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권순욱기자]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게 돌아간다. 냉정하게 바라보고 있으면 본말이 전도되어 있고, 책임 추궁의 소재도 잘못되어 있다.
더구나 헌법이 부여한 국회의원 불체포특권이 너무나 헌신짝 취급을 받는다. 그 역사적 맥락에 대한 고민은 결여되어 있다.
그리고 정두언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 부결을 마주하는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의 자세는 그야말로 포퓰리즘의 극치를 달리고 있다.
먼저 이번 사태의 책임소재부터 명확하게 하자.
11일 국회는 찬성 74표, 반대 156표, 기권 31표, 무효 10표로 정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을 부결시켰다. 민주당 의원들도 일부 반대표를 던졌다. 그러나 반대표가 무려 156표였다. 새누리당 의원 대다수가 체포동의안에 찬성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여론은 비판적으로 돌아갔다. 박근혜 비대위원장 시절 총선을 치르면서 대국민약속을 했는데, 이걸 처음부터 지키지 못했으니 국민들의 비판은 너무도 당연하다.
그러자 이한구 원내대표는 "입이 열개라도 할 말이 없다"며 체포동의안 부결에 대해 책임을 지고 원내지도부 총사퇴를 선언했다.
여기까지는 아주 정상적이다.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12일에는 새누리당이 주도적으로 체포동의안을 부결시켜 놓고선 민주당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발언이 튀어 나온다. 김영우 대변인은 "야당도 박지원 민주통합당 원내대표를 구하기 위해 전략적 반대표를 던진 것으로 분석된다"고 말했다.
그래서 뭐 어쩌란 말인가? 민주당이야 어쨌든 주요 책임은 새누리당에게 있지 않은가?
사퇴를 선언한 이한구 원내대표는 "탈당하고 구속수사를 받으라"고 정 의원을 압박했다.
아니 대체 이건 또 무슨 소린가? 체포동의안을 부결시킨게 정 의원인가? 정 의원이야 당사자로서 자신을 변호하고 부결시켜달라고 요청한 것밖에는 없다. 체포동의안을 부결시킨 건 새누리당 의원들이지 정 의원이 아니다. 그런데 왜 엄하게 정 의원을 향해 탈당 운운하고, 구속수사 받으라는 망발을 하는 것일까?
이어 13일에는 대책을 논의하기 위해 의원총회를 개최했다. 이날 의총에 참석한 박근혜 의원은 "정 의원 체포동의안이 당연히 통과가 됐어야 하는데 반대로 결과가 나왔다"며 사과의 의사를 밝혔다.
그리고 정 의원을 향해서는 "법의 논리를 따지기 보다는 당당하게 맞서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정 의원은 대체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가? 검찰 수사도 성실히 받고 있는데, 정 의원 말마따나 불체포특권을 포기할 방법도 없는데 뭘 어쩌라는 것인가?
정작 박 의원은 체포동의안을 처리하는 본회의에 참석조차 하지 않았다. 국회의원으로서 투표권도 이행하지 않은 사람이 표결에 참석한 새누리당 국회의원들과 그저 자신을 변론했을 뿐인 정 의원을 향해 책임을 추궁하고 나서는 것은 적반하장이다.
오히려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박 의원 자신을 먼저 질책하고, 반성하는 게 순서에 맞다.
더 이상한 것은 체포동의안 부결사태로 여론의 비판을 받자 정 의원의 자진 탈당이니 출당을 운운하는 모습이다. 이건 마녀사냥이다. 자신들이 저질러놓은 사태의 책임을 정두언이라는 한 개인에게 몽땅 뒤집어 씌울려는 비겁한 태도다.
명확하게 하자. 체포동의안은 누가 부결시켰는가? 정두언이라는 한 개인인가? 새누리당이라는 조직인가? 부결 책임은 어디에 있는가? 표결에 참석하지도 않은 사람이 자신의 행태에 대해서는 반성하지 않으면서 타인의 행위에 대해 잘못됐다 운운하는 것이 도대체 말이 될까. 이런 마당에 정두언이라는 한 정치인을 향해 탈당이니 출당이니 운운하는 게 정상적인 정당의 행태라고 볼 수 있을까.
좀 더 본질적으로 따져보자. 국회의원 불체포특권은 역사적인 맥락이 있다. 아무런 이유없이 그저 주어진 특권이 아니다. 이 특권은 국회의원 개인을 위해 만들어진 특권도 아니다. 국민의 대표자인 국회의원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다.
불체포특권을 궁극적으로 포기하는 방법은 헌법을 개정하는 것이다. 불체포 특권은 헌법이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헌법을 개정하지 않는 이상 제도적으로 포기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새누리당이 정말로, 진심으로 불체포특권을 포기하고 싶다면 헌법 개정을 약속하는게 차라리 더 솔직하다. 그게 아니라면 하위법을 통해서 불체포특권이 적용되지 않는 세세한 규정을 만들어서 남용을 방지하는 장치를 만드는게 순리에 맞다.
그런데 더 본질적으로 들어가서 불체포특권을 없애는게 과연 맞는가? 그 부작용을 모르는 바 아니다. 그러나 명백한 범죄가 있더라도 형사소송법상 불구속 수사 원칙과 무죄추정의 원칙을 적용한다면 굳이 구속 수사의 필요성이 강력한 것은 아니다.
더구나 불체포특권에 예외가 없는 것도 아니다. 현행범은 회기중에도 불체포특권이 적용되지 않는다. 또한 회기중이 아닐 때도 불체포특권이 적용되지 않는다.
사례도 있다. 과거 정형근 전 의원과 이인제 의원은 국회가 열리지 않을 때 검찰에 체포될 위기에 처했었다. 국회의 동의도 필요하지 않았다. 검찰은 여러 차례 체포를 시도했지만 결국 당사자들의 강력한 저항으로 체포에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불체포특권이 적용되지 않았던 대표적인 사례였다.
마치 엄청난 개혁을 하는 것인냥 포장하기 바빠서 국민의 대표자에게 주어진 헌법상 권리를 헌신짝 취급하는 행태를 보노라면 포퓰리즘이 정말 무섭다는 생각이 든다. 국회의원들이 집단적으로 이성이 마비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불체포특권을 정말 제한하고 싶다면 국회의원들 스스로 가진 입법권을 행사해서 제도와 법 규정을 손질하면 된다. 지금 우리 눈앞에 벌어지는 행태처럼 시끄럽게 야단법석을 떨 일도 아니다.
마지막으로 하나 덧붙이자면, 여론의 비판에 직면한 새누리당을 보면서 고소한 웃음을 짓고 있는 민주통합당은 후안무치하거나 멍청해보이기까지 하다.
불체포특권의 전면적인 무장해제가 향후 어떤 파장을 가져올지 심사숙고를 한 것인지 의심이 들 지경이다. 정 의원의 체포동의안 부결에 몇 명의 민주당 의원들이 찬성했는지, 반대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정작 중요한 것은 17세기 영국 의회에서 불체포특권이 만들어진 역사적 맥락이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완전히 제거되었는지 여부다.
민주당은 검찰과 법원의 법집행과 판결의 공정성을 얼마나 신뢰하는지 묻고 싶다. 불체포특권이 해체된 이후 검찰의 막강한 법집행에 "정치탄압"이라는 뻔한 소리만 질러댈지도 모르는 민주당의 처량한 모습이 훤히 보이는데 말이다.
이미 원혜영 의원을 선거법 위반으로 기소하자 "정치탄압"이라는 뻔한 레파토리의 논평을 내놓은 걸 보면 검찰의 칼날 앞에 무기력하게 쓰러져 갈 모습이 보인다.
정두언이라는 한 정치인이 소위 '다구리'를 당하는 걸 지켜보며 웃는 그대들의 '오늘 웃음'이 '내일 눈물'로 바뀌는건 시간 문제일 뿐이다.
또한 누구도 민주통합당 그대들의 "정치탄압"이라는 비명에 귀기울여주지 않을 것이고….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 모두 이성을 되찾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