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송종호기자] 무역 1조달러를 돌파했다. 축하할 일이다. 하지만 그 성장의 열매는 대기업이 독식하고 있다. 대기업들이 이뤄낸 성과라는 것도 분명하지만, 대기업들의 성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다른 많은 부분을 희생한 것도 사실이다. 이런 성장정책을 추구한 것은 이른바 '낙수효과(Trickle-down Effect)' 때문이다. 우리나라 경제가 개발도상국 단계에 있을 때는 낙수효과가 일리있었다. 수출기업의 성장은 투자를 늘렸고, 일자리를 늘리고, 소비를 늘리고, 세수를 늘렸다. 하지만 무역대국으로 성장한 오늘날 더 이상 낙수효과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 정부는 낙수효과를 전제로 대기업과 수출기업 중심의 경제정책을 고수했다. 그 결과 한국경제는 기형적인 구조가 심화되고 있다. 이에 고용과 투자, 소비, 세금 등 각 부문 별로 낙수효과가 얼마나 허구인지를 짚어보고, 바람직한 국민경제 방향을 모색한다. [편집자주]
지난해 국내 대기업의 잉여자금 내부유보율은 1200%. 사상 최고치였다.
2008년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친기업(Bsiness Friendly)정책이 강력히 추진되면서 기업이 요구하는 바에 대해 정부는 거의 다 수용했다. 더구나 현 정부는 과거 70~80년대 낙수효과(trickle down effect)에 집착해 수출드라이브 고환율 정책으로 일관했다. 그 결과 소수 대기업은 사상 최고치의 실적을 올렸지만 고용효과는 마이너스를 나타내고, 소득과 소비는 감소하는 등 국민경제는 최악의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치솟는 가계 빚에서 오는 이자부담은 늘어나는데, 물가는 계속 뛰다보니 실질소득은 줄어들고 있다. 2, 3분기 연속 성장률은 3%대에 머물러 경기는 악화일로다. 기업들이 투자를 해야 고용이 늘고, 소득이 생겨 소비를 하는데, 기업들은 투자에 인색하다.
세계에서 9번째 무역1조달러 국가가 됐다고 '자화자찬'하고 있지만 낙수효과가 발생할 수 있는 선순환 고리의 1차적 요인인 '투자'에서부터 고장이 나있다.
◇대기업 내부유보율 1200%..왜곡된 투자여건
지난 9월 기획재정부 국정감사에서 한나라당 이혜훈 의원은 지난해 국내 대기업의 잉여자금 내부유보율이 1200%에 달해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으나, 이러한 기업의 이윤이 투자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특히 10대 그룹 유보율은 외환위기 이후 꾸준히 상승해 2004년말 600%를 돌파한데 이어, 2007년 700%, 2008년 900%, 2009년에는 1000%를 넘어섰다. 대기업이 현금만 쌓아놓고 투자에 인색하다는 비판을 받는 이유다.
이에 대해 전경련은 "단순히 유보율이 높아졌다고 해서 기업이 투자를 하지 않는다는 식으로 결론내리는 것엔 문제가 있다"며 "우리나라 기업들은 사내유보금의 많은 부분을 운전자본과 유·무형자산에 투자하고 있다"고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임석민 한신대 교수는 "대기업이 유보율을 현금만을 쌓아두는게 아니라 토지를 구입하는 용도 등의 투자가 이뤄질 수 있지만 이 같은 투자는 경제전체로는 생산적인 투자가 아니다"고 잘라 말했다.
대기업의 '싹쓸이 전략'도 문제점으로 꼽힌다.
14일 한국은행과 중소기업중앙회,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영업이익률 차이는 지난 2001년 1.5%에서 2008년 1.8%로 늘어났다. 임금격차 역시 2001년 65.9%에서 2009년 68.5%로 증가한다.
20대 국내 대기업의 자산 규모는 2002년(373조3090억)과 비교해 지난해 (975조8110억원)161.4%증가했다. 계열사 역시 2002년의 514개에서 2010년 859개로 67.1% 증가했다.
명목 GDP대비 대기업 자산비중을 살펴보면 20대 기업이 83.2%를 차지한다. 4대 기업이 46.5%, 삼성그룹 하나만도 명목GDP에서 차지하는 자산은 19.7%에 이른다. 말 그대로 ‘재벌 공화국’이다.
김태기 단국대 교수는 "중소기업이 할 수 있는 모든 산업을 대기업이 가져가고 있다"며 "대기업들이 자녀들에게 몰아주기식으로 하다보니 모든 산업을 장악해 중소기업의 입지가 줄어들고 수익은 대기업에 다가져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 "투자 부족 국가 아니다"..문제는 투자의 과도한 쏠림현상
아울러 투자가 부족한게 아니라 투자의 쏠림현상이 문제라는 지적도 잇따른다.
<한국경제의 미필적 고의>의 저자 정대영 한국은행 인재개발원 교수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1960년대 이후 1997년 IMF금융위기 이전까지 과감한 외자 도입 정책과 파격적인 금융과 세제 지원 등으로 투자가 빠르게 증가했다. 1971년부터 1996년까지 25년 동안 실질(2005년 가격)기준 국내총생산(GDP)은 8.5배 늘어난 데 비해, 투자(건설 및 설비)는 19.6배 늘었다.
정대영 교수는 "현재 우리나라 GDP에서 차지하는 투자 비중이 미국, 독일, 일본의 현재 수준보다 많고, 1980년대 수준보다도 높다"며 "중국을 제외하고 세계최고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우리나라 GDP에서 투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1990년대 중반 36%(건설투자 22%, 설비투자 14%)에서 2000년대 후반 29%(건설투자 18%, 설비투자 11%)수준(명목 기준)으로 낮아졌다. 그러나 29%마저도 미국의 18~20%보다 높고 독일 18%, 일본 23%보다 높은 수치다.
정 교수는 "우리나라는 투자 부족국가가 아니다"며 "건설투자처럼 한쪽으로 치우진 투자가 문제"라고 비판했다. 그는 "과도하게 쏠림 현상이 있는 투자를 정상화시키고 대기업 위주의 투자가 중소기업으로 전이될 수 있도록 투자여건과 환경을 만드는게 급선무"라고 강조했다.
올해 3분기 국민총소득(GNI)만 봐도 기업들의 투자 흐름을 반영하는 설비 투자의 경우는 반도체 제조용 기계 등 기계류 투자의 부진으로 전 분기에 견줘 0.8% 감소로 돌아섰다. 반면 건설투자는 토목건설과 건물건설 등이 모두 늘어 1.8%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