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동의 법률시장⑤)"허리띠 졸라매라" 생존경쟁 치열

전문팀 통째로 영입하는 인력스카우트 전쟁도 빈번

입력 : 2012-07-25 오후 5:32:20
[뉴스토마토 최기철기자] #올 초 A대형로펌에 취직한 한 새내기 변호사는 요즘 표정이 어둡다. 입사와 함께 작지만 방 하나를 혼자 썼으나 지금은 데면데면한 고참 변호사와 방을 함께 쓰게 됐기 때문이다. 법률시장 개방에 대한 대비로 소속 변호사들이 늘면서 사무실이 포화상태가 됐지만 새 건물을 얻어 나가기엔 로펌 사정이 빡빡한 상황이다.
 
#B대형로펌은 최근 중견 파트너들에 지원되던 업무용 차량을 줄이기로 했다. 종전에는 업무용 차량 한 대를 2~3명이 번갈아 가며 이용했지만 차량 한 대에 이용자가 4명까지 늘었다. 젊은 파트너들은 아예 자신이 차량을 직접 운전하거나 드물지만 택시를 이용하고 있다. 대표급 변호사는 파트너들을 대상으로 법률시장 개방에 대한 대비 등을 위해 불필요한 비용은 줄이자는 협조를 구했다.
 
법률시장 개방으로 외국로펌이 본격 상륙하면서 국내 로펌들이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다. 사무실의 경우 아직 1인 1실이 보편적이지만 늘어나는 변호사 수와 높아가는 로펌 운영비용 등을 충당하자면 긴축재정이 불가피하다는 얘기가 여기 저기서 나오고 있다.
 
앞의 A로펌의 변호사들도 "비용을 연봉이나 배당부분에서 뺄 수는 없지 않느냐"며 "고통을 분담한다는 차원에서 이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새 먹거리' 준비 위해 긴축재정 불가피
 
B로펌 관계자도 "로펌도 기업과 똑같다"며 "예전에는 현상을 유지하면서 수임 건수를 늘리기만 해도 운영이 되었지만 지금은 경쟁력이 떨어지는 부분에 대해 투자를 하고 새로운 '먹거리'를 준비해야 하기 때문에 긴축재정은 불가피하다"고 요즘의 로펌 업계 분위기를 전했다.
 
로펌에서 지분을 차지하는 이른바 파트너 변호사 되는 기간도 늘어났다.
 
몇해 전까지만 해도 대형로펌의 경우 통상 판·검사 출신이 아닌 순수 신입 변호사가 파트너가 되는 기간은 짧게는 7년 정도가 걸렸다. 5년차 변호사가 되면 외국으로 유학을 갔는데, L.L.M을 마친 뒤 현지 로펌에 취직해 1~2년을 연수차원으로 근무한 뒤 돌아와 파트너가 됐다.
 
그러나 지금은 8~9년차, 늦으면 10년차는 되어야 파트너가 된다는 게 요즘 로펌업계의 사정이다. 외국로펌과의 경쟁을 위해 규모를 키우다보니 비슷한 연차끼리 경쟁이 그만큼 치열해졌다는 것이다.
 
긴축재정을 한다고 해도 인력에 대한 투자는 최우선 순위라는 것이 로펌 운영자들의 말이다. 국내 모 대형로펌의 집행대표를 맡고 있는 한 변호사는 "로펌은 곧 인력이다. 인력에 대한 투자를 아낀다면 문 닫을 생각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요즘 변호사들은 급여에 연연하지 않는다. 자기가 얼마나 이 로펌에서 클 수 있는가를 생각한다. 발전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하는 순간 변호사들은 바로 로펌을 옮긴다"고 말했다.
 
법률시장이 개방되면서 로펌들의 긴축재정과 함께 두드러지는 것이 스카우트 경쟁이다. 과거에는 이름난 전관이나 일 잘하는 젊은 변호사들을 산발적으로 스카우트 했지만 지금은 팀을 통째로 스카우트 하는 것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바른' 공정거래팀 화우로 통째로 옮겨
 
지난 6월 법무법인 바른의 공정거래팀이 통째로 법무법인 화우로 옮긴 것이 로펌업계에서는 큰 화제가 됐다. 이 때 옮긴 인원이 변호사와 공정거래위원회 출신 전문위원들을 포함해서 7명이다.
 
바른 공정거래팀의 이동은 올해 초 화우에서 공정거래 전문 변호사로 이름을 날리던 박성범 변호사와 금창호 변호사가 율촌으로 옮긴 것이 직접적인 원인으로 분석됐다.
 
화우는 1세대 공정거래 전문변호사인 윤호일 변호사가 대표변호사로, 공정거래분야 만큼은 최고라는 자존심을 갖고 있다.
 
그만큼 박 변호사 등의 이탈은 화우에게는 뼈아픈 것으로 최대한 빨리 공백을 메우는 데는 성적이 좋은 공정거래팀을 통째로 영입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 것이라고 판단했다고 보는 분석이 많다.
 
팀이 통째로 보따리를 싸는 게 이번만은 아니다. 올 초에는 법무법인 두우앤이우에서 엔터테인먼트팀을 이끌던 최정환 변호사가 함께 일하던 변호사 3명과 함께 법무법인 광장으로 옮겼으며, 지난 2월에는 법무법인 충정에서 M&A 업무를 많이 맡았던 손도일 변호사가 같은 팀에서 일하던 변호사 4명과 율촌으로 옮겼다.
 
또 그에 앞서 지난해 11월에는 이근동 변호사 등 법무법인 시공에서 활약하던 M&A 및 회사법 전문 변호사들 5명이 법무법인 지평지성으로 옮겨 주목을 끌었다.
 
◇'좋은 팀' 키우려면 희생 커 외부 수혈 불가피
 
이 같은 현상을 보고 한 대형로펌의 시니어 파트너급 변호사는 "좋은 팀 구성은 상당히 어렵다. 변호사들을 교육해서 키우기에는 어마어마한 시간과 비용이 필요하다. 외부 수혈(팀 영입)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를 두고 우리 로펌간 출혈이 너무 심해질 뿐만 아니라 중소형 로펌의 경우 뿌리째 흔들릴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중견 로펌의 대표변호사는 “중소형 로펌에서 전문팀은 주력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며 “이들이 통째로 빠져나간다면 타격을 받는 수준이 아니라 생존이 위협 받는다. 결국 로펌간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초래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또 한 중견 로펌의 변호사는 “과거에도 팀이 대형로펌에 통째로 들어간 예가 있었지만 그 곳 문화에 적응 못하고 지리멸렬 없어진 사례도 있다”며 “섣불리 움직였다가는 낭패를 볼 것”이라고 뼈있는 말을 했다.
 
3개 외국로펌이 모든 등록절차를 마치고 본격적인 업무에 돌입하면서 수임료 경쟁도 로펌업계의 중요한 화두다.
 
일각에서는 선택의 폭이 넓어진 만큼 거품이 빠지면서 수임료가 낮아질 거란 전망도 나온다. 또 가격경쟁이 과열되면 덤핑사례도 속출할 거란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는 반대되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로펌들 "수임료 인하는 없다"
 
최근 국내에 진출한 한 외국로펌 변호사는 “처음 진출한다고 해서 한국에서만 수임료를 낮추거나 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못 박았다.
 
그는 “수임료는 변호사의 경력에 따라 시간별로 책정되기 때문에 전 세계 어디나 똑같이 적용된다”며 “이는 다른 로펌도 마찬가지”라고 밝혔다.
 
국제 분쟁 경험이 많은 한 대형로펌의 파트너 변호사는 “지금까지 받은 수임료에 거품은 없었다”며 “기존의 수임료 틀은 계속 유지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외국로펌과 경쟁하게 되는 해외업무 분야, 즉 아웃바운드(Out Bound) 분야는 기업들에게 꼭 필요하면서도 매우 특수한 분야이기 때문에 가격으로 경쟁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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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철 기자