수출기업 중심의 경제정책을 고수했다. 그 결과 한국경제는 기형적인 구조가 심화되고 있다. 이에 고용과 투자, 소비, 세금 등 각 부문 별로 낙수효과가 얼마나 허구인지를 짚어보고, 바람직한 국민경제 방향을 모색한다. [편집자주]
[뉴스토마토 송종호기자] 최근 한국 경제는 양극화가 심화되고, 청년실업이 급증하며, 경제는 활력을 잃고 있다. 국민들의 주머니 사정은 더욱 열악해지고 내년도 경제성장은 올해보다 더 어두울 전망이다.
그런 가운데 우리나라는 통관기준으로 지난 5일 수출 5150억달러, 수입 4850억달러로 무역 1조달러를 기록했다. 세계에서 아홉번째로 달성한 쾌거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그늘은 더욱 짙어지고 있다.
정부는 매년 11월 30일에 열리는 '무역의 날'을 1조달러 국민보고 대회 형식을 갖추고자 기념일을 늦춰 12일에 행사를 개최했다.
◇ 대기업이 쌓아올린 '무역 1조 탑'..낙수효과는 실종
이명박 대통령은 12일 아침 라디오 연설을 통해 "1조 달러 달성이라는 놀라운 드라마는 대한민국 국민, 우리 모두가 주인공"이라며 "무역은 경제기적의 원동력이자 먹거리와 일자리의 원천이었다. 경제위기 때마다 우리를 다시 일어서게 한 힘이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현실은 양극화 심화와 수출혜택을 대기업 중심으로 가져가는 등 그늘도 짙어지고 있다. 수출이 잘되면 생산량이 늘고 경제가 성장하면서 고용도 창출된다는 낙수 효과(trickle down effect)는 이미 흘러간 옛노래가 되었고, 신화가 되었다. 국민들은 1조달러를 체감하지 못하는 것이다.
김태기 단국대 교수는 "과거 70, 80년대까지만 해도 기업이 수출하면, 자연스럽게 일자리가 늘어나고 소득과 소비가 증가해 성장이 이어지는 선순환구조가 유지됐다"면서도 "대기업이 수출로 성장에 기여하지만, 공장은 해외에 있어 우리 국민 일자리로 연결이 안되고, 이 과정에서 도태된 인력은 빈곤층으로 전락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뿐만 아니라 우리 경제의 무역의존도가 88%를 넘어서고 있는 것도 문제점으로 꼽힌다. 수출이 성장에 미치는 기여도는 60%가 넘는다. GDP의 무역의존도는 110.9%로 미국(31.3%) 일본(31.8%) 독일(95.3%)보다 높은 세계 1위다. 이같은 과도한 수출 의존도가 우리경제 구조를 대외 충격에 취약하게 만들고, 내수·투자의 부진이 지속되면서 낙수효과가 감소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더구나 현 정부가 출자총액제한제 폐지,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의 분리 완화, 지주회사제 완화 등 대대적으로 재벌 규제를 폐지 또는 완화했다. 고환율, 저금리, 감세 등 대기업에 유리한 정책이 추진되면서 재벌들이 수출 호조세에 힘입어 지난해 최대 실적을 올린 바 있다.
하지만 전체 기업의 99%를 넘는 중소기업들의 회복세는 미미하고, 일반 국민들도 경제회복을 체감하기 힘들다.
◇ 수출은 증가하지만..생산유발↓·고용↓·소비↓·투자↓
우선 낙수효과가 발생하려면 수출증가가 국내총생산(GDP)의 증가로 이어져야 한다. 하지만 이를 나타내는 생산유발 효과는 10년전 보다 떨어졌다. 1995년 2.017이던 수출 생산유발계수는 2009년 1.937로 감소했다.
이같은 원인을 전문가들은 수입 중간재에서 찾았다. 수입 중간재를 많이 사용하다 보니 역전현상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즉 1000원어치를 수출해 467원을 수입중간재 대금으로 주고나면 영업비용과 인건비도 건지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수출이 일자리 창출 등 내수를 함께 견인하지 못한 까닭도 크다. 2000~2008년 수출액은 2.5배 늘었으나 내수시장은 1.9배 성장에 머물렀고, 취업은 1.2배, 고용인원은 1.3배에 그쳤다. 결국 수출은 늘었는데 국내 시장에서 고용과 투자로 연결이 안된 것이다.
수출이 고용과 소비로 이어지는 선순환 효과도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수출이 10억원 늘었을 때 늘어나는 취업자 수는 9.4명(2008년 기준)으로, 2000년 15.3명에 견줘 40%넘게 줄었다.
이처럼 수출이 생산과 고용으로 연결되지 않고, 투자와 소비로 연결되는 선순환도 깨지면서 현 정부가 목놓아 기다리던 낙수효과는 없이 수출의존도만 높였다는 지적이다.
김태기 교수는 "수출을 하면서도 수송과 포장 등 여러가지 연관산업에서 고용을 창출 할 수 있는데, 대기업들이 자기 계열사로 이들 산업을 장악하면서, 중소기업으로 돌아갈 길이 별로 없다"고 비판했다.
이태환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도 "낙수효과가 약해졌다는 것은 제조업의 생산성이 높아지면서 나타나는 어쩔수 없는 측면이다. 생산성이 높아졌다는 것도 물건을 만드는 사람의 수요가 줄어든 것으로 고용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며 "선진국으로 가는데 발생하는 현상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도 이 수석연구원은 "수출에서 낙수효과로 없어진 상황을 수출 무용론으로 가기보다는 아직까지 생산성이 낮은 서비스업과 내수에 대한 고용창출 효과를 높이기 위한 정책 노력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김 교수도 "우선 고환율정책을 수정해야 한다"면서 "왜곡된 시장을 수정하고, 수출확대를 국가적 과제로 총결했던 과거의 정책방향에서 일자리 고용을 확대하는 정책 수립이 우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리나라 경제가 1960년대부터 시작된 경제개발정책에 의해 수출중심국가로 구조화된 것은 '거역할 수 없는 운명'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현 정부가 수출중심의 대기업을 지원하기 위해 추진한 '고환율정책'은 서민들의 주머니를 쥐어짜는 물가상승을 유발했고, 투자촉진을 통한 세수증대를 목표로 했던 '법인세 감면'은 국가재정만 악화시켰을 뿐 투자로 이어지지 않았다.
또한 이 과정에서 발생한 소득양극화는 수많은 서민들을 '금융기관 빚쟁이'로 내몰았고, 소득재분배 정책에 대한 무관심은 '쓰고 싶어도 쓸 돈이 없는' 내수기반 잠식을 야기하고 있다. 중소기업은 수출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후려치기'를 당하고 있고, 수출 1조달러 시대의 성장의 열매는 떡볶이 장사까지 나선 대기업 주머니로 고스란이 되돌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